[씨네스코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화려한 휴가> 촬영현장
2006-09-27
글 : 장미
사진 : 백가현

“잘 가세요, 잘 가세요.” 300여명이 목청이 찢어져라 노래를 불렀건만, 김지훈 감독은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이탈리아전에서 안정환이 골을 넣었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해주세요.” 김 감독의 가차없는 요구에 세트장은 한층 높아진 노랫소리로 출렁거렸다. “오늘은 적은 편이에요. 어제는 900명 정도 모아놓고 군중신을 찍었는데 장난 아니었어요.” 정신없는 와중에 지나가던 스탭이 한마디 던졌다. 5·18이라는 큰 사건을 소재로 삼은 까닭에 동원되는 보조출연자들이 무척 많은 모양이었다. 그 사이 금남로를 가득 채운 시민군이 공수부대를 향해 약을 올리는 장면의 촬영이 계속됐다. ‘광주여 영원하라’, ‘형제여 일어나라’ 등의 피켓을 나눠든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박철민과 박원상이 내지르는 고함에 맞춰 웃고 떠들며 분위기를 띄웠다. 행렬의 선두에 선 두 배우는 보조출연자들을 지휘하랴, 연기에 몰입하랴, 쉴 틈이 없어 보였다.

9월11일 오후, <화려한 휴가>의 촬영이 진행된 이곳은 광주 북구 첨단과학산업단지. 1만7천여평에 달하는 드넓은 부지에는 지난 6월 말부터 1980년 광주 금남로를 재현한 세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교회를 비롯해 이곳의 모든 건물들은 당시 있었던 것을 똑같이 만들어낸 겁니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당시 광주 거리의 정확한 재현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제작팀의 설명이 이어졌다. 1980년 5월18일. 그날의 핏빛 광주를 전면에 내세우는 쉽지 않은 작업을 시작한 이는 <목포는 항구다>로 데뷔한 김지훈 감독이다. “그때 힘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사연을 담으려 노력했다. 8·15를 경험한 사람들의 발언을 담은 <증언록>이 많은 도움이 됐다.” 시대상에 대한 철저한 고증 외에도 김상경, 안성기, 이준기, 이요원, 나문희, 송재호 등 쟁쟁한 출연진이 영화의 완성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현재 30%가량 촬영을 마친 <화려한 휴가>는 2007년 상반기 극장가를 찾는다.


“배경이 80년대 광주 시내라는 것이 제일 무섭다”

<화려한 휴가>의 아트디렉터 이청미

“광주시청은 1:1 비율로, 나머지 건물들은 85% 정도로 줄여서 완성했다. <광주일보> 등을 참고해 당시 광주의 사진을 보며 시대상이나 거리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 의의를 뒀다. 시대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대표적인 구조물, 마감재, 색감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일일이 추적해 똑같이 재현해야 했다. 특히 간판의 글씨가 주는 느낌은 무척 중요하다. 영화의 배경이 어떤 시대인지 가장 잘 드러내는 요소이다 보니 일러스트 작업을 통해 최대한 똑같이 살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작업을 시작한 지는 3개월 정도 됐다. 일정이 촉박한데다 비도 많이 와서 전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만지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 이 영화가 워낙 로케이션이 크고 특수효과가 많아서 손대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다. 사실 우리 또래들은 그때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화려한 휴가>는 우리가 모르고 사는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영화고 시대물이라는 의미도 있고 해서 참여하게 됐는데, 배경이 80년대 광주 시내라는 것이 제일 무섭다. 오래지 않은 과거다 보니 그때를 경험했거나 기억하는 분들이 아직 살아계시고, 그래서 실제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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