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독립영화인, 조영각 스토리 [2]
2006-10-1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 독립영화 프로듀서 조영각

“97년에 이지상 감독이 문화학교 서울을 찾아왔어요. 사무실을 좀 빌려주고 기획을 도와달라고요. 저도 그 당시에 독립영화에 프로듀서 역할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마침 그런 제안이 들어오니까 하게 된 거죠. 크게 걸린 거죠. (웃음)”

<둘 하나 섹스>
<팔월의 일요일들>

<둘 하나 섹스>는 프로듀서 조영각에게 상처를 주었고, 오기를 주었고, 교훈을 주었다. 영화에 들어간 개인 빚 때문에 3년간 은행에 시달려야만 하는 상처를 입었고, 긴 법정 투쟁에서 결국 개봉이라는 피곤한 승리를 얻을 때까지 오기를 쏟았고, 프로듀싱에 관련된 제작 방식의 교훈을 얻었다. 여기저기 손 벌려서 후반작업비를 충당하고도, 한참 뒤에야 개봉했지만, <둘 하나 섹스>의 평은 그다지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지금 <팔월의 일요일들>을 준비하는 그가 하는 말은 이렇다. “안 좋은 영화를 좋게 봐달라는 게 아니에요. 일단 봐달라는 거예요. 이진우 감독과 시나리오를 주고받았고, 독립영화쪽에서는 그간 없던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만들어야 재미있는 영화, 이진우 혼자 만들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관객하고 만나서 평가를 제대로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건 자신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팔월의 일요일들>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교육용으로 제안받아 제작했던 단편 <가출>까지 포함하면 그의 도합 세 번째 프로듀서 참여작인데,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면 대략 1억5천만원이니 독립영화계에서는 거의 블록버스터급이다. 애초 생각대로 반듯한 규모와 비교적 큰 시스템으로 만들고자 했던 욕심은 영화 곳곳에 있다. “1억원 규모지만, 관객은 10억원짜리 퀄리티를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안 되는 걸 되게 하겠다고 달라붙은 거죠. 처음에는 예산 3억∼4억원 정도 됐었어요. 그런 제작에서의 압박이 컸고, 그래서 한 30회 가야 하는 걸 24회차로 줄였고. 감독이나 배우들이 다 죽었죠. 로케이션이 많잖아요. 그러다보니 감독한테는 무조건 경기도 바깥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했고요. 하지만 만날 만화가게만 나오거나, 색감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흑백으로 가는 영화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그게 창의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지만, 독립영화도 거기에서 벗어나는 영화가 있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전범이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소신을 밝힌다.

예를 들어, 이 영화에는 ‘잘 만들어야지 재미있는 영화’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강조점을 둔 오프닝신이 있다. 자동차, 스턴트맨, 특수 카메라 모빌 캠 등 제작비의 10분의 1이 들어간 이 장면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거의 360도의 롱테이크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처연한 시선으로 전제한다. 물론 아쉬운 점은 많다. 인력부터 렌즈의 사용까지, 하다못해 스탭들에게 제공할 소모품 부족까지. 오죽하면 전화해서 영각이 형 뭐 하냐고 누가 물으면, 스탭들이 하는 말은 “저쪽에서 담배만 피우고 있다”는 거였다. “조금만 더 느슨하게 진행할 수 있게 도와줬더라도 감독, 배우, 스탭 모두 그렇게 까칠한 상태는 아니었을 거”라는 개인적인 소회가 남을 만하다. 하지만 조영각씨는 이 말도 잊지 않는다. “잊혀지는 영화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가 지금 바라는 건 저예산 독립영화라고 하여 외면하지 말고, 호평이든 혹평이든 일단 영화와 마주한 다음 판단해달라는 것이다.

“제가 자주 쓰는 말이 있거든요. 걱정마. 어차피 잘 안 될 거야라고. (웃음)” 듣고 나면 이것처럼 지독한 소신이 더 있을까 싶다. 웃으면서 그 말을 할 때의 뜻은 잘되건 안 되건 나는 변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뉘앙스여서 더욱 그렇다. 밤은 깊어갔고, 지친 몸에 취기가 오른 조영각씨는 만약 KBS <독립영화관>이 폐쇄되었더라면 <넥스트 플러스> 지면은 어떻게 할 생각이었냐는 의문에서 <팔월의 일요일들> 시사회 때 기자들의 저조한 참석률에 대한 불만까지 혹은 포스터통을 들고 제주도에 내려가 아는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내는 길에 버스 두대로 광고를 하는 어느 영화 마케팅 현장을 보고 힘이 빠졌다는 이야기부터 “전국에 아는 사람은 다 보게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전국 4개관 개봉이지만 잘되면 한개 더 늘려달라고 제안할 생각도 있어요”라는 계획까지 묻고 따지고 설명했다. 기민하게 할인권을 나눠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면서.

이날 그가 한 말은 영화와 독립영화와 독립장편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에 관한 것이 거의 전부다. 이 말이 이 사람이 앓고 있는 병력의 정체다. 자칭 유명병에 걸려버린 이 사내는 실은 유명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에 관한 열의라는 열병을 앓고 있다. 사내는 그 병을 낫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다.

조영각의 세 가지 희망사항

열정으로 궐기해라, 그날이 올 것이니

조영각씨에게 마흔 되기 전에 이루고 싶은 혹은 일어나기만을 바라는 독립영화에 관한 몇 가지 바람을 물었다. “벌써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니, 슬픔이 앞선다. 그런데 이젠 정말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엄습해온다”는 말과 함께 그가 털어놓은 비장한 세 가지 바람.

1. 이타적인 생각처럼 들리겠지만, 공공연하게 연봉 3천만원이 되면 집행위원장을 그만두고 당당히 후배에게 물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독립영화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인 곤궁함 때문에 자신의 전망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독립영화 ‘행정질’을 하는 친구들은 더욱 그렇다. 전망을 놓고 고민하는 그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던가? 기업의 후원금이라도 팍팍 따와서 그들이 제대로 된 인건비라도 받으면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2. 현재 국내에서 독립영화로 인정받는 길은 두 가지뿐이다. 칸영화제에 가서 상을 받아오거나, 관객 2만명이라도 들어서, 작은 영화들의 기록을 깼다는 뉴스를 전하는 방법이다. 아니면 공식행사장에 반바지를 입고 나타나거나. ㅋㅋ. 그런데 지금은 둘 다 요원하다. 국내 독립영화들을 발굴해주었던 해외영화제들은 국내 번듯한 상업영화들의 손을 번쩍 들어주었고, 그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서울 2개관에서 하루 7회 상영하면서 관객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조바심나서 못할 짓이다. 그렇지만 난 그 불가능한 꿈을 다시 꾸고 있다. <비트>의 정우성이 20살에 이미 버렸던 꿈을 나는 마흔이 가까이 와서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젠장. 불혹이라는데 의혹과 의심만 커간다.

3. 어쨌든 모든 영화는 관객과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관객이 있어야 한다. 한데 지금은 우리의 관객도 그들을 따라오는 덤도 없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우리가 덤을 얻을 수 없는 영화를 만든 것을 반성해야겠지만, 21세기에 서양에서는 사라져간다는 전용관 하나 가져보지 못한 현실을 더 탓하고 싶다. 어차피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린 우리의 영화를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전석 매진으로 상영하면서 우리의 지지자들과 환호 속에서 관람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건 기다림으론 되지 않는다. 독립영화들은 열정으로 궐기해야 한다. 그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쯤이면 괜찮은 상업영화들도 초청하여 폼나게 틀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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