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차이밍량의 영화,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
2006-10-16
글 : 박혜명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 I Don't Want to Sleep Alone
감독 차이밍량 / 대만/ 2006/ 115분/ 아시아영화의 창

샤오캉(이강생)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의 한 골목에서 깡패들에게 당한다. 라왕(노먼 아툰)은 한길에 쓰러진 샤오캉을 데려와 돌보며 마음을 준다. 샤오캉은 커피숍에서 일하는 아가씨 치이를 좋아한다. 치이도 샤오캉이 싫지 않다. 치이네 가게의 중년 여주인도 샤오캉을 맘에 들어 한다. 집 없는 샤오캉은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라왕과 치이와 가게 여주인의 품을 번갈아 떠돈다.

이 영화에서 이강생은 1인2역을 맡고 있기도 한데 그가 맡은 나머지 역할은 치이네 가게 여주인의 뇌사 환자 아들이다.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것 같은 이강생의 두 얼굴, 혼자 잠든 사람들을 응시하는 감독의 긴 시선, 무성영화에 가까운 침묵, 넘실대는 감정을 대신한 말레이시아 옛 가요들, 인물들의 심리적 풍경을 외면화한 물 고인 폐허건물, 사랑이란 감정의 언저리를 맴도는 그들.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는 고독과 소외를 다루는 차이밍량의 예술적 깊이가 또다른 차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차이밍량의 영화다. 무엇보다도 강한 의사표현의 제목만큼 감정적이다. 대사들을 과감히 지워낸 화면 안에서 인물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그것이 방관자의 것이 아니라 고백자의 것으로 느껴질 만큼 섬세하다. 물론 대사 없는 영화를 2시간 동안 참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까지 침묵하고 지켜보기만 하다니, 독하다 싶은 생각이 치솟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화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무렵 당신은 차이밍량이 선사하는 마지막 결말에 모든 마음을 내주게 되고 말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차이밍량의 고향은 말레이시아다.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는 감독이 지금껏 9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처음 고국에 돌아가 찍은 영화다. 감독은 이 영화를 찍는 동안 자신의 과거 속에 묻혔던 많은 기억들이 되돌아왔다고 했고, 자기가 10대 시절 즐겨 들었던 말레이시아 옛 가요들을 선택해 넣었다고 했다. 감독의 페르소나인 이강생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디션을 통해 발굴된 배우 노먼 아툰은 이 영화가 응축시킨 감정의 정체를 대담하게 책임지고 보여준다.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 ‘뉴 크라운드 호프 페스티벌’(New Crowned Hope Festival)의 프로젝트 일환이기도 하다. 동시대의 얼굴을 담고 동시대의 음악을 들려줄 것. 막연한 만큼 자유로운 조건 아래 아시아의 일곱 감독이 모였고 올해 부산영화제에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세기와 징후>), 가린 누그로호(<오페라 자바>), 바흐만 고바디(<반달>)의 작품도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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