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긴 손가락, 함초롬한 눈매. 어디 길가에서 마주친다면 “어머, 쟤 예쁘다” 하고 돌아볼 것만 같은, 깨끗한 여자아이. 그 아이의 목소리는 의외로 크고 걸걸했다. “안녕하세요!” 시원시원한 인사를 ‘외치며’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옥지영은 이후로도 눈에 띄는 행실을 계속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면 낼름 받아서는 무슨 얘긴가 하다가 대뜸 “너, 죽어!” 그러질 않나,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당탕탕 뒤엎는 소리가 나질 않나…. 다소 엉뚱할 만큼 상큼발랄한 그와의 만남은 초가을의 어느 일요일, 여러 개의 샌드위치를 먹어치우며 계속됐다.
고양이라면 옥지영은 지붕 위로 마당으로 마구 뛰어다니는 고양이. 그녀에게 요즘 제일 신나는 일은 단연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었던 거다. 원래 연기자를 꿈꾸던 그녀는 단편 <열일곱>에 출연하긴 했지만 장편영화에 출연하기는 <고양이를 부탁해>가 처음이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오디션에서는 이영진씨가 맡은 역을 할 뻔했으나 떨어졌었다. 하고 싶던 일을 하는 것이니 당연히 촬영 내내 “모든 게 재미있었”고, 지금은 개봉하기를 “아주 많이 기대”하고 있다고.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옥지영이 맡은 역은 자신과 이름이 같은 ‘지영’이었다.
길에서 고양이를 발견해 처음으로 키우기 시작하는 지영은 다섯 친구 중 가장 어두운 아이로, 무너져가는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다가 집이 무너져내려 할머니 할아버지를 잃고는 결국 어디론가 떠난다. 실제 옥지영과는 거의 정반대 성격을 가진 그를 연기하는 게, 더구나 첫 작품에 쉽진 않았을 법도 한데, 모델 일을 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한다. “모델은 말이 아니라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내면연기도 그런 거죠. 일부러 대사를 줄여달라고 했어요.” 옥지영이 스스로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모델 일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무작정 ‘모델라인’에 찾아가 덜컥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행운이 따랐던 십대 시절의 끝 스무살은 “별로 안 좋은 때”였다. “가장 많이 울고, 처음으로 패배를 맛본” 스무살 때 그녀는 재수를 하고 있었다고. 지금 그녀는 저녁반 영어학원에 같이 다닐 친구를 찾고 있는, 영낙없는 대학 1학년생이다.
우연인지, <고양이를 부탁해>가 개봉하는 10월13일은 옥지영의 스물두 번째 생일날이다. 처음 무엇인가를 할 때 작은 우연은 결코 작지 않은 법. 이 또한 그녀에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래는 그날이 아니었거든요. 근데 글쎄 10월13일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당장 사람들한테 다 문자를 보냈죠. 근데 두나 언니 한 사람만 답장을 보냈어요!” 어릴 적 제주도에서 조랑말 타고 찍은 사진을 늘 갖고 다녀 별명은 ‘애마부인’. “동물에 목숨거는 스타일”이라 자부해왔지만 고양이는 이번 영화를 찍으며 처음으로 안아보았다는 옥지영. 럭비공처럼 이리저리 튀는 이 신인배우에게, 막 뛰놀기를 시작한 스크린이 앞으로도 확 트인 운동장이 되어줬음 좋겠다. 이른 감이 있지만 생일도 미리 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