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고통을 타고 흐르는 감동의 순간, <세계>
2006-11-02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EBS 11월4일(토) 밤 11시

이 글을 쓰고 있는 10월25일, 필름포럼에서 지아장커의 <세계>를 보았다. 11월4일, EBS에서 이 영화가 방영될 예정이다.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뒤, 그의 영화 세계와 더불어 때마침 개봉한 <세계>에 대한 비평들은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이 지면에 <세계>에 대한 또 하나의 글을 덧붙이는 것에 대해 잠시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영화를 보았을 것이라는 가정하에(평일 오후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늘, 그 시간 나와 함께 <세계>를 본 관객은 고작 10명 내외였다), 이 영화를 볼 기회를 다시 한번 소개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의 목적은 오직 ‘소개’에 있다. <세계>에 대한 비평을 읽고 싶다면, 정한석(<씨네21> 574호)과 안시환(<넥스트 플러스> 13호)의 프리뷰를, 지아장커에 대한 좀더 심도 높은 분석과 지아장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정성일(“10년 만에 만난 최고의 라스트 신”, <씨네21> 575호)과 홍성남(‘지금’ 중국을 사는 청춘들의 예민한 초상, <넥스트 플러스> 13호)의 글을 읽으면 된다.

영화를 소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영화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나누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많은 글들은 그 순간을 이 영화의 마지막, 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따오와 따이셩의 다음과 같은 음성에서 찾는다. “우리 죽은 거야?”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야.” 다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시점에 다시 시작하자는 말. 물론 울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결말에는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처럼 무시무시한 ‘다시 시작함’의 선언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따오와 따이셩의 상황을 더 끝까지 밀어붙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공사판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노동자의 이야기가 좋다. 그가 온몸에 붕대를 감고 손으로 쓴 유언장(동료들에게 갚아야 할 돈의 목록)이 화면 전체를 채운 순간도 소름이 돋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을 울린 장면은 카메라가 그의 늙은 부모를 비출 때이다. 아버지의 손이 아들의 죽음을 수습하기 위해 회사에서 건네준 돈 다발을 하나씩 집어 외투 속에 넣은 뒤, 눈가의 물기를 닦기까지의 그 지난한 시간. 100년처럼 천천히 흐르는 이 시간의 고통이야말로 ‘우리 죽은 거야? 아니 다시 살아야 돼’라는 지아장커의 목소리를 가장 감동적으로 담아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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