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북구 오룡동 1만7천평에 1980년 광주민주항쟁 당시 금남로가 되살아났다. 도청 앞엔 ‘간첩신고 강조 기간 80년 4.1~5.31’이란 현수막이 펄럭였다.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의 촬영 현장이다. 영문도 모르고 역사의 급물살에 휘말려 시민군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내년 초에 관객을 만날 계획이다. 지난 29일엔 계엄군이 다시 들어온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면서 “집에 가자”는 가족들과 “못 간다” 버티는 시민군 사이의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택시 운전 기사였다 시민군이 된 인봉(박철민)의 눈가가 벌겋다. 인봉의 부인(황영희)은 동칠이를 업고 발을 동동 구른다. “나 안 죽어야.”(인봉) “사방 천지가 시체들인디요.”(인봉의 부인) 그 틈에 주인공 강민우(김상경)와 용대(박원상)가 끼어들어 “가라”고 인봉의 등을 떠민다. 카메라가 각도를 바꿔가며 장면을 잘게 잘라 치고들어간다. 그때마다 똑같은 대사를 다시 하며 발버둥쳐야 하는 인봉은 준비 시간에도 얼굴을 찌푸린 채 “가란 말이여”를 되뇐다. 그래도 김지훈 감독은 성이 안 차는 듯하다. “화이팅”이라고 북돋우는가 싶더니 곧 “울면서 웃는 거 알지”라는 알쏭달쏭한 주문을 내놓는다. 쪼갠 장면을 이어 붙여야 하니 총의 각도 등 작은 차이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데 인봉 부인의 등에 엎힌 10개월 난 동칠이(양승찬)가 애간장을 녹인다. 쭉 자더니만 잠깐씩 눈을 떴다. “동칠이 깨기 전에 빨리 가자.”(감독)
5·18 당시 상황재현 위해 도청 거의 실제크기로 만들고
주연은 같은 장면 수차례반복 280명 단역은 기다림에 지쳐
배우들이 감정을 끌어올리느라 기를 쓰는 사이, 군중 장면에 출연하는 280명 단역들은 무료함을 달래려 애쓰는 중이다. “일당 2~3만원이에요. 오전 8시부터 여기 있었어요. 기다리는 게 힘들어요.”(황은정·18) 모르는 사이였던 유정순(25)씨와 박성진(20)씨는 기다리다 달리기를 반복하다 친해졌다.
의상팀의 김경미씨는 주요 배우부터 단역들에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시대에 안 맞는 양말 모양도 용하게 잡아냈다. “보조 출연자들의 옷차림은 시대를 표현하는 데 중요해요. 이 사람들 옷은 중국에서 사왔어요. 70~80년대 느낌이 더 많이 나거든요. 보조 출연자들의 옷은 장면마다 바꿔줘야 사람들이 모인 것처럼 보여요.”
시대극이니 미술팀의 부담도 만만찮았다. “신문이나 5·18 재단에 있는 사진을 보고 재현했어요. 당시 광주에 있던 분들에게 건물 색깔 등도 물었어요. 도청은 실제 크기의 90~100%, 나머지는 85%로 만들었죠.”(미술팀 한다정) 폐차장을 뒤져 옛 버스 5대를 가져왔다. 포니1은 한국에 2대가 남았는데 차 주인들이 애지중지 아끼는 바람에 이집트에서 5대를 역수입했다. 실제 총은 10자루를 홍콩에서 수입해 경찰서에 맞겨두고 필요할 때만 가져다 쓴다. 탱크 2대, 트럭 3대 등도 동원했다.
<목포는 항구다>를 만들었던 김지훈 감독은 “대학 들어갈 때까지 진실을 몰랐던 데 대해 부채의식이 있었다”며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5·18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김상경, 안성기, 이요원, 이준기 등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