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게임 또는 영화 <사일런트 힐> [1]
2006-11-15
글 : 김도훈

사일런트 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수많은 괴생명체들을 물리치며 복잡한 지하 미로를 지나 잃어버린 딸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러니 지도를 미리 외워두세요. 기억력이 당신의 생명을 구할지도 모릅니다.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장이 팔린 동명 비디오 게임을 영화화한 <사일런트 힐>은 기이한 영상 체험이다. <늑대의 후예들>의 감독 크리스토퍼 강스와 <펄프 픽션>의 각본가 로저 에버리, <네이키드 런치>의 프로덕션디자이너 캐럴 스피어는 마치 게임을 하나하나 뜯어서 옮기듯 새로운 지옥을 창조해냈고, 영화는 전통적인 영화와 비디오 게임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듯하다. 게임을 닮은 영화, 혹은 영화를 닮은 게임. <사일런트 힐>의 세계를 살펴본다.

“게임 원작 영화를 보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이 게임기를 플레이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는 것과 같다. 내러티브 영화 예술의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상징이다.” 영국 일간지 <옵서버>의 평론가 마크 커모드는 <사일런트 힐>을 감상한 직후 화를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왜 요즘 영화들은 플롯을 잃어버렸는가. 나는 비디오게임을 비난한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사설을 통해 요즘 영화들의 빈곤한 이야기에 대한 원죄를 게임에 물었다. 그가 <사일런트 힐>에서 구체적으로 지목한 장면은 주인공 로즈(라다 미첼)가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지하 미로로 들어서는 부분이다. 로즈에게 또 다른 캐릭터가 조언한다. “이 지도를 봐. 그리고 외워둬. 기억력이 당신을 살릴지도 몰라.” 마크 커모드는 영화의 주인공을 게이머(Gamer: 게임을 하는 자)와 동화시키려는 크리스토프 강스(<크라잉 프리맨> <늑대의 후예들>)의 시도를 철저하게 비판했다. “주인공은 조용히 방의 지도를 들여다보며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방향을 외운다. 그건 마치 게이머가 콘솔을 손에 들고 서 있는 모습일 따름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커모드가 공격하고 있는 장면은 <사일런트 힐>을 본 게임광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과 일치한다.

비평가들의 평점을 기록하는 로튼토마토닷컴(www.rottentomatoes.com)에서 <사일런트 힐>의 신선도는 27%에 불과하지만 관객이 평점을 매기는 IMDb 점수는 6.5(10점 만점)로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사일런트 힐>을 반기는 것은 게임 사이트의 젊은 관객이다. 어느 인터넷 게임 포럼의 “게임 원작 영화 중 가장 볼만한 영화는?”이라는 설문조사에서 <사일런트 힐>은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젊은 게임팬들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사일런트 힐>이 “‘제대로’ 만들어진 아마도 단 하나의 게임 원작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임팬들은 “영화의 제작진이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해보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은 원작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사일런트 힐>을 치켜세운다. 그건 젊은 게임팬들이 영화의 미학에 눈먼 오타쿠이기 때문일까. 전통적인 평자들과 팬들의 간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사일런트 힐>을 둘러싼 간극의 깊이는 조금 색다르다.

컴퓨터게임에서 뛰쳐나온 지옥

<사일런트 힐>은 일본 게임회사 고나미가 1999년 2월에 출시한 3D 어드벤처 게임이 원작이다. 게임은 출시되자마자 150여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호러 게임의 역사를 다시 정의했다. 제작사도 미루어 짐작하지 못한 게임의 인기는 <사일런트 힐>이 (각각 <둠>과 <레지던트 이블>로 영화화된) 호러 어드벤처 게임 <둠>과 <바이오 하자드>와는 다른, 독창적인 기괴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일런트 힐>의 주인공들은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무기를 들고 뛰어다니는 히어로가 아니라 평범하고 나약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잃어버린 딸을 찾아 헤매거나, 갑자기 자신의 아파트에 갇혀버리거나, 죽은 아내의 편지를 받고는 아내를 찾아 헤맨다. 생화학무기로 인해 좀비로 변해 게이머를 공격하는 괴물체들은 없다. 게이머들은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게임기 앞에 앉아서 지직거리는 지옥의 소리를 들으며 빠져나갈 길을 찾아 헤매다 겨우 건진 몇 가지 구식 무기들을 들고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

영화화에 있어서 게임 <사일런트 힐>이 지닌 최대의 장점은 모호하지만 세밀한 얼개를 지닌 이야기다. 1편 이야기는 3편으로 이어지고 4편은 1, 3편과 같은 설정하에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목소리를 지닌 기이한 연대기처럼 연결된다. 크리스토프 강스는 “여러 차원이 동시에 존재하는 마을 ‘사일런트 힐’의 역사는 게임의 배경에 불과하지만, 영화에서는 마을을 둘러싼 역사가 중심 이야기에 놓여야만 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강스와 각본가 로저 에버리(<펄프 픽션>)는 첫 번째 게임의 세계관을 토대로 두 번째 게임을 도입하고, 몇몇 요소들을 3편에서 빌려온 다음, 기술적으로 발전한 4편에서는 카메라 앵글의 미학을 가져왔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 <사일런트 힐>은 출시된 네편의 게임에서 모든 것을 빌려온 하나의 세계다.

몽유병 증세를 보이는 로즈의 딸 샤론은 30여년 전에 불타버린 마을 ‘사일런트 힐’에 가고 싶다는 말을 비밀처럼 읊조린다. 로즈는 남편 크리스토퍼(숀 빈)의 만류를 뿌리치고 딸을 사일런트 힐로 데리고 가지만, 현실과 환상의 경계 자체가 허물어진 마을 입구에서 딸을 잃어버리고 만다. 사이렌이 울리면 마을은 어둠에 휩싸이고, 기이한 괴생명체들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나타나 로즈를 뒤쫓는다. 사일런트 힐은 죽음의 비밀을 숨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마을의 지하는 영원히 불타고 있다. 로즈는 괴생명체들을 물리치고 지하세계의 지도를 얻어 딸을 구해야만 한다(52쪽 프리뷰 참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잔혹 버전처럼 보이는 <사일런트 힐>의 세계는 컴퓨터게임의 세계에서 뛰쳐나온 지옥에 다름 아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기예르모 델 토로의 세계를 완성시켰던 프로덕션디자이너 캐럴 스피어와 <에일리언 2020> <언더월드> <고지라>의 괴물 디자이너 패트릭 타토폴로스는 게임의 오리지널리티를 훼손하지 않고도 무시무시한 지옥을 창조해냈다.

게임 원작 영화 박스오피스 & 비평 성적표

게임 원작 영화들이 후한 비평을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왔다. 로튼토마토닷컴(www.rottentomatoes.com)에서 그나마 좋은 성적을 거둔 영화는 신선도 44%의 <파이널 환타지>가 유일하다. IMDb 사용자 평점(10점 만점)이 가장 높은 작품은 6.5점을 차지한 <사일런트 힐>. 6.4점의 <파이널 환타지>와 6.2점의 <레지던트 이블>이 뒤를 잇고 있다. 게임 원작 영화들은 낮은 비평적 성과만큼이나 흥행성적도 저조하다. 지난 20여년간 비교적 좋은 성적을 기록한 영화는 <툼레이더> <모탈 컴뱃> <레지던트 이블> 연작들과 <사일런트 힐> 정도. 제작비 대비 최악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것은 <파이널 환타지>이며, 제작비에 관계없이 최악의 흥행성적과 비평성과를 동시에 거둔 것은 독일 감독 ‘우에 볼’의 <하우스 오브 더 데드> <블러드 레인> <얼론 인 더 다크> 연작이다.

(순위/제목(연도)/최종 흥행성적(달러)/첫 주말 성적(달러)/로튼토마토 신선도/IMDb 이용자 평점)
1/<툼레이더>(2001)/1억3117만/4774만/18%/5.2
2/<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1999)/8574만/3104만/9%/3.2
3/<모탈 컴뱃>(1995)/7045만/2329만/19%/5.0
4/<툼레이더2: 판도라의 상자>(2003)/6566만/2178만/23%/5.2
5/<레지던트 이블2>(2004)/5120만/2304만/19%/5.7
6/<사일런트 힐>(2006)/4698만/2015만/27%/6.5
7/<포켓몬스터2>(2000)/4376만/1958만/12%/3.2
8/<레지던트 이블>(2002)/4012만/1770만/34%/6.2
9/<모탈 컴뱃2>(1997)/3593만/1677만/4%/2.9
10/<스트리트 파이터>(1995)/3342만/686만/29%/3.0
11/<파이널 환타지>(2001)/3213만/1140만/44%/6.4
12/<둠>(2005)/2821만/1549만/19%/5.3
13/<슈퍼 마리오>(1993)/2091만/853만/6%/3.5
14/<포켓몬스터3>(2001)/1705만/824만/27%/3.9
15/<전자오락의 마법사>(1989)/1428만/214만/31%/5.5
16/<윙커맨더>(1999)/1158만/511만/7%/3.5
17/<하우스 오브 더 데드>(2003)/1025만/568만/6%/2.0
18/<얼론 인 더 다크>(2005)/518만/283만/1%/2.2
19/<블러드 레인>(2006)/240만/155만/5%/2.5
20/<더블 드래곤>(1995)/234만/137만/0%/3.4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