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8일부터 11월2일까지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런던 영화제가 열렸다. 올해로 대망의 50주년을 맞은 영화제는 50이라는 숫자의 강박증으로부터 어느 정도 여유로이 벗어난 듯싶다. 반백년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일은 이미 영화제 이전부터 내셔널필름센터(NFT)에서 꾸준히 이루어졌다. 이번에 ‘50’은 외따로 외쳐지기보다는 런던과 영화와 축제라는 키워드와 맞물려갔다. 이전까지 매년 단 하루, 한 군데 극장에서 딱 한번 행해졌던 ‘깜짝 상영’(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로 입장한 관객이 상영관의 불이 꺼진 뒤에야 상영작품을 알게 되는 이벤트)을 올해에는 런던 전역의 50개 극장에서 시도한 것이 이 영화제가 숫자 50으로 자신의 ‘지천명’을 자축하는 방식이었다. 영화제 트레일러도 50이라는 숫자보다는, 일상의 런던 풍경에 영화음악을 배경으로 깔아서 런던의 영화다움과 영화의 런던다움을 재차 환기해보는 유쾌한 영상이었으며, 이것은 트라팔가 광장에서 상영된 마이크 피기스의 게릴라식 영화 <런던의 초상>과 맞물렸다.
영화제의 주요 섹션은 ‘광장의 영화’, ‘뉴 브리티시 시네마’, ‘프렌치 레볼루션’, ‘시네마 유럽’, ‘월드 시네마’라는 점층법을 따라갔다. 또한 개막작으로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과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 사이의 만남을 정치 풍자로 담은 케빈 맥도널드의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을, 폐막작으로 전 지구적 소통의 가능성을 묻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바벨>을 배치함으로써 , 동시대의 세계지도를 나름대로 그려보려는 시도 또한 엿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영화제에서 만인의 눈을 사로잡은 아이콘은, 조국 카자흐스탄의 번영을 위해 미국을 휘저으면서 문화적 가르침들을 찾아나섰던 영화 <보랏>의 TV 진행자 ‘보랏’(사샤 바론 코언)이었다. 이미 칸을 한번 발칵 뒤엎었던 이 인물은, 런던영화제가 이런저런 퍼즐과 미로 속에 배치하고자 하였던 속내를 단박에 드러냈다. 결국 전세계적 근심의 근원 속으로 들어가 좌충우돌의 행보를 펼치고 돌아온 그는 개선장군마냥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영화제의 심장, 레스터 스퀘어에 입성하였다. 보랏은 런던영화제가 자신의 생일잔치에 불러들인 진정한 광대이자, 그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영화제의 모토 자체이기도 했다. 영화제의 또 다른 특별 섹션인 ‘아카이브의 보물들’에서 <위대한 유산>과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나란히 놓인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뒷이야기: 영화 <보랏>의 미국 이야기는 반미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필자는 <왕의 남자>의 프린트 배달 사고에 대한 내용을 한국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