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마틴 스코시즈 작품에서 발견되는 차용·참조·오마주
2006-11-2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수색자>의 인물부터 <시민 케인>의 플롯까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프로젝트에 대해 아직까지 파라마운트가 관심을 갖고 있을 시절, 제작자 제프리 카첸버그와 마이클 아이즈너가 마틴 스코시즈를 찾아와 나눴다는 대화의 한 토막. 지지부진한 상황에 낙담해 있는 스코시즈에게 두 사람은 몇개의 대본 중 하나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베벌리힐스 캅>, 이걸 해볼 생각은 없어요?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을 맡기로 한 영화인데….” 그러자 스코시즈가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고, 그들은 ‘물 떠난 물고기의 이야기’라며 “왜 있잖아요. 촌 동네 경찰이 뉴욕에 와서 맹활약한다는 이야기 말이에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스코시즈의 (퉁명스러웠을) 대답. “그건 돈 시겔의 <쿠간의 협박>이잖아요.” 그러자 그들의 (당황스러워했을) 답변. “아니라니까요, <베벌리힐스 캅>이라니까요.” 그 대화의 깊은 속뜻이야 어찌 됐건, 물 떠난 물고기의 이야기라는 그 말에 스코시즈는 적어도 68년까지 올라가 돈 시겔의 <쿠간의 협박>을 기억해내고야 만다.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
마틴 스코시즈의 <에비에이터>

스코시즈는 어떤 식으로건 자기 영화를 영화사의 명맥 안에 위치지으려고 한다. 이건 어떤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고, 저건 어떤 영화의 부분을 참조한 것이며 등등 수많은 예를 든다. <분노의 주먹>의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를 설명할 때는 “(<워터 프론트>의 주인공) 테리 말론을 연기하는 말론 브랜도를 제이크 라모타가 연기하고, 다시 이를 드 니로가 연기한다”는 식으로 표현한다. 일단 관객을 잡아채놓고 종종 무심히 사라져버리는 보이스 오버와 거기에 맞춰 사용되는 정지 화면(예컨대 <좋은 친구들>의 오프닝)은 트뤼포 영화 <쥴 앤 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때때로 화면 구성이 아니라 플롯 자체를 참조한 경우도 있다. <에비에이터>가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과 포개어져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등 위험이 예고되는 장면마다 그의 영화에 끈질기게 등장하는 붉은 색조의 화면들은 어린 시절 본 마이클 파웰의 영화 색감에 영향을 받아 평생을 갖고 가는 것 중 하나다. 스코시즈가 차용한 것 중에서 인물에 관련되어 가장 유명한 것은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가 사실은 존 포드가 만든 웨스턴 <수색자>의 주인공 이산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그럴 때, <택시 드라이버>의 방황하는 고독자 트래비스는 조카를 찾아 황야를 헤매는 이산의 그 허망한 표정에 기대어 생각하게 된다.

이번 작품도 그렇다. <디파티드>의 촬영감독, 프로덕션디자이너 등 스탭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스코시즈는 하워드 혹스의 영화 <스카페이스>(스코시즈의 전작 <에비에이터>의 주인공 하워드 휴스가 1932년에 제작한 갱스터영화)에 존경을 바친다는 뜻으로 영화 여기저기에 X(문자라기보다는)무늬를 그어놓았다고 한다. 촬영감독 마이클 볼하우스에 따르면 “그건 죽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스코시즈가 원했다”는 것이다. <스카페이스>는 유명한 갱 알카포네의 별명이자 그의 얼굴에 난 십자 상처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하지만 빌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콜린(맷 데이먼), 두 남자의 관계를 놓고 생각할 때 <스카페이스>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참조 영화가 한편 있다. 스코시즈의 말대로 <디파티드>가 한편으로 “믿음이 없는 것”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빌리가 마약 중독자를 찾아가 예수가 그려진 액자로 그를 내리칠 때 텔레비전에서는 영화 한편이 잠깐 흘러나오는데, 그건 존 포드의 1935년작 <밀고자>다. 친구를 밀고하여 팔아먹은 주인공 기포가 교회에 들어와 십자가에 걸린 예수상을 향해 양손을 뻗치고 “프랭키! 프랭키! 네 어머니가 날 용서하셨어”라고 슬프게 부르짖으며 죽어가는 라스트신이다. 아마도 빌리와 콜린이 나누어 가진 ‘밀고’라는 모티브에 대해 스코시즈는 그런 식으로라도 또 한번 부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게다가 존 포드는 아일랜드 혈통의 대표적 감독이 아니던가. 사실은 그 밖에도 심증이 가는 표식들이 몇개 더 있긴 하다. 국장 이름이나 편지봉투에 쓰이는 시티즌이라는 글자는 확실히 오슨 웰스의 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오슨 웰스에 대한 스코시즈의 경외어린 말들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오마주나 참조가 실상 영화의 질을 좌우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사의 영향 아래 놓여 살아가는 스코시즈는 그걸 그만둘 마음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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