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아주 특별한 손님>의 이윤기 감독 인터뷰
2006-12-0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이혜정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이야기다”

이윤기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은 전작 <여자, 정혜> <러브토크>보다 비균질적이면서 다층적이다. <여자, 정혜>와 유사한 배경 아래 있지만 다소 건조해 보였던 그때의 영화적 표현에 비해 훨씬 더 정묘한 화음을 갖췄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보경의 하룻밤 이야기는 의문투성이의 구조로 시작하지만, 마침내 가능한 자기 회복의 조짐을 보이며 끝을 맺는 데까지 이른다. 게다가 영화의 중반부에는 그런 처음과 마지막 사이에 있을 거라 상상하기 힘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우울한 분위기까지 끼어든다. 건조하면서도 직선적인 다이라 아즈코의 단편소설 <애드리브 나이트>와는 달리 <아주 특별한 손님>은 명백히 다른 차원에서의 영화적 중층을 만끽하게 한다. 이윤기 감독은 세 번째 작품에서 확실히 한발 더 디디는데, 그가 말하는 “생경함”이 바로 그 힘이 아닐까 싶다.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상했나? (웃음) 스탭들은 말이 없고, 배우들은 좋아한다. 아마 다들 조금 생경한가보다.

-제작 기간이 길지 않다.
=아무래도 예산을 작게 잡으면서도 내가 쓰고 싶은 스탭들을 쓰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로덕션 기간을 길게 잡으면 많이 늘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무조건 정해진 기간 안에 맞추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경우는 큰 보수로 일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배우나 스탭들에게도 믿음을 주는 차원에서 그런 걸 조건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의미에서의 실험적인 면도 있다. 그전보다 더 빡빡한 상황으로 한번 가보자 하는 거였다. 하룻밤에 벌어지는 일을 몇달씩 걸려 찍는 건 안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순간적 시너지’, 이런 게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도 있는 거다.

-어떤 제안을 받아 시작한 영화인가.
=제안 같은 건 따로 없었다. 지난해 말쯤 <러브토크> 끝내고 쉴 때 소설을 봤다. 단편소설집 하나가 재밌더라.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게 다이라 아즈코의 <멋진 하루>라는 단편집이었다. 그 소설집 속에 있는 서너개 정도의 단편을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들고 영화사에 가서 기본 예산으로 하자고 말하기에는 좀 평이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영화적으로 가능성있는 게 이 영화의 원작이 된 단편 <애드리브 나이트>였다. 그즈음 KBS SKY쪽에서 창사 특집극 제안이 들어왔는데, 그때 마침 쓰고 있던 다른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아 연기시킨 때였다. 그때쯤 제안이 들어온 거고 내가 거기에 오히려 역제안을 한 거다.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라면 고려해보겠다고. 그리고 그게 영화로 이어진다면 <애드리브 나이트>를 갖고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렇게 이 영화가 시작됐다. 올해 6월쯤이었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떤 것이었나.
=사실은 작위적 설정,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그래서 더 영화적인지 모르겠다. 그 단편집에 있던 소설들 모두 어떤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주어지고, 주변 인물들이 바보 같고, 상황에 그냥 이끌려가다가 나중에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낸다. 살냄새, 인간냄새가 나는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 거기에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주어지니, 그 소재를 갖고 내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영화적인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어떤 기묘함 같은 것.

-원작과 몇 가지 차이들이 있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말하자면, 일단 소설과 달리 주인공이 이름을 밝히는 시점을 마지막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건 중요한 차이다.
=그건 <여자, 정혜> 때 시도했던 것과 비슷한 의도다. 특히 마지막에 정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에 관해서 말이다. 이번 소설은 그런 상황을 주지 않지만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가진 느낌이 바로 그런 거였다. 자기 존재의 소중함이랄까.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고 주인공이 느끼게 되는 것 말이다.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 같다고 느끼는 그런 종류. 그게 <애드리브 나이트>가 담고 있는 의도는 아니지만, 그 소설을 보는 내 느낌은 그랬다. 그 여자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답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 것이 영화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야기상으로도 뒤가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겠지만, 여자주인공의 캐릭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는 평을 많이 받아왔다.
=비난도 받았고…. (웃음)

-(웃음)호평이 있으면 비판도 있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세 번째인 지금까지는 여자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을 이어가고 있다.
=왜 공교롭게 여자여야만 하는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내가 선택한 소재가 여자가 주인공이어서 그런 거지, 꼭 여자여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남자가 더 섬세하고 여린 캐릭터를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여주인공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늘 주장하는 건 내 영화 속 캐릭터는 비겁하거나 물러나는 여자들이 결코 아니라는 거다.

-말이 나온 김에, 김지수나 박진희는 그전에 나온 그들의 다른 역할보다 이윤기의 영화에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배종옥은 연기 경험이 많고, 또 양식적인 연기에 숙련된 배우라는 점에서 제외한다 하더라도, 금방 말한 두 사람은 각각 <여자, 정혜>와 <러브토크>에 나오면서 완전히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들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기에 이런 성과가 나왔는지 궁금하다.
=경우마다 다르긴 한데, 김지수는 그전에 나온 텔레비전 드라마하고는 다른 메커니즘의 연기를 했던 거고, 영화로는 내 작품이 첫 번째니까 오히려 그 뒤에 나온 영화하고 비교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특별히 뭔가를 했다는 생각은 안 든다. 내가 캐릭터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이 캐릭터의 처지를 가능한 한 많이 이해하게 하는 것 외에는 없다. 당신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상기시켜주는 것 정도다. 박진희는 영화를 쭉 했지만 금방 지적한 대로 <러브토크>에서의 역할 같은 걸 한 적은 없다고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배우들이 기회가 없어서 발견을 못하는 자기의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진희는 내 영화를 통해서 그런 걸 발견하고 싶어했다. 그러니 그럴 때는 김지수 경우처럼 내가 다시 적당히 뒤로 빠져서 주인공의 상황을 알려주는 것 정도다. 굳이 노하우라면 상황만 이야기하고, 뒤로 물러나서 그 사람이 빠져들기를 기다리는 거다.

-한효주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나.
=앞의 배우들에 비하면 신인에 가깝고, 이런 역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친구 아닌가, 너무 여고생 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니까 놀라울 정도로 어른스러운 친구였다. 어떤 반경으로 가더라도 이 친구가 따라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한효주는 그전 영화에 나왔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배우처럼 보였다. 다른 캐릭터를 맡았다는 뜻이 아니라, 인상 자체를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보이게 한다는 뜻에서 그렇다.
=다른 주인공 여배우들에게 했던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절대 예쁘게 보일 생각은 하지 마라, 이번에 너 영화 보면 아마 기절할 거다, 너는 전혀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고.

-여배우들에게 항상 그렇게 말하나.
=그렇다.

-“이번에는 전작에서 보지 못했던 명랑함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현장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 명랑함이란 기이한 유머 혹은 아이러니한 상황이 주는 웃음 같은 것을 표현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그건 확실히 전작들하고 다른 측면인 것 같다.
=그렇다. 일반적인 명랑함을 내가 할 이유는 없는 거고. 내가 여기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말한 대로 기묘한 아이러니나 사람들에게 흘러나오는 너털웃음으로 갈 수 있는 상황들이다.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 죽는 걸 많이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가장 슬픈 순간이 코미디 같았다. 가장 진지할 때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 그런 명랑함이라면 괜찮겠다 생각한 거다. 웃음 때문에 쓸쓸함이 느껴질 수 있는 그런 기묘한 불균형 같은 것 말이다. 스토리는 하나로 관통되지만, 영화의 처음과 중간과 마지막이 완전히 다른 영화. 나는 현실을 해석할 때 그렇게 해석한다. 현실 자체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에는 미스터리 버전이고,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우스꽝스러운가 싶을 때가 있고, 어느 순간에는 너무나 쓸쓸해지는 거다. 이렇게 이번 영화가 세 등분으로 가면 되겠구나 했다.

-의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만 놓고 보면 시작을 항상 핸드헬드로 한다. 움직이는 어떤 상태라는 것이 본인에게는 끌리는 무엇인가보다. 덧붙이자면, 세편 다 주인공이 거리에 서서 끝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네. 야외에서 어정쩡하게.

-어정쩡하다는 말을 좀더 미학적으로. (웃음) 거기에 분명히 어떤 끌림이 있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데 그런 그림이 자꾸 떠오른다. 영화를 시작할 때는 마지막 장면 구성부터 생각한다. 그게 항상 거리다. 주인공 혼자 있는 느낌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도시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가장 많은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이번 건 특히 보경이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그럼 그때 쓰이는 핸드헬드는 어떤 의미인가.
=핸드헬드에는 몰입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작할 때 핸드헬드를 하는 것이 내게는 몰입도를 준다. 이번에는 처음에 그 몰입도를 주고, 집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는 어느 순간 픽스가 된다. 그리고 나중에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핸드헬드가 된다. 그건 의도가 있다. 첫 시퀀스는 핸드헬드, 중간 시퀀스는 픽스, 마지막은 다시 핸드헬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중간 상황은 관객이 관조적인 느낌으로 보았으면 싶었고, 보경이 일상에서 탈피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은 관객이 보경에게 몰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촬영감독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세개의 시퀀스를 따라서 촬영 기법도 세 등분된 거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정박되어 있던 주인공이 지리적 이동 내지는 이탈의 경험을 통해서 다시 자아를 찾는 과정이 형성된다는 건 세 번째 이어지는 테마다.
=그러게. 항상 그렇게 되네. (웃음)

-아까 여자 캐릭터에 대해 물었는데, 남자 캐릭터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뭐랄까 여주인공의 상대역으로 굉장히 순정한 남자들 혹은 맑은 남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가령, 여자들이 어렵고 피곤하지만 당당하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남자들은 순박하고 순정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항상 맺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데 조금만 잘못되면 어떤….
=도식화된 연결….

-그렇다. 하지만 여하간 지금까지는 그걸 밀고 나가고 있다.
=나 역시 그런 남자들이 이상향이라고 생각해서 그린 건 아니다. 그 남자들은 여주인공 스스로의 순수를 일깨워주는 대상에 가깝다.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말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는 거다. 실제로 내 영화 속의 그런 남자들은 현실에서 바보 소리를 들을 거다. 캐릭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건 일종의 도구다. 여주인공들의 삶을 일깨워주는 도구. 그래서 실제로 그들을 로맨스로 연결시키지는 않지 않나.

-이윤기의 영화에서 로맨스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건, 사랑을 한다는 것이 대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을 사랑하는 자기의 욕망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생각나게 한다. 연애담이 완성되기보다는 그 상태에서 여주인공이 어떤 징후나 조짐만 얻고 자기의 길을 가는 동기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렇다. 태생적으로 로맨스로 달려가는 영화가 아닌 거다. 또, 조짐이라는 것이 이 여자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 중 하나인 거고. 이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삶을 바꾸는 방식을 선택할 때 영향을 주는 수백 가지 중 하나가 남자인데, 어쨌든 사람이니까 가장 영향력이 있어 보이는 거다. 왜 꼭 순정적인 남자가 나와서 이 여자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가느냐, 지나치게 관습적이고 도식적인 것 아니냐, 그런 걸 많이 의식하긴 하지만 분명히 그건 아니다.

-촬영을 하면서도 완성된 이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생경하다고 말할 것이라고 예상했나. 그랬다면 성공인 것 같다.
=그런 쪽의 만족도는 확실히 있다. 도대체 이걸 어느 범주에 놓고 생각해야 하는지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내 의도에 맞는 것 같다. 어느 범주에도 안 들어가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원작의 생경함보다 영화의 생경함이 훨씬 더 분명한 것 같다.
=이 스토리라면 <여자, 정혜> 때의 이야기를 또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다르게 할 수 있겠구나 한 거다. <여자, 정혜>를 하고, <러브토크>에서 좀 다른 시도를 했다면, <여자, 정혜>로 다시 돌아가되 완전히 다른 톤의 영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여자, 정혜>와 유사하지만 또 다른 버전이다. 정혜가 자기 자신의 슬픈 궤적을 따라간 거라면 이번 주인공 보경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과 어느 한 여자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그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사실은 순간이나마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일지라도, 오히려 그럼으로써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받아들이고 되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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