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핑’이란 말에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은 당신, 반성하라. 근래 요상하게 쓰이는 바람에 이미지를 구겼지만 이는 원래 어떤 사물을 교환한다는 뜻을 지닌 건전한 단어다. 당신을 화들짝 놀라게 만든 이 단어를 과감하게 꺼내든 까닭은,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집을 바꾸어 생활하며 일생일대의 사랑을 만난 여자들을 그린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기 때문. 극중 미국 여자와 영국 여자가 주거지를 교환해 새로운 삶을 일굴 사랑을 얻었으나 사실 모든 교환 행위가 행운을 가져오는 건 아니라는 말씀.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예전 물건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거나 바꾸자마자 물건에 하자가 생기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등 불행한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지금부터 여러분을 행운도, 불행도 가져오는 예측 불가능한 스와핑의 세계로 안내하겠다.
집을 바꾸면, 사랑이 온단다
홈 스와핑_<로맨틱 홀리데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인터넷 채팅방에서 만난 아만다(카메론 디아즈)와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럿). 외모도, 환경도 몹시 다른 두 사람은 신세 한탄을 통해 키운 동지애를 토대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다가온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을 각자 상대방의 집에서 보내자는 것. 남자라면 징글징글한 두 여자에게, 그렇지만 ‘홈 익스체인지’라고 불리는 이 모험은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로 다가온다. 먼저 LA에 사는 아만다의 사연. 철저한 다이어트로 몸매를 관리하는 그녀는 쿨함의 대명사인 열혈 현대여성. 수영장 딸린 대저택과 번쩍번쩍한 자동차를 소유한 그녀에게도 고뇌는 있었으니 근원은 바로 남자친구다. 바람을 피웠으면 들키지나 말 것이지 눈치 빠른 아만다에게 덜미를 잡힌 그는 달려드는 그녀의 주먹에 사정없이 가격당한다. 드디어 홈 스와핑을 결심, 영국에 도달한 이 LA 아가씨는 가도 가도 끝없는 드넓은 눈밭과 마주한다. 미끄러운 눈길에 엉덩방아를 찧길 수차례. 갖은 고생 다 하며 집 떠나온 것을 후회하려던 찰나 잘생긴 데다 매너까지 좋은 아이리스의 오빠 그레이엄(주드 로)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런던에 사는 아이리스는 어땠을까? 영국 아가씨답게 수수하고 솔직한 그녀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한때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마당에 자신은 남편은커녕 연인도 없는 노처녀 신세이니 그럴 수밖에. 우울한 일상을 잊고자 LA로 향한 아이리스. 청명한 하늘 아래 솟은 저택을 보니 이게 웬 횡재냐 싶다. 행복한 예감에 폴짝폴짝 뛰는 그녀, 궁상맞게 살았지만 사실 복 많은 여자인가 보다. 그곳에서 만난 작곡가 마일스(잭 블랙)가 일생일대의 연인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깨어진 사랑을 새 사랑으로 극복한 두 여자 왈, “집을 바꿔봐. 사랑이 올거야.”
스와핑에도 금기가 있다
배우자 스와핑_<아이스 스톰>
배우자 스와핑은 스와핑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사례. 그 이유를 막론하고 결혼식장에서 한 신성한 선서을 깨뜨리는 일은 비극을 초래하는 실탄이 된다. 여기, 배우자 스와핑과 그로 말미암은 슬픔을 겪은 미국 중산층 가족을 본보기로 제시한다. 1973년 미국 뉴욕 근교.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이 미국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바로 그 시기, 가장 벤(케빈 클라인)을 위시로 해 엘레나(조앤 앨런), 폴(토비 맥과이어), 웬디(크리스티나 리치)는 제각각의 이유로 바쁘고 고통스럽다. 가장 먼저, 소원해진 관계로 이혼마저 앞둔 벤과 엘레나의 부부생활은 권태와 위험으로 가득차 있다. 이웃에 사는 친구의 부인 제이니(시고니 위버)와 불륜에 빠진 벤은 그녀와 육체적 탐닉에 빠져 있고, 남편의 거짓말에 괴로워하는 엘레나는 위안을 찾아준다는 책이며 비방들에 손을 대지만, 뿌리를 치료하지 않는 한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 슬하의 아이들 역시 어지러운 사춘기을 맞이해 자신만의 처방전을 꺼내들었다. 큰아들 폴은 마약의 유혹에, 딸 웬디는 제이니의 아들 마이키(엘리야 우드)와 샌디(애덤 한 바이어드)를 이용한 성적탐구에 몰입하는 것. 특히 조숙한 웬디는 워터게이트을 비롯해 어른들의 세계와 법칙에 실소를 쏟아내는 냉소적인 소녀로 자라난다. 그 사이 벤과 엘레나는 자동차키를 뽑아 파트너를 결정하는 스와핑의 일종인 키 파티(Key Party)에 초대받고 그 때문에 갈등과 고민에 휩싸인다. 눈을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친 그날 밤 마이키는 분자들의 활동이 멈추는 가장 깨끗한 순간을 느끼기 위해 밖을 거닐다가 감전돼 갑작스런 죽음을 맞는다.
내가 테러범이게, FBI 요원이게?
얼굴 스와핑_<페이스 오프>
성형수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런 일이 생기랴 싶지만 복수심이나 애국심은 때론 만용을 불러오는 법. FBI 요원 숀(존 트래볼타)은 자신을 노리던 테러범 캐스터(니콜라스 케이지)에게 아들 마이키를 잃는다. 그 어떤 아비의 심정이 그만큼 비통하리오. 8년 동안 끈질긴 추격전을 벌이던 숀은 마침내 캐스터를 체포하지만 비정한 운명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도주 직전 캐스터가 LA에 대량의 생화학 폭탄을 숨겨놓았단 사실을 알게 되고 그 폭탄을 찾아내기 위해 그의 얼굴을 떼어내 자신에게 이식하는 대수술을 받게 된 것. 거울 속에서 그토록 증오하던 적의 얼굴을 목격하며 저주를 퍼부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조국의 운명을 등에 진 숀에겐 캐스터를 저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으니 말이다. 코마 상태에 빠진 캐스터 대신 감옥에 수감된 숀은 캐스터의 동생 폴룩스(알렉산드로 리볼라)를 속이고 폭탄의 자취를 파악하고자 상대 죄수를 두들겨패는 등 뜻에 없는 잔인한 행동들을 일삼는다. 한편 숀이 고군분투하는 사이 의식을 되찾은 캐스터는 숀의 얼굴을 대신 취하고, 숀과 자신의 얼굴 스와핑 사실을 아는 요원들을 모두 살해한다. 이제 누가 봐도 캐스터를 숀으로, 숀을 캐스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 궁지에 몰린 숀은 캐스터를 처치하고자 감옥에서 탈출하고 죽은 마이키의 생일을 맞아 물러날 수 없는 두 남자의 마지막 혈전이 펼쳐진다. 성형수술은 예뻐지기 위해 하는 거 아닌가? 기쁨 대신 괴로움만 안겨다준 이번 사건의 교훈은? 복수도, 조국 수호도 좋지만 얼굴 스와핑은 절대 수락하면 안 된단 사실?!
행운과 불운은 설왕설래로부터
행운 스와핑_<행운을 돌려줘!>
세상 참 불공평하기도 하지. 애쉴리(린제이 로한)에겐 행운이 차고 넘쳐 탈이다. 내리던 비도, 고장난 엘리베이터도 한끗 차이로 피해가는가 하면 거리에서 손쉽게 공돈을 회수하고 복권은 긁는 족족 모두 당첨이다. 우연히 생각해낸 계획이 우연히 잘 먹혀 우연한 기회에 승진하고 데이트 때 입을 옷이 없어 고민에 빠지기라도 하면 사라 제시카 파커의 드레스가 잘못 배달된다. 연애운 역시 기가 막히게 좋은 건 마찬가지. 엘리베이터에서 맞닥뜨린 남자가 잘생기고 집안이 빵빵한데다 데이트 신청까지 해올 가능성은 얼마며, 그와 경비행기를 타고 데이트할 가능성은 또 얼마냔 말이다. 그에 반해 불운의 사나이 제이크(크리스 파인)에겐 하루하루가 괴로움의 연속이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흙탕물을 튀기는 건 기본 중의 기본. 동전을 주으려니 바지가 찢어지고 때마침 집은 지폐엔 강아지 변이 묻어 있다. 부딪히고 맞고 괴롭힘당하는 것도 모자라 주변의 모든 물건들이 갑자기 고장나고 부숴지고 망가지는가 하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뿐인데 호되게 얻어터지고 변태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쓴다. 이만하면 행운의 여신에게 완전히 ‘팽’당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행운과 불운 역시 동전의 앞뒷면 같단 사실. 파티장에서 키스를 통해 타액을 교환한 뒤 둘의 처지가 완전히 역전되고 만다. 행운 스와핑은 키스와 함께? 점성술가에게 물어봐야 할 미스터리한 이 사건을 계기로 애쉴리는 비참하게 몰락하고 제이크는 성공을 거머쥐지만 역시 이 세상 제일은 사랑, 사랑, 사랑 아니던가. 행운보다 힘이 센 사랑에게 이끌려 두 사람은 끝없이 행운과 불운을 교환하는 관계가 된다고.
번개맞고 성별을 바꿔봐?!
몸 스와핑_<체인지>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그 마법. 아, 내가 남자였으면. 조신하게 행동하란 잔소리도,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란 호통도 들을 일 없고 생리대의 불편함이나 임신·출산·육아의 공포 따윈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려도 될 텐데. (혹은) 내가 왜 여자가 아닐까. 데이트 비용이 없어도 구박받지 않고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써도 이상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지옥 같은 군대에 끌려가 죽도록 고생하는 불상사는 없을 텐데. 하굣길에 번개를 맞고 정신을 잃은 강대호(정준)와 고은비(김소연)에게 그 마법은 현실로 펼쳐지나 그로 말미암아 돌아오는 건 낯선 괴로움 뿐. 특히 새침떼기 은비에겐 매일 아침 잠에서 깰 때마다 이상해지는 배꼽 아래도, 시종일관 툭툭 치며 우정을 과시하는 남자들의 세계도, 성적이 바닥을 헤매는 대호의 세계도 그야말로 생경할 따름. 반면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붉은 날을 맞아 생리대의 효용과 갑갑함을 동시에 체험한 대호는 예전 힘을 믿고 해결사 역을 자처해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모범생이던 딸아이가 이상하게 변해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해대니 은비 부모가 걱정을 넘어 이민을 결심한 것도 당연지사. 평생 몸이 바뀐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축제를 맞아 록그룹과 함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던 그들. 축제의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 몰려온 폭우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지만 그들의 몸이 제자리로 돌아갈지는 미지수. 천재지변을 통해 몸 스와핑을 경험한 대호와 은비, 어떤 성별이든 힘들긴 매한가지란 사실을 체득하지 않았을까. 정리하자면 손쉬운 삶을 위해 번개를 맞으려 노력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단 뜻.
그저 티켓만 바꿨을 뿐인데...
티켓 스와핑_<바운스>
당신의 뜻하지 않은 행동으로 당신과 타인의 죽음이 뒤바뀐다면? 그야말로 일생일대 최고의, (동시에) 최악의 우연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 결과로 다시오지 않을 완벽한 사랑까지 거머쥔다면 어떨까? 그 선행이 최고의 우연이란 생각에 더욱 기울게 될까?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시카고 공항에서 LA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버디(벤 애플렉)는 아름다운 미미(나타샤 헨스트리지)와 각본가 그렉(토니 골드윈)을 만나 우연히 말을 섞는다. 가족이 그리운 유부남 그렉과 달리 싱글남 버디는 미미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시카고에 더 오래 머물고픈 심정. 그렉이 탈 비행기가 내일로 연기된 데 반해 자신이 탈 비행기는 곧 출발 예정이란 소식을 접한 버디는 그렉에게 자신의 티켓을 건네고 미미와 함께 호텔로 향한다. 운명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 버디가 탈 예정이었으나 그렉이 대신 올라탄 바로 그 비행기가 추락해 그렉은 돌연 이 세상을 뜨고 만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어비(기네스 팰트로)가 두 아이를 위해 자신을 가다듬고 일에 몰두하는 사이 죄책감에 빠져 살던 버디는 그렉의 가족에게 힘을 주고자 어비를 찾는다. 버디가 어떤 사연으로 자신에게 왔는지 모르는 어비. 그녀는 버디의 관심으로 살아갈 힘을 얻고 그녀의 미소를 보던 버디 역시 서서히 사랑을 품는다. 잠깐, 이번 티켓 스와핑은 결국 그렉에겐 손해만 안겨줬으니 공정하지 않은 거래 아닌가. 버디 역시 죽음보다 고통스런 죄책감을 느꼈으니 결국 똑같다고? 어쨌든 이들의 경우를 보건대, 티켓 스와핑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 쪽이 속 편할 듯. 제안하는 사람도 괴롭고 제안받는 사람도 괴로워질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