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현지보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블러드 다이아몬드> LA 시사기
2006-12-28
글 : 황수진 (LA 통신원)
피묻은 다이아몬드의 절규를 들어라

아프리카의 조그마한 마을, 태양이 황금빛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아침 하늘 아래 아버지와 아들이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금세 화면을 가득 메우는 것은 미친 듯이 쏟아지는 총알과 그 앞에서 무참히 고꾸라지는 사람들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그렇게 헤어진다. 애초 워너브러더스가 각본가 찰스 리빗에게 보여준 초안 시나리오는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서는 두 백인 남자들의 아프리카에서의 모험담으로 <인디아나 존스>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각본 작업에 들어간 찰스 리빗은 1990년대 시에라리온을 배경으로 전쟁 중 밀거래되는 보석을 가리키는 ‘분쟁 다이아몬드’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가 결국 초안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정치적 색채가 강한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튜디오가 최종 택한 것은 엔터테인먼트적 성격이 강했던 초안의 방향이 아닌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트래픽>(Traffic, 2000)이라는 찰스 리빗의 시나리오였다. 이는 ‘분쟁 다이아몬드’란 소재에 매료된 감독 에드워드 즈윅과 <트래픽>의 프로듀서였던 마셜 허스코비츠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독은 ‘분쟁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현실을 고발함과 동시에 다이아몬드를 통해 인물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영화를 통해 던지고 있다.

90년대 아프리카 내전과 연계된 다이아몬드 밀거래 고발

<블러드 다이아몬드>에는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서는 두명의 아프리카인이 나온다. 영화의 화자인 멘데족 어부 솔로몬(자이몬 혼수)은 끌려간 다이아몬드 채석장에서 희귀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한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그는 이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아가 언젠가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남들의 눈을 피해 땅에 묻어 숨긴다. 아프리카 베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프랑스로 건너간 자이몬 혼수는 유명한 사진작가 허브 리츠의 문어를 머리에 얹은 흑인 모델 사진의 주인공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이후 배우로서 할리우드로 자리를 옮긴 그는 영화 <아미스타드> <인 아메리카>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보인 바 있다. 이제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온 자이몬 혼수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 솔로몬을 자연스럽고 강렬하게 연기하고 있다.

또 다른 아프리카인은 다이아몬드 밀수꾼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끊임없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전직 용병인 그는 누구보다도 아프리카에 익숙하지만 동시에 이 지긋지긋한 아프리카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그래서 그에게 솔로몬이 어딘가에 파묻었다는 다이아몬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내야만 하는 인생의 마지막 티켓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결국 아프리카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 대니 아처를 매력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올해 <디파티드> 출연에 이어 연기파 배우로 자신의 입지를 영리하게 자리매김해나가고 있다. 이외에도 <블러드 다이아몬드>에는 솔로몬과 대니의 다이아몬드로의 여정에 함께 엮이게 되는 저널리스트 매디 보웬 역으로 제니퍼 코넬리가, 탐욕스러운 대령으로는 <미이라>로 익숙한 아놀드 보슬로가 등장한다.

<라스트 사무라이>를 감독했던 에드워드 즈윅은 내전, 가난, 소년병 등 아프리카의 참혹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상당 수위의 폭력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없이 순수할 것만 같은, 순수해야만 할 것 같은 아이들은 팝이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반은 마약에 취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람들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대고 있다. 지구 저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이 낯선 현실은 마치 지독히 나쁜 꿈을 꾸는 것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다이아몬드를 찾아 나서는 이 두 사람 외에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아프리카인은 솔로몬의 아들 디아다. 앞으로 의사가 되겠다며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반짝이던 디아는 소년병이 되어 돌아와 아버지를 향해 총을 겨눈다. 여전히 아프리카의 미래이고 희망인 디아와 현실 속의 또 다른 디아들은 이제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짊어지고 가야 한다.

기자간담회는 자이몬 혼수와 찰스 리빗(각본)이 한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에드워드 즈윅(감독)이 다른 한팀, 그리고 제니퍼 코넬리, 파올라 웨인슈타인(프로듀서)과 마셜 허스코비츠(프로듀서) 이렇게 세팀으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예의 굵고 낮은 목소리로 아프리카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자이몬 혼수에게서는 진심이, 자신의 연기관과 캐릭터관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서는 스타로서의 성숙함과 명민함이, 그리고 힘들었을 것이 확실한 이번 프로젝트를 끌고 온 두 프로듀서들에게서는 자부심이 느껴진 진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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