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 <프로듀서스> <드림걸즈>. 세편의 뮤지컬영화가 1월과 2월에 찾아온다. 뮤지컬영화의 부활을 알린 <시카고> 이후 할리우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하는 데 다시 재미를 붙였고, 이 세 작품은 2005년과 2006년에 나온 ‘브로드웨이산 할리우드 뮤지컬영화’의 대표 주자다. 지난 한해 일어난 국내 뮤지컬 붐을 타고 뒤늦게나마 찾아오게 된 셈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영화로 옮겨진 과정이, 그렇게 해서 완성된 작품들의 모양새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가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지금 한국 공연예술계는 뮤지컬이 대세다. 지난 한해 115편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고, 400만명의 관객이 보고 갔다. 전체 공연 매출의 절반, 관객 3분의 1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그 기세를 몰아 2007년 역시 크고 작은 라이선스 작품과 창작물 등 150여편의 뮤지컬이 대기 중이다. 그중에서도 우리에겐 <렌트>와 <프로듀서스>가 눈에 띈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여러 차례 공연된 바 있는 <렌트>는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투어 뮤지컬로, 브로드웨이의 인기를 몰아 입성한 <프로듀서스>는 라이선스 뮤지컬로, 지난해 국내 무대에서 모두 선보인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연만이 아니다. 동명 제목의 두편의 뮤지컬영화가 같은 시기에 개봉한다.
주목할 만한 한편의 뮤지컬영화가 더 있다. <드림걸즈>. 이 영화는 이미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유명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뮤지컬-코미디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주제가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어 올해 아카데미 최고의 대어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2003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하여 6개 부문에서 수상한 <시카고> 이후 다시 한번 오스카를 휘저을 뮤지컬영화의 총아로 주목받고 있다. <드림걸즈>는 오스카 시즌에 맞춘 2월 말에 국내 개봉을 준비 중이다.
세편의 영화가 있고,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름 아니라 이 작품들은 흥행성과 작품성 모두를 입증받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할리우드가 영화로 각색하여 완성한 ‘브로드웨이산 할리우드 뮤지컬영화’들이다. 한동안 저조했던 브로드웨이산 뮤지컬 제작은 <시카고> 이후 확실히 어떤 맥을 되찾았고, 우리는 지금 근 한달 사이에 세편의 방문을 연달아 받는다. 흥미로운 일이다. <렌트> <프로듀서스> <드림걸즈>, 이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어떤 모습의 뮤지컬영화로 다시 태어난 것일까. 혹은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는 지금 어떤 공생의 무대를 함께 꿈꾸는 것일까.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로 다시 할리우드로, <렌트>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을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옮겨놓은 작품이다. 뮤지컬 <렌트>에 관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원안, 작곡, 작사를 겸하며 기반을 마련했던 기획 초안자 조너선 라슨의 불우한 죽음이다. 1996년 1월 <렌트>의 초연이 열리기 전날 그는 급성 대동맥 혈전으로 36살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요절했다. “오늘이 아니면 시간은 없다”는 <렌트>의 유명한 대사는 조너선 라슨이 그의 가난한 예술가 동료들을 생각하며 쓴 독려의 전언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유명한 유언처럼 남겨졌다. 독립영화감독, 뮤지션, 공학도, 클럽 댄서, 트랜스젠더 드러머, 행위예술가 등 극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난과 에이즈라는 병마와 싸운다. 한편으로는 아파트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으려는 세력과 싸우면서 보헤미안의 삶을 노래로 칭송한다. 크리스마스 겨울밤으로 시작하는 극은 1년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에 희망을 노래하며 끝을 맺는다. <렌트>는 초연 3개월 뒤 브로드웨이로 입성, 승승장구하며 먼저 간 조너선 라슨의 혼령을 위로했다.
최악의 뮤지컬 프로젝트가 낳은 최고의 뮤지컬 <프로듀서스>
<렌트>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브로드웨이로 진입하며 인기를 얻은 작품이었다면, 2001년 4월 초연한 <프로듀서스>는 사실 할리우드에서 브로드웨이로 먼저 옮겨간 것이다. <고소 공포증> <못 말리는 로빈훗> 등 국내 코미디영화 팬들에게도 익숙한 멜 브룩스가 1968년에 만든 첫 번째 연출작을 스스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옮긴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이제는 한물간 연출가가 되어버린 극중 맥스 앞에 어느 날 숙맥 같은 회계사 레오가 나타난다. 정산을 하다 말고 중얼거리는 그의 한마디, “당신은 실패작을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2천달러를 번 셈이네요”. 그 순간 갑자기 아이디어를 얻은 맥스. 그는 막대한 후원금을 모은 뒤 최악의 뮤지컬을 만들어 첫날 망하기만 하면 후원금의 상당수를 속여 챙기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뮤지컬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 꿈인 회계사 레오를 꼬드겨 계획을 꾸민다. 그렇게 세계 최대 최악의 뮤지컬 프로젝트가 꾸며진다. 그러나 엉터리 스탭에 비호감 스토리라고 자신했던 뮤지컬 <봄날의 히틀러>는 엄청난 호평을 받고 그들의 계획은 반전되고 그 일로 그들의 인생도 뒤바뀐다. 한물간 극중 주인공과 달리 연출과 작곡을 겸했던 멜 브룩스는 당시 쟁쟁하던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등 영국산 브로드웨이 작품들 틈바구니 속에서 미국 토종 뮤지컬의 힘을 과시했다. 그 결과 <프로듀서스>는 토니상 14개 전 부문 수상 후보에 오른 뒤 작품상을 비롯하여 12개 상을 쓸어가는 역대 최다 수상의 진귀한 기록을 남겼다.
초연 이후 25년만의 영화화 <드림걸즈>
사실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던 건 <드림걸즈>다. <빅 드림즈>라는 제목으로 시범상연을 한 바 있지만 이내 도중하차했고, 1년 뒤 10곡을 추가한 뒤 <코러스 라인> 등으로 유명한 안무가이자 연출가인 마이클 베넷의 손에 의해 1981년 12월 초연이 성사됐다. 이후 1985년 8월까지 브로드웨이에서 1522회 공연을 열며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했다. 백 보컬로 시작한 3인조 흑인 여성밴드 ‘더 드림즈’의 이야기는 무명에서 스타로 도약하지만 다시 해체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60년대와 70년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흑인 음악의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실존했던 여성 밴드 수프림즈와 그중 한명이었던 다이애나 로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이 뮤지컬의 초기 프로듀서 중 한명이자 판권 소유자인 드림웍스의 공동대표 데이비드 게펜은 오랫동안 애지중지하며 이 프로젝트를 아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구이자 프로듀서인 로렌스 마크가 <드림걸즈>의 감독으로 빌 콘돈을 추천했을 때도, “이 작품은 영화화하기에 부담이 크다. 만약 영화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뮤지컬 원작은 물론 마이클 베넷의 명성에도 누가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시카고>의 각색자 빌 콘돈의 연출의도를 듣고는 결심을 바꾸었고, <드림걸즈>는 초연 이후 25년이 지나 영화로 옮겨졌다.
배우를 바꾸거나, 감독을 바꾸거나 혹은 드림팀을 꾸리거나
할리우드가 브로드웨이가 아니듯이, 스크린은 무대가 아니다. 거기에는 매체의 번안이라는 과정과 전략이 있게 나름이다. 우선 무대 위의 주연을 거의 고스란히 데려오고, 연출은 기존의 할리우드 감독에게 맡기는 것, 그게 <렌트>의 방식이다. “극중 나이에 비해 배우들의 실제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이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에 굴하지 않고 댄서 역의 미미와 변호사 역의 조앤을 제외한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은 모두 초연 당시의 오리지널 캐스트다. 한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저스틴 팀버레이크라는 팝계의 걸출한 청춘스타들의 출연이 설왕설래했지만, ‘그래도 준치’ 아니겠냐는 작전으로 밀고 나간 셈이다. ‘애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해진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가 연출을 맡았다는 것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어쨌거나 본인은 “이 작품을 초연 당시 보았고, 그전까지 그런 감동적인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5일 뒤에 연거푸 다시 보러 갔을 정도였다”며 원작과의 영적 교감을 강조한다.
<프로듀서스>가 선택한 방식은 오리지널 캐스트를 데려오되, 스타급 영화배우를 조연으로 활용하고, 다시 연출은 기존 브로드웨이 연출가에게 맡기는 방법이다. 맥스와 레오를 연기한 오리지널 캐스트 네이선 레인과 매튜 브로데릭이 영화에 출연하고, 엉터리 작가 프란츠 역과 백치의 스웨덴 비서 역으로 윌 페렐과 우마 서먼이 가세하고, 뮤지컬 무대를 지휘하며 연출과 안무를 맡았던 수잔 스트로맨이 그대로 감독을 맡게 된 경위가 그것이다. 수잔 스트로맨은 “그(멜 브룩스)는 내게 뭘 해도 좋다고 했어요. 단, 돈만 쓰지 말라고 했죠”라며 농담처럼 회상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연보다 4배가 넘는 4500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하여 각종 소품과 규모를 키우고, 그동안 수잔 스트로맨 자신과 함께했던 배우들을 총출동시키는 등 화려한 뮤지컬영화로 다시 태어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철저하게 대중영화의 속성에 맞추는 것, 그건 <드림걸즈>의 방식이다. 기존의 성공적인 뮤지컬영화의 각색자를 연출로 영입하고, 낯익은 할리우드 스타로 거의 모두를 캐스팅하고, 많은 물량을 투입하고, 거기에 뮤직비디오와의 교접까지 갖추는 것. 뮤지컬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시카고>의 각색자 빌 콘돈의 연출, 데스티니즈 차일드 출신의 비욘세 놀즈, <레이>의 제이미 폭스, 아메리칸 아이돌의 스타 제니퍼 허드슨, 그리고 에디 머피와 대니 글로버의 출연. <드림걸즈>는 흥행 면에서도 가공할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개봉하여 현재 미국에서 개봉 중인 <드림걸즈>는 1월2일 집계 기준으로 852개라는 적은 스크린 수에도 불구하고 416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점점 더 달아오르는 열기에 힘입어 1월12일 주말을 기점으로 1800개 스크린으로 확대 개봉할 예정이다.
복잡한 플롯 대신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원초적 즐거움을 앞세우는 장르가 바로 뮤지컬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세편의 작품 중에서 상대적으로 <드림걸즈>는 가장 화려하다. 물론, 고전 뮤지컬의 애호가들이라면 당연히 <드림걸즈>보다는 정통적인 뮤지컬 방식으로 만들어진 <프로듀서스>를 훨씬 선호할 것이다. 작품만을 놓고 보면 <프로듀서스>가 <드림걸즈>보다 한수 위의 뮤지컬 교양을 자랑한다.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도전적인 시도로 남을 만한 <렌트>는 그러나 다소 뒤처진다. 그건 예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적 방식의 결점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할리우드의 오랜 연인
확실히 브로드웨이 할리우드 뮤지컬 제작의 물길을 텄던 <시카고>의 성공 사례를 가장 충실히 연구한 건 <드림걸즈>다. <시카고>가 할리우드를 고무시킨 바가 무엇이었던가. 그건 1억7천만달러를 벌어들이고도 막강한 호평까지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장르가 바로 뮤지컬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라면 그 둘을 동시에 손에 넣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면서도, 오래도록 두고 새길 만한 작품으로 남을 것인가. 이를테면 브로드웨이의 매혹을 어떻게 할리우드의 매혹으로 옮길 것인가, 그건 늘 관건이다. 원작에 기대거나 힘없는 본뜨기일 경우 언제든지 범작이 나올 수 있다는 건 이미 <오페라의 유령>이 남긴 교훈이 아니던가.
브로드웨이에서 할리우드로. 이건 사실 길고도 많은 동고동락의 역사를 갖고 있다. 언뜻 꼽을 수 있는 것만 해도 <42번가> <쇼 보트> <애니여, 총을 들어라> <오클라호마> <마이 페어 레이디>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그리고 근래 들어서만도 <오페라의 유령>까지. 세는 것이 다 불가능할 정도다. MGM/UA의 핵심 제작자이자 공연부문 사장인 달시 덴커트는 최근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 사이의 사랑과 증오와 사랑의 관계”라는 부제가 달린 <파인 로맨스>(Fine Romance)라는 제목의 책을 내고는 그녀의 경험에 따라 그 주요작을 회고한다. 그녀의 개인적 술회에 따르면, “브로드웨이 쇼의 가장 창조적이고 만족스러운 현실적 영화 각색”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고, “길들여지지 않은 완전히 다른 하나의 작품으로 보이는 무대 방식으로서 완벽하게 스크린에서 재구상된 첫 번째 메이저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카바레>다. 그리고 <카바레>의 작사가와 작곡가 프레드 엡과 존 컨더가 참여한 또 하나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카고>, 그걸 옮긴 영화에 대해서는 “내가 본 것 중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진 최고의 각색”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 <시카고>가 브로드웨이에 대한 할리우드의 지금 애정을 꽃피운 셈이 됐다.
‘from 브로드웨이 to 할리우드’는 계속된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후반작업 중인 브로드웨이산 뮤지컬영화가 한편 더 있다. 존 워터스의 컬트영화를 브로드웨이가 가져가 성공시키고, 다시 뮤지컬영화로 귀환하게 된 <헤어 스프레이>. 60년대 볼티모어에 사는 뚱뚱한 소녀가 유명 쇼에 나가서 모두의 사랑을 받게 되는 유쾌한 이야기. <웨딩 플래너>를 만든 애덤 솅크먼이 연출하여 후반작업 중이고, <그리스>와 <토요일밤의 열기>의 신화 존 트래볼타가 몇 십년 만에 몸을 푼다. 그것도 존 워터스의 원작영화에서는 워터스의 히로인 디바인이 연기했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는 독창적인 역할로 인기를 모았던 소녀의 ‘엄마(!)’ 역이다.
무대에서나 스크린에서나 뮤지컬은 꿈과 판타지를 소망하는 장르다. 마침내 꿈을 이루는 초심자나 얼치기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수없이 많은 해피엔딩을 맞는 것에도 이유는 있는 셈이다. <렌트>의 가난한 예술가들과 <프로듀서스>의 귀여운 짝패와 <드림걸즈>의 삼총사 소녀는 꿈을 꾼다.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그게 모여 뮤지컬 장르의 꿈이 된다. 할리우드는 그 광맥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몇년 전에 이미 벌써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아가씨와 건달들> <피핀>의 판권을 사들였던 할리우드는(거꾸로 공연 제작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언제든지 그 꿈을 꿀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할리우드로 가는 그 길, 지금 거기에는 꿈꾸는 마차들이 여러 대다. 그리고 우리는 그 황금마차를 기다린다.
뮤지컬 무대로 날아간 영화들
영국의 <풀 몬티>, 미국의 <가위손> 등, <이>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국내에서도 활발
오랫동안 영화와 뮤지컬은 불공정한 거래를 해왔다.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 때에는 무언가 축소한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풀 몬티>는 국적과 매체를 바꾸었음에도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 뮤지컬이다. 중년 실업자들의 스트립쇼를 다룬 코미디영화 <풀 몬티>는 <프랭키와 자니>의 원작을 쓴 극작가 테렌스 맥널리가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가난하고 위축된 남자들의 일상을 세심하게 다루는 데에까지는 손길이 미치지 못했지만, 유머와 연민이 살아 있고, 디스코 위주였던 영화음악을 다양하게 변주한 노래들도 사랑을 받았다. 영국 뮤지컬 <금지된 행성으로의 귀환>은 저예산 SF영화 <금단의 행성>을 각색한 작품이다. <금지된 행성>은 외계 행성에 착륙한 탐사단이 오래전부터 그곳에 정착해 살아온 미친 과학자와 그의 아름다운 딸을 만나는 이야기. 뮤지컬은 50, 60년대 인기곡에 가사를 바꾸어 붙여 경쾌한 분위기로 무대를 이끌었다. 분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의 안무가 매튜 본은 팀 버튼의 서글픈 로맨스 <가위손>을 댄스뮤지컬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뮤지컬로 만드는 데 영국보다 앞서는 나라는 단연 한국이다. <행진!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삼류 밴드의 이야기였기에 뮤지컬로 안성맞춤이었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각색해 몇년째 공연을 하고 있고, <왕의 남자>의 원작인 연극 <이>(爾)는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연극을 다시 뮤지컬로 각색하는 다소 복잡한 탄생 과정을 거쳤다. 이 밖에도 <싱글즈> <댄서의 순정>처럼 주로 작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었던 영화들이 뮤지컬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기 위해 대기 중이다. 한국 뮤지컬 업계의 영화 사랑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감옥에서 록밴드를 결성한 여죄수 4명의 탈주극인 독일영화 <밴디트>, 80년대 10대들을 사로잡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가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폴 인 러브>로 공연사업에도 뛰어든 <말아톤>의 제작사 시네라인-투는 <라 스트라다>를 뮤지컬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