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 리뷰]
같이 즐기거나, 욕하거나.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2007-01-10
글 : 박혜명
글 :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일시 1월10일
장소 대한극장

이 영화
카자흐스탄 방송국에서 일하는 리포터 보랏 사디예프는 ‘세계의 1등 선진국’인 미국 문화 체험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한다. 프로듀서 아즈맛과 함께 뉴욕으로 떠난 그는 날마다 컬처 쇼크를 받으면서 조금씩 미국에 대해 알아간다. 우연히 TV시리즈 <베이와치>를 보고 파멜라 앤더슨에게 반한 보랏. 계몽용 다큐멘터리 제작도 뒤로 하고 그녀가 산다는 LA로 무작정 향하는데, 믿었던 동료 아즈맛과 불화를 겪고 빈털터리가 되는 등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100자평
원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비서구를 타자화하면서 이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보랏>은 거꾸로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해 서구(의 대표격인) 미국을 조롱한다. ‘코드’를 모르는 카자흐스탄 촌놈, 보랏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어떠한 짓거리를 해도 대충은 용서가 된다. 왜냐? 모르니까! 정치적 올바름에서 해방된 <보랏>은 좌우상하로 미국사회를 들쑤시며 조롱한다. 게이들을 조롱하는가 하면 상류층의 위선을 까발리고, 기독교 근본주의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아무래도 미국사회의 ‘코드’를 가지고 노는 게임이어서 ‘코드’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조금 더 웃겠다. 예컨대 게이들의 놀이문화인 게이 레슬링을 알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상황이 파악되고, 오순절 교회가 미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면 기독교에 대한 풍자가 조금 더 실감있게 와 닿는다. 하지만 보랏의 뉴욕 찍고, 아틀란타 찍고, LA 찍고, 지나가는 여행처럼 미국에 대한 비판도 수박 겉핥기로 나열된다.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기대 이하,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기대 이상.
신윤동욱/ <한겨레21> 기자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는 카자흐스탄의 리포터 보랏 사디예프가 ’자국의 영광스러운 발전을 위해’ 미국을 공부하고 오겠다고 떠나 찍은 다큐멘터리다. 혹은 다큐멘터리로 가장한 ’뻥!’이다. 영국의 스타 코미디언 사샤 바론 코언이 창조한 캐릭터 보랏은 반유대주의와 여성비하적인 사상을 ’무기로 삼아’ 세계의 피스메이커를 자청하는 거대 국가의 경직성과 모순을 신랄하게 파헤친다. 몰래카메라 형식의 ’리얼’ 다큐와 연출 의도가 빤히 드러난 페이크 시퀀스들이 합쳐진 혼돈의 리얼리티 놀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당신의 입장 선택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보랏…>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함’에 대한 공격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방법론을 사용함으로서 모든 비판의 잣대를 벗어나 성역에 머무르는 영리한 정치물이기 때문이다.
박혜명/ <씨네21> 기자

눈물은 류(類)적인데 반해, 웃음은 사회적이다. 즉 신파는 만국공통이지만, 코미디는 정치적이다. <보랏...>은 유태계 영국코미디언 사샤가 허구의 카자흐스탄인 보랏으로 가장하여 미국문화를 체험한다는 설정의 세미-다큐이다. 영화 속에서 보랏은 카자흐스탄과 서구세계와의 '문화적 차이'를 가장하여, 유태인,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동물 등을 무참하게 모욕해댄다. 영화는 날조된 '문화적 차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서구세계에서 통용되는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를 짓밟는다. 이 영화의 조롱을 어찌 보아야 할 것인가? 또는 이 영화가 미국에서 흥행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물론 <보랏...>을 미국사회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풍자하는 영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영관내에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갑갑한 족쇄가 풀린 채, 속 시원히(?) 자행되는 소수자들에 대한 공격에 통쾌함을 느껴 터져 나온 웃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보랏>은 카자흐스탄이라는 엄연한 문명국의 이름을 도용하여, 해괴한 야만인의 역할을 부여하고, 서구문명에 대한 자조를 퍼붓는 체하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온갖 정치적 막말을 뱉어내는 영화이다.

유태계 영국인 사샤는 카자흐스탄인 보랏의 가면으로 온갖 악질적인 발언을 해대는 자신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주고 있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아직 가식적으로나마 확립되지도 못했고, 그 올바름을 조롱하기보다는 도덕적으로 요청해야만 하는 사회의 시민들이 모두 그에게 깔깔 웃으며 면죄부를 주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참고로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여전히 감이 오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국내 코미디를 가상해 보는 것이 어떨까? 호남출신에 일산주민인 토크쇼 사회자가 경남 사천에서 막 올라온 청년으로 분장하며, 서울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서울에는 전라도 놈들, 계집년들, 불구자 새끼들, 동남아 깜씨들, 변태 호모새끼들 천지 삐까리일세!'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고, '우리 동네에선 다 이레 말하제, 하므!'라는 코미디를 한다면, 여기서 웃을 사람들은 서울토박이 마초남자들 외엔 없을 것이다.
-황진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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