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가 온전한 승리가 아니고, 패배도 완전한 패배가 아니다. <묵공>에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마치 실생활과 같다. 삶이라는 건 평탄하게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혁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내가 목표했던 이상이 담겨 있다. 또 다른 미래,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그 속에서 승자를 가린다면 누구를 지목하고 싶은가.
=영화 속에선 승자가 없다. 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 속에선 모두가 패배자다.
-혁리는 서부극의 페이소스 많은 주인공을 닮았다. 훌쩍 나타나 누군가를 구하려 애쓰고, 많은 사연을 남기고 떠나간다.
=마카로니 웨스턴의 냄새를 풍기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중국적 상황에 더 가깝게 묘사했다. 혁리도 좀더 중국적인 인물이다.
-모처럼 구슬이 잘 꿰어진 아시아 합작영화가 나왔다. 요즘의 한국은 아시아시장을 겨냥한 합작에 힘쓰고 있는데 어떤 점이 중요할까.
=제작자가 합작을 추구하는 건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의 배우를 기용함으로써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성공적인 합작이 되기 위해선 배우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이전의 한·홍 합작들을 홍콩인의 입장에서 보면 왜 저 한국 배우를 썼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평이 많았다. 이번에 안성기라는 배우를 선택한 건 탁월했고, 실제로 지금 중화권에선 배우에 대한 평과 작품에 대한 평이 굉장히 좋다. 첫 번째 성공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배우라면 누구의 작품이건 어느 시장을 겨냥한 영화이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감독이라면 한국 배우를 쓸 텐데 특정 시장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꼭 환영받을 만한 배우를 쓰겠다.
-같이 하고 싶은 한국의 감독이나 배우는.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해보고 싶다. 배우는 상관없는데 안성기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그건 감독에게 맡기겠다.
-얼마 전 홍콩 취재를 갔다가 프로듀서이자 감독인 대니얼 유를 만났는데, 그날 당신과 3시간 넘게 통화한 뒤 지쳐 있더라. 그런 에너지가 당신의 힘인 듯했다. 일종의 완벽주의인가.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완벽주의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이미 완벽을 추구했으니까 잘 안 돼도 아쉬움이 없다. 나로선 최선을 다했으니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슬픈 로맨스가 잘 어울린다. <묵공>에서도 판빙빙과의 로맨스가 전혀 어색하지 않던데, 이번 영화의 중심은 로맨스가 아니다. 어떻게 균형을 잡아갔는지.
=지금도 로맨스가 가능한 건 영화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래서 변함없이 유지되는 게 아닐까. (웃음) 이 영화는 비극적 상황과 로맨스를 평행하게 이어가면서 그 중심을 잘 잡았다.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여기서처럼 아름다운 사랑이고 사랑한 만큼 이루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혁리는 슬픈 스타다. 타인을 위해 헌신하지만 그들은 혁리 같은 인물을 소모한다. 자신을 슬픈 스타로 생각한 적은 없나.
=영웅이 되고 싶긴 하지만 비극적 영웅이 되긴 싫다. (웃음) 혁리 같은 인물을 대단히 좋아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우둔하고 고지식한데 이 세상에는 이런 인물이 많이 나와줘야 한다.
-시나리오를 보고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인가.
=그렇다. 감독이 받아주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고. 하지만 촬영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런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는다. <묵공>에서 아이들과 떠나는 장면은 내 의견이었다.
-몇년 뒤를 계획하며 사는지. 그때 자신의 모습은.
=아주 구체적으로 몇년 뒤를 계획하지는 않지만 당분간 아시아의 좋은 감독, 배우, 스탭과 공통의 목표를 이뤄가는 프로젝트에 힘쓰고 싶다. 5년 안에 결혼하고 아이 낳아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망은 있다.
-꾸준한 외모를 유지하는 비결은.
=일상생활과 밀접한데 20년 동안 특별히 바뀐 게 없다. 생활이 일관적이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더불어 낙관적인 마음가짐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