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놈 목소리>와 감독 박진표 Part 1
2007-02-0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현상 수배극’이라는 슬로건을 건 박진표 감독의 신작 <그놈 목소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16년 전 있었던 실화 이형호 유괴살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며, 그의 세 번째 작품이다. 박진표 감독은 세편 모두 실화 소재의 영화를 만들었다. 소재가 된 사건의 전모, 급박했던 제작 상황, 영화 속 실제와 허구의 묘한 동거, 박진표 영화의 특징 등에 초점을 맞춰 <그놈 목소리>를 살펴본다. 그리고 현상 수배극이라는 영화를 만든 이 감독, 박진표는 누구인지를 덧붙인다. <그놈 목소리>를 통해 보는 ‘영화와 사람’, 박진표와 <그놈 목소리>에 관한 1인2색.

영화사에 기록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1976년 미국 댈러스에서 로버트 우드라는 경찰관이 총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랜덜 데일 애덤스라는 청년이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훗날 80년대에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다른 작품을 준비하다가 수감 중인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다른 모든 죄수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황을 들은 감독은 정말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겼고, 랜달 데일 애덤스가 아니라 사건 당시 또 한명의 용의자였던 데이비드 해리스가 진범임을 확신하게 됐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한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흥미로운 건, 데이비드 해리스와 랜덜 데일 애덤스를 포함하여 관련 인물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재연이라는 방식으로 다분히 저널리즘적 형식을 동원하여 조합된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한때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 형식에 관해 거론하는 건 차치하고라도, 누가 진짜 범인인지는 적어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또 다른 범죄에 연루되어 체포된 뒤 결국 사형당한 데이비드 해리스는 죽기 전에 로버트 우드 살인사건의 진범이 자신임을 자백했고, 랜덜 데일 애덤스는 이 영화의 증언에 힘입어 세간의 관심을 얻어 십여년이 넘는 옥살이를 마감하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감독 에롤 모리스가 1988년에 만든 <가늘고 푸른 선>의 일화이며, 이 영화는 무고하게 감옥살이를 했던 한 인간의 삶을 구해내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소재로 삼은 사건의 양상도 다르지만, 결국 <그놈 목소리>가 갖고 싶어하는 어떤 후일담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결말일 것이다.

존재 목적을 가진 상업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강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스크린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 시선은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네가 지금 거기 앉아 있겠구나, 그리고 이걸 보겠구나,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라고. 지금도 대한민국 어느 곳에 살고 있을 그놈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그놈 목소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간다. 다소 과장되어 들리기는 하지만 “현상 수배극”이라는 용어로 영화를 설명하고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제 범인의 전화 협박 목소리를 들려주고 몽타주를 보여준다. “1991년 이형호 유괴살해사건, 현재까지 15년간 경찰병력 3만명 투입, 420명 용의자 검거 및 수사, 87건의 음성 및 필적 감정, 2006년 1월 공소시효 만료” 등을 자막으로 요약한다. “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찍은 거고,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존재 가치다. 끝까지 간 거고, 끝까지 가자는 말을 스스로 내게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감독은 말한다. 상업영화가 이런 방식을 취하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형호는 1991년 1월에 실종되었다가 44일 만에 한강 둔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언론은 이를 두고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이라고 불렀다. 범인은 총 87차례의 협박전화를 했고, 부모는 44일간 피를 말리다가 결국 죽어도 못 잊을 슬픔을 맞았다. 1992년 당시 SBS의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조연출이었던 박진표는 형호가 죽은 지 1년 뒤 첫 회를 만들 때 그 부모의 증언과 울음을 곁에서 생생하게 듣는 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에 범인이 워낙 소름끼치고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문에 찧어 손이 시커멓게 돼도 아프지 않다는, 정말 많이 울던 그 부모”를 보며 “내가 나중에 영화를 하게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5년간 매일 그 생각만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15년간 마음속에 담아왔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는 <너는 내 운명>이 끝나고 나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었던 이 프로젝트에 대한 시나리오를 썼다.

실화와 극화 사이, 전달과 주장 사이

강남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상우는 조금 통통하긴 해도 귀여움이 넘치는 소년이다. 그 소년의 아버지(설경구)는 유명한 9시 뉴스 앵커이고, 아들의 비만을 걱정하여 다정하게 운동을 독려할 줄 아는 어머니(김남주)는 현명해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없어졌고,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부모는 번갈아가며 꼼짝없이 범인이 시키는 대로 돈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온갖 서울 시내를 뛰어다니지만, 범인은 아들의 음성조차 쉽게 들려주지 않는다. 상우 엄마의 신고로 경찰이 비공개 수사를 펼치지만 번번이 범인을 잡는 데 실패한다. 전담 잠복을 맡은 김 형사(김영철)는 심지어 눈앞에서 범인을 놓칠 뿐만 아니라 농락당하는 꼴이 되고 만다. 범인은 지독하고 경찰은 무능하고 부모는 애간장이 탄다. 44일이 지나 아들은 죽어서 시체로 발견되고 아버지는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한다.

감독은 무엇보다 이 실화를 틀림없이 그 실제 장소에 가서 촬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꼭 그래야 하는 장소가 있다고 여겼다. “처음부터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 장소에 갔을 때 체감되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촬영하기에 용이한 곳 보다 어려운 곳이 더 많았다. 그중에서도 실제 형호네 가족이 살던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형호가 실종되었던 그 아파트 내의 놀이터에서 촬영을 허가받는 건 거의 사투였다. 감독은 머리끝까지 예민해졌고, 제작자부터 프로듀서, 제작부원들까지 모두가 발벗고 나서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설득하고 빌었고, 천운처럼 그 실제의 계단과 아파트 외관과 놀이터 등에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들어가는 배우나 스탭이나 연출자인 나까지 더 절박한 심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는 것이 지금도 변함없는 감독의 생각이다. 대부분 실제의 장소에서 찍었지만, 때때로 대한극장이나 갤러리아백화점처럼 당시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한 곳은 다른 극화된 장소를 마련했다. 대한극장은 극동극장 골목으로, 갤러리아백화점은 남산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허구로 추가된 장소 중 중요한 곳은 롯데월드일 것인데, 의미상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가족 단위로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러오는 그곳에서 돌려받기로 한 아이를 결국 찾지 못하고 돈만 빼앗기는 아버지의 모습은 다른 가족들의 축제 분위기에 둘러싸여 허망하기만 하다.

영화 속 상우의 부모가 실제와 허구의 장소를 따라 허겁지겁 끌려다니는 동안 그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데 그 이야기 역시 실제의 이야기와 허구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진행된다. “나도 이제 잘 모르겠다. 뭘 바꾸고 안 바꾼 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여겨지는, 가령 쓰레기통 속의 쪽지를 따라 범인의 지시를 이행하는 장면 등은 실제로도 같았다. 범인이 몰고 가는 차 트렁크에 숨어 있다가 범인을 잡기는커녕 벌거벗겨진 채로 어딘가 교외에 덜렁 버려진 경찰의 행색은 사실 그대로가 아닐지라도 그걸 상상하게 할 만한 일들은 있었다. 혹은 지친 아버지가 차 안에서 잠이 들어 있을 때 범인이 찾아와 “생각보다 긍정적이시네요. 침도 흘리시고”라는 문구를 써놓고 가는 장면은 그 문구가 실제가 아닐 것임에도 그 범인이 했던 행동 그대로다. 감독으로서는 “실화와 극화의 경계를 지켜나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실화를 영화로 만들 때 조심하고 스스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게 바로 그런 범위를 조율하는 일인 것 같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놈의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이야기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건 감독도 잘 안다. “공소시효 지난 15년 뒤의 피폐해진 부모를 주인공으로 지난 일을 회상하는 방법도 있고, 그 사건이 있은 지 1년이나 2년 뒤 그들의 모습 또는 공소시효 직전에 일어나는 이야기 등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44일간의 그들의 피말리는 흔적을 그리기 위해 나름대로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걸 버렸던 건 나름 자랑이라면 자랑”이라는 것이다. 이건 “부모의 절박한 심정을 위배하고 배신해서는 안 되고 부모가 주체가 되는 영화”다. “경찰이나 범인의 영화로 만들면 자칫 게임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의 큰 원칙이 범인을 잡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스타 강동원이 범인인 그놈 목소리를 연기한 것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아니었다.

여기에 영화적인 장치들이 뒷받침되고 있는데,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사용되고 있고, 그걸 2.35:1의 화면비로 담았고, 카메라의 사용에 있어서는 두대의 카메라로 다른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 “한대는 들고 가되 범인이 협박하는 느낌으로 또 하나는 고정으로 가되 범인에 의해 협박받는 부모의 느낌으로였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형호의 그림자도 조심스럽게 넣었다. “첫 장면에 아이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질 때 자세히 보면 형호의 사진이 끼워진 액자가 화면 왼쪽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꽃길을 따라 형호의 영정이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내내 형호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혹은 상우의 사체가 발견되고 난 뒤 부모가 우리 다시 애를 낳자며 가슴 아파하는 장면까지는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가를 기타 연주로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자는 기독교인 박진표의 기도다. 무엇보다, 박진표는 전작 <너는 내 운명>에서 대단히 힘있는 클라이맥스를 선보였는데, 이번에도 그 점을 눈여겨보게 된다. 그건 상우 아버지의 직업이 뉴스 앵커(그것도 9시 뉴스)라는 설정과 연관되는 것인데, 범인은 “대한민국에서 한경배 앵커 얼굴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 사람은 변호사도, 검사도, 의사도 아니다. 텔레비전에 나오지만 쇼 프로의 사회자도, 노래하는 가수도 아니다. 박진표는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일인칭 화법’으로 클라이맥스의 정점을 친다.

“상업적인가 아닌가의 논란, 얼마든지. 작위적인가 아닌가, 얼마든지. 연출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그것도 얼마든지. 그렇지만 가족들 몇명, 형사들 몇명이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를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로 바꾸고 싶었다는 우리의 의도를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얼마든지가 아니다. 이 영화는 나의 실험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실험이기도 하다.” 그게 박진표가 <그놈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진의다.

당신이 그 만분의 일의 불운을 안게 된다면

박진표의 영화는 요즘 보기 드물게 어떤 ‘주장과 주의(ism)’를 갖춘 영화적 퍼스낼리티를 표방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회파인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순정주의다. 박진표의 영화에 관해 말할 때, 그 어떤 순정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화 속 인간의 순애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순정’을 믿는 긍정성 자체다. 사랑에 대해 말할 때 그 사회의 순정에 대한 믿음은 일반의 젊은 남녀가 아니라 노인들의 드문 육체적 열망까지, 에이즈 환자와 농촌 총각의 드문 사랑까지 아름답고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또는 슬픔에 대해 말할 때는 우리가 직접 겪은 바가 없더라도, 아이를 유괴당하고 울부짖는 이 부모의 찢어진 마음을 느끼고 같이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박진표는 호소하되 순정을 통해 호소한다. 사회의 문제를 다루더라도 투명하고 본래적인 순정에 대한 공유를 항상 염두에 둔다. 그것이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남다른 무의식이거나 소신이다.

이를테면, 사회의 순정을 말하기 위해 박진표는 ‘만분의 일에 관한 영화’를 선택한다. 노쇠한 노인들이 서로의 육체를 그렇게나 아름답게 사랑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혹은 그걸 당당하게 드러낼 만한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에이즈 환자와 그를 죽도록 사랑하는 순박한 남자가 끝까지 맺어질 그 관계의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내 아이가 유괴되어 세상을 잃어버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너는 내 운명>이 희귀하기 때문에 더 행복한 결말이라면, <그놈 목소리>는 그 확률의 수치에 거꾸로 내가 당첨되었을 때 떠안을 수 있는 안존의 섬멸을 섬뜩하게 떠올리게 한다.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을 유도할 때 힘을 발휘하게 된다.

영화는 완성된 영화 자체로 이해되어야 하므로 <그놈 목소리>에 대한 평가는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 빚지지 않은 채로도 꾸준히 말해져야 할 것이다. 우선은 의도에 비해 형식의 밀도는 낮은 편으로 보이지만, 영화가 믿는 사회적 순정, 그 순정을 통한 교감의 시도 혹은 직설적인 언급은 미덕이 될 만하다. 거기에 덧붙여져 영화 바깥의 기적까지 일어나면 더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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