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사회의 어디에서건 불안을 느낀다, 소노 시온 감독
2007-02-07
글 : 정재혁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노리코는 식탁이 불편하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시간에 그녀는 저항감을 느낀다. 겉으로 보면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노리코네 가족은 서로 ‘관계하고’ 있지 못하다. ‘집단자살’이란 키워드로 일본사회의 병폐를 읽어냈던 <자살클럽>의 소노 시온 감독이 그 연작으로 <노리코의 식탁>을 만들었다. 영화가 완성된 지 2년 만의 한국 개봉이지만, 그는 여전히 영화의 메시지는 유효하다고 말했다. 영화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영화 속 가족의 불안과 그 해답에 대해 물어보았다.

-<노리코의 식탁>은 당신의 ‘자살서클 3부작’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뭔가.
=<자살클럽>을 만든 뒤 한 회사로부터 영화를 소설로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와 똑같은 내용의 소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전혀 다른 내용으로 소설을 썼고 그게 <자살서클: 완전판>이다. <노리코의 식탁>은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당신의 18번째 작품인 <기묘한 서커스>도 개봉했다. <노리코의 식탁>과 <기묘한 서커스>에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매우 불안하게 그려진다. 당신이 바라보는 현재 일본의 부녀관계가 궁금하다.
=일단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부녀관계를 그린 건 우연인 것 같다. 하지만 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가족이다. 실제로 영화를 만들 때 나는 아버지를 많이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기에 앞서 취재를 많이 하는데, <기묘한 서커스>와 <노리코의 식탁> 때는 근친상간, 가출소녀에 대한 취재를 많이 했다.

-<노리코의 식탁>에서 그려지는 가족은 어느 정도 취재를 바탕으로 한 건가.
=대략 50여명을 만나 취재했고, 그걸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가정을 특별히 나쁘게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가 불륜을 저지르거나, 딸이 불량하거나, 가족 중 누군가는 매일 술만 마시거나. 딱 보기에도 부정적인 요소는 배제했다. 겉으로 보기엔 행복한 가정이 해체되는 것이 이번 영화의 중요한 테마다.

-그렇다면 당신은 겉으로 보기에 행복한 가정이 왜 불안하다고 생각하나.
=실제로 일본에서는 가족 내 살인이 자주 일어난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는 역시 행복을 바라는 가족 개개인의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정은 행복을 지나치게 추구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행복은 주로 부모의 행복이다. 부모들이 지향하는 행복은 자식들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아버지의 방침은 자녀들의 생활방식과 어긋난다. 부모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로 인해 자식들은 피해를 본다.

-하지만 극중에서 노리코는 집을 나와서도 행복해 보이지 않다. 코인 로커에서 태어난 쿠미코의 삶도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골에서 도쿄로 올라온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남자를 만나고,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 가정이 싫어서 도쿄에 온 사람이 또 다른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냥 똑같은 가정이 이동한 거랄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명확히 알지 못하면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도 찾을 수 없다.

-주인공이 도쿄로 상경하는 이야기는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지만, 당신의 영화는 이를 매우 비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상경의 결말이 이미 실패로 결정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가 많다. 나도 17살 때 집을 나왔고, 당시 쿠미코처럼 불안감을 느꼈다. 극중에 나오는 대사처럼 단지 현재와 ‘전혀 다른 곳에 가보고 싶어’서 가출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가족은 결국 해체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기본적으로 그렇다. 그리고 이미 일본의 가족은 많이 해체된 상황이다. 뉴스를 틀면 매일같이 가족 내 살인사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있으니까.

-<노리코의 식탁>의 마지막 장면에선 흩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 식사를 한다. 이 장면의 의도는 뭔가.
=그건 단지 ‘렌털 가족’(노리코는 도쿄로 올라온 뒤 쿠미코와 함께 남의 가족인 척 연기하며 돈을 받는 일을 한다)의 연장이다. 물론 아버지에겐 그 장면이 가족을 재생하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딸들은 이를 렌털 가족의 연장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 아버지의 행복을 연기하는 것이다. 노리코네 가족은 여기서 ‘진정한 가정’을 이뤘다기보다 강요된 행복을 철저하게 연기하고 있다.

-영화는 가족에 대한 매우 잔인한 이야기지만, 이를 구성하는 요소는 다분히 소녀적이다. 노트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포스터가 붙여진 벽에 글을 쓰는 등. 당신은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더 많은 불안을 느끼나.
=기본적으로 남자를 비추는 거울과 여자를 비추는 거울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폭력적인 면이 강하고, 여자들은 섬세하고 내향적인 면이 강하다. 또 여자들의 이야기는 논리적이라 작품을 만들기에 더 쉽다. 내가 소녀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살인사건이나 자살 등 일본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영화를 찍으면 그런 일들이 꼭 한두건씩 일어난다. 나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 그 영향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예감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고 앞으로 다가올 일을 그린다. <자살클럽> 때에도 영화가 개봉한 뒤 실제로 인터넷 자살이 많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당신이 느끼는 현재 일본사회의 병폐, 불안은 뭔가.
=일본사회의 어디에서건 불안을 느낀다. 취재를 하는 도중에도 느끼고, 현실의 공기에서도 느낀다. 물론 내가 일부러 영화 속에서 최악의 상황을 그리려는 건 아니다. 내 영화가 부정적인 분위기이긴 하지만, 관객에게 부정적인 걸 심어줄 마음은 없다. 다만 곤란한 상황에 빠진 인물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렸을 때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극중 ‘당신은 당신과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라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노리코와 미츠코(노리코의 인터넷 닉네임)는 서로 관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나.
=그렇지 않다. 노리코는 자신과 관계할 수 없어서 미츠코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노리코는 미츠코가 되어도 실제로 변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노리코는 자신을 꾸미려고 한다. 극중 노리코가 잠꼬대로 ‘나는 노리코다’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미츠코는 그냥 미츠코대로 괜찮은 건가. 실제로 노리코는 도쿄에 올라온 뒤 미츠코라는 이름으로 생활한다. 미츠코도 나름의 공간 속에서 삶을 살아가지 않나.
=물론 노리코의 머릿속에는 미츠코와 관계하는 어떤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츠코는 결국 노리코가 자아를 찾기 위해 임시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또 미츠코의 생활도 도쿄에서 만난 쿠미코가 시키는 대로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아이돌 가수가 코디가 입혀준 옷과 예명으로 활동할 때 그가 자신과 관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를 생각하면 역시 노리코와 미츠코의 관계는 거짓에 가깝다.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이 자신과 맺는 관계’가 현실의 불안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단은 그렇다. 정말로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관계를 맺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타인과의 관계도 풍부해질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애매모호한 상태로 지낸다면, 가족관계나 타인과의 관계도 애매모호하게 방치될 수밖에 없다. 이런 데서 범죄가 발생한다.

-얼마 전에는 드라마 <시효경찰>을 공동 연출했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참여한 건가.
=회사에서 지쳐 돌아온 샐러리맨 가족들이 맥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서 참여했다. 매회 나눠서 연출했고, <하자드>를 함께 찍었던 오다기리 조가 나를 끌어들였던 걸로 기억한다. (웃음)

-앞으로도 TV와 영화를 함께할 생각인가.
=지금 <시효경찰2>를 촬영하고 있다. 일본에 돌아가면 다시 촬영해야 한다. 2화를 맡아서 연출한다. 그 이상은 무리다. 사실 조금 매너리즘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TV드라마라는 게 시리즈로 가면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같은 틀 안에서 새로운 걸 만들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영화는 1년에 1편 이상을 만드는 것 같다. 다소 마니아적인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딱 한 가지 있다. 나의 메시지가 널리 퍼지기 힘들다는 것. 대개 미니시어터 규모로 개봉하기 때문에 나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시네필들이다. 정말로 문제가 있는 가족이 내 영화를 보고 메시지를 전달받지 못한다는 점이 항상 아쉽다.

-이번에 준비하는 <엑스테>는 도에이에서 만든다고 들었다. 어떤 영화인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 가장 큰 규모의 영화가 될 것 같다. 헤어 엑스텐션에 관한 영화인데, <노리코의 식탁> 때 취재를 하면서 모티브를 얻었다. 헤어 엑스텐션에 쓰이는 머리카락은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이다. 이게 어디서 왔는지 아나? 취재해서 알아냈지만, 말해줄 수 없다. 극비라고 하더라. (웃음) 아무렇지도 않게 붙이는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게, 음산하게 느껴졌다. 외관상으로는 호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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