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마지막 카우보이, 위대한 전쟁영화를 만들다
2007-02-18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였던 1945년 일본은 조그만 화산섬 이오지마를 연합군한테 빼앗기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전투는 일본 본토 공략의 시작이 되었고, <AP통신>의 조 로젠탈은 여섯 군인이 이오지마 스리바치산에 성조기를 세우는 사진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든 두편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이 이오지마 전투와 로젠탈의 사진을 출발선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깃발>의 미군들은 일본군이 숨어 총탄을 퍼붓는 이오지마 벼랑을 공포에 질려 바라보지만,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간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마실 물도 없이 옥쇄를 강요받는 일본군의 공포를 보여준다. 서로 떨어진 두 가지 이야기이면서, 하나로 더해야만 온전한 기억이 되는 영화들. 허문영 영화평론가가 아직 국내 개봉이 확실하지 않은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를 2월15일 개봉예정인 <아버지의 깃발>과 함께 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관한 깊은 사색의 글을 보내왔다.

“나는 발전하지 않는다. 나는 있다.” - 피카소

로버트 스탬은 그의 훌륭한 저서 <자기 반영의 영화와 문학>에서 “영화는 다른 예술 분야의 좀더 진보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버려진 모사의 열망을 끌어 담는 피신처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 그 피신처 안에서도 진취적인 시네아스트들은 모사의 열망을 부인하고, 자기 반영적이거나 자기 지시적인 영화에 몰두해왔다. 그리고 영화가 영화 자체에 대해 말하지 않는 한 더이상 예술로서의 영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잠정적인 믿음을 지녀왔다.

<아버지의 깃발>

알랭 레네와 이후의 모던 시네마를 낳은 그 믿음은 타당하다. 하지만 동시에 인정해야겠다. 아직 우리는 환영을 원하고 있다. 닫힌 공간 안에 서서히 어둠이 깃들고 빛의 입자를 받은 이미지들이 비로소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저 스크린 위에서, 빛의 효과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우리에게 말 건네기를 원하고 있고,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넋이 나갈 만큼 세련된 화술로 우리에게 들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를 시사실에서 연이어 본 날, 나는 영화가 아직 그것의 환영성으로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전율했다. 아직도 말해져야 할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것을 알고 있다.

걸음걸이_위엄을 부여하는 유장한 페이스

“어떤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고, 어떤 감독은 자신이 꿈꾸는 방식대로 영화를 만들며(펠리니), 또 어떤 감독은 자신이 말하는 방식대로 영화를 만든다(스코시즈).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이 걷는 방식대로 영화를 만든다”고 <누벨 오브세르바퇴르>의 한 평자는 말했다. 실제 생활에서 그가 어떻게 걷는지를 본 적이 없으므로 이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그가 젊은 시절 너무 천천히 말한다는 이유로 유니버설에서 해고된 적은 있다). 다만 이 진술은 이스트우드 영화의 특징 하나를 연상시킨다.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페이스의 영화다.

그는 스타일리스트도 아니며, 형식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이야기를 찍을 뿐이다. 이스트우드의 연출관은 너무 평범하다. “나는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야기는 핵이다. 그런 다음 이미지가 어떻게 하면 이야기에 가장 잘 조응할지, 어떤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지, 그것을 어떤 감정과 어떤 음조에 담을지를 고민한다.”

그가 장르영화를 만들 때 장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를 미국 내에서 뒤늦게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나 <미스틱 리버>에서도 그는 복수(revenge)의 플롯을 버리지 않는다. <앱솔루트 파워>나 <블러드 워크>에선 충실하게 범죄영화의 길을 걸으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는 놀라울 만큼 멜로드라마의 감정에 몰두한다. 그러나 이스트우드를 탁월한 이야기꾼이라 부르는 건 좀 망설여지는 일이다. 세 가지 시간대와 4, 5명의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는 <아버지의 깃발>의 복잡한 이야기를 요령있게 플롯에 배열하는 천의무봉한 솜씨는 아마도 그의 오랜 조력자들과의 협업의 결과일 것이다.

이스트우드는 다만 조금 천천히 걷는다. 천천히 걸으며 장르가 버리고 갈 만한 순간들을 짐짓 무심하게 프레임에 담는다. 광기와 음모가 잠복한 미스터리드라마에서도(<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미드나잇 가든>), 살해와 복수의 서부극에서도(<페일 라이더> <무법자 조지 웨일즈> <용서받지 못한 자>), 그리고 살육과 공포의 전쟁영화에서도 이스트우드는 조용한 들판 풍경과 피로한 여정과 사소한 농담과 나른한 기다림을 경유한다. 그러다 불현듯 멈춰 선다.

<아버지의 깃발>

멈춰 서는 순간, 카메라는 무기력에 빠지고 피사체들은 체념하며 이야기는 장르의 쾌락을 넘어 운명의 심연과 기적처럼 마주한다. 그의 감독 데뷔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을 보면 나는 이스트우드가 만성(晩成)의 감독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라디오 DJ 이스트우드를 사랑한 미친 여인이 칼을 휘두르다 마침내 추락한 뒤 이스트우드는 실신한 채 피 흘리는 연인의 방에 들어간다. 그를 따르던 카메라는 조용히 멈춘다. 미친 여인은 프레임 밖에서 죽어 있고, 한가로운 재즈가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둔 채 카메라는 그 방문 앞에서 묵묵히 기다린다. 이 장면이 주는 아득한 느낌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숭고한 주저라 할 만한 이 정지의 숏들, 그리고 그 머뭇거림에 이르는 유장한 페이스야말로 이스트우드의 영화에 불가해한 위엄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스트우드의 걸음걸이로 그의 영화인생에선 처음으로 전쟁과 역사를 걷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개별적으로도 걸작이지만, 둘을 한데 묶을 때 영화사적 사건이 된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 영화의 서사에 대한 심오한 성찰, 그리고 기적과도 같은 숭고한 숏들까지.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두 영화는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영화다.

두 영화_전쟁 장르를 빌려온 포스트 서부극과 서부극

1945년 2월19일 오전 9시, 사흘간의 예비 폭격에 이어 미국 해병대 4, 5사단은 2만2천명의 일본 수비대가 지키고 있는 황량한 섬 이오지마에 상륙한다. 미군의 이오지마 함락은 닷새면 가능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3월26일에야 이뤄진다. 일본군은 1083명만 살아남았고, 미군도 전사 6821명, 부상 2만1865명의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미군이 주인공인 <아버지의 깃발>과 일본군이 주인공인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를 연이어 찍었고, 두 영화의 이야기는 모두 이오지마 전투에서 출발했으며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두 영화는 예상과는 달리 한 사건에 대한 두 주체의 시선을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찍히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깃발>은 역사적 영화이고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지리적 영화이다. 혹은 <아버지의 깃발>은 이미지의 정치학이고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전쟁의 인류학이다. 하지만 이런 범주화가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두 영화는 결국 서부극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아버지의 깃발>은 전쟁 장르를 빌려온 포스트 서부극이며,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전쟁 장르를 빌려온 서부극이다.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 이후에 초점을 맞춘다.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의 수리바치 산 정상에 6명의 미군 병사가 성조기를 꽂는 유명한 사진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6명 중 3명이 살아남았고, 영화는 살아남은 3명의 이후의 삶을 추적한다. 이오지마 전투 당시와 전쟁영웅으로 떠오른 3명의 병사가 록스타처럼 환대받으며 순회강연을 펼치는 몇 개월 뒤, 그리고 현재의 시점이 교차한다. <아버지의 깃발>에는 무엇보다 미국사회의 영웅 이미지 소비방식에 대한 예민한 비평이 담겨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전설적인 총잡이였으나 이젠 병들고 노쇠한 머니(이스트우드)는 어린 총잡이의 철없는 질문에 침묵하다 단 한번 말한다. “여자와 어린아이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였어.” 그리고 마지막 살육을 벌인 뒤 집으로 돌아가 밭을 간다. <아버지의 깃발>의 영웅 브래들리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전쟁의 한가운데서 동료 병사들과 수영을 하던 추억만을 죽음을 앞두고서 아들에게 말해준다. 인디언 출신인 또 다른 영웅 아이라는 종전 이후에도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밭을 갈며 먹고산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그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고 달려오면 손바닥만한 국기를 주머니에서 꺼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촬영에 응한다. 그리고 1달러를 받는다. 그는 마구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조작된 영웅 신화 혹은 모조로서의 국가.

하지만 <아버지의 깃발>을 잊을 수 없다면 그것은 이 영화의 날카로운 비평이 아니라 어떤 장면 때문이다. 총알이 불꽃처럼 날아다니는 어둠 속에서 브래들리는 동료 병사 이기와 참호에 잠복해 있다. 누군가가 저 멀리서 “의무병!”을 애타게 부른다. 브래들리는 이기에게 꼼짝말고 있으라고 말하고 부상병을 찾아 나선다. 가망없는 치료를 하고 참호로 돌아왔을 때 이기는 없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참호를 잘못 찾아온 것일까. 참호 바닥에 무언가 있어 열어보니 바닥 깊은 동굴로 이어져 있다. 언덕을 돌아 동굴 밑으로 간 브래들리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본다. 카메라는 그가 보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노인이 된 브래들리는 생사의 기로에서 정신이 혼미해질 때 “의무병!”의 환청을 듣고 “어디 있어, 이기”를 반복한다.

그는 보았으나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평생 동안 그의 무의식은 자꾸만 보기 직전으로 되돌아간다. 아들이 병상에 누운 노인 브래들리에게 “아버지, 이기는 죽었어요”라고 말하자, 막 깨어난 브래들리는 “아니야, 난 너를 찾고 있었어”라고 말한다. 그의 의식 속에서 이기는 끝내 말해지지 않는다. 브래들리가 동굴 바닥을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시간이 멈춰선 듯 끝없이 적막한 장면. <아버지의 깃발>은 영웅 신화의 해체와 비평이기 이전에 기억의 블랙홀 혹은 멈춰 세워질 수 없는 운명의 심연에 관한 영화다. 여러 시간대를 오가는 <아버지의 깃발>과 달리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이오지마 전투가 거의 전부인 영화다. 사령관 쿠리바야시와 두 사병 사이고와 시미즈의 간헐적 회고가 현재의 전투 사이에 삽입된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오지마가 함락된 1945년 3월26일에 멈춘다. 그날, 쿠리바야시는 죽기 전에 “여긴 아직 일본인가”라고 묻고 사병 사이고는 “네, 일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아버지의 깃발>에선 인물의 바깥에서 상황과 사건의 냉정한 관찰자에 머물러 있던 카메라는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에서 인물의 감정과 동기에 상대적으로 충실하다. 중심인물인 쿠리바야시 사령관과 사병 사이고와 시미즈는 각각의 플래시백으로 지옥의 전장으로 불려오기 전의 개인사를 드러낸다.

편지를 남긴 실존 인물 쿠리바야시는 미국에서 공부했고 친미적이라는 이유로 이오지마 복무를 명받는다. <아버지의 편지>의 쿠리바야시도 말(馬)을 사랑하고 미군에게 선물받은 콜트 45구경을 차고 있는 부드럽고 신사적이지만 냉정한 두뇌의 소유자다. 부임할 때 이미 그는 이오지마로부터 버티다 죽는 길 외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버지의 깃발>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의 대상이던 일본군은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에서 그저 버티다가 죽는 길 외엔 어떤 길도 주어지지 않은 초라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는 자신과 부하들이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 적에게는 가장 잔혹한 전술을 준비한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자결과 돌격을 금하며 하루라도 더 살아 있기를 명한다. 그는 가공할 적의 위협에 맞선 이 가련한 공동체의 영웅이다. 쿠리바야시에게 서부극 영웅의 면모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직 자신만을 믿는 서부 사나이와 달리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국가에 위탁한다. 회상장면에서 그는 미군 장교에게 “미국과 일본이 싸울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내 신념에 따라 미군에게 총을 겨누겠다”고 말한다. 다음 질문. “그것은 당신의 신념인가, 당신 나라의 신념인가” 그의 대답, “둘은 같지 않은가”.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

이스트우드는 쿠리바야시의 영웅적 면모를 호의적으로 그리며, 그의 국가주의를 비평하지 않는다. 대신 쿠리바야시에게 국가는 한번도 실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깃발>에서 영웅 신화를 조작하던 국가는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의 영웅에겐 텅 빈 기표로 남겨진다. 다만 사이고와 시미즈에게 국가는 가족을 부인하고, 개마저 명령 불복종으로 살해하는 맹목적이고 비정한 상위 주체로 회상될 뿐이다. 마지막에 이르면 모든 설정을 사소하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모든 진지는 파괴됐고 포탄은 떨어졌으며 식량은 오래전에 바닥났고 마실 물조차 없다. 이젠 몇 남지 않은 병사들과 함께 돌격을 외치다 죽는 일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 순간 사령부 동굴의 라디오에선 고대하던 함대의 지원 소식 대신 아이들의 합창이 흘러나온다. “이오지마는 우리의 소중한 땅… 죽을 때까지 지켜주세요….” 천사의 음성 같은 평화로운 목소리, 그리고 그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실린 죽음의 명령 혹은 아직은 산 자들을 향해 미리 불린 잔혹한 진혼곡. 노래는 동굴에 울려퍼지고 쿠리바야시와 넋이 나간 사병들은 얼어붙은 듯 그 노래를 듣고 있다.

이 장면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 고립, 공포와 불안, 예정된 죽음, 천상의 위안과 악마적 저주의 아이러니한 결합이 한몸이 된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위대한 전쟁영화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

운명_이스트우드적인 숏의 효과

이스트우드는 하나의 상황(전쟁)을 중심에 두고 우리(아군)가 주인공인 영화와 그들(적군)이 주인공인 영화를 한꺼번에 만들었다. 이것은 영화사에서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이다. 이 시도의 성과를 제대로 말하기 해선 본격적인 학술적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몇 마디 끼어들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2001년에 나온 황석영의 소설 <손님>은 목사인 재미동포가 북한을 방문하는 오늘의 이야기를 축으로 한국전쟁 직전 황해도의 한 마을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좌우파의 상호 살육의 과거사를 드러내는 이야기다. 황석영의 소설은 이스트우드의 영화와 비슷하게 두 집단적 주체가 서로를 살육한 하나의 사건을 적대하는 두 주체의 서사로 교차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지적 작가시점과는 다른, 다중 일인칭 시점 혹은 교차 일인칭 시점이라 불릴 만한 이런 서술방식을 황석영은 전통 무가(巫歌)에서 빌려온 화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황석영과 이스트우드는 ‘나’를 주어로 삼아 ‘그’를 이해할 만한 타자로 그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화자가 ‘나’인 한 ‘그’는 끝내 온전히 말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의 제작자이기도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에는 아랍 해방군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번민과 신념을 말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서사의 주체는 끝내 이스라엘인 혹은 서구인이다. 아랍인은 이 서사 안에서 끝내 동정할 만한 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국 보수언론이 “이 자(켄 로치)는 왜 이토록 자신의 조국을 혐오하는가?”라고 비난받은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정반대로 아일랜드인의 입장에서 영국군과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타자의 서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자인 켄 로치가 사회주의자인 주인공과 동일시하면서 영국 제국주의와 아일랜드 자본가 계급인 그들과 싸운 과정을 담은, 그러니까 ‘나’와 ‘그’의 위치가 고정된 전통적인 서술 방식이다.

황석영과 이스트우드는 타자의 서사를 수긍한다. 이것은 타자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보다 훨씬 근본적인 윤리적 태도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손님>은 하나의 큰 서사 안에서 사건마다 두 주체의 서사를 교차시키다 마지막엔 무가의 주문으로 두 주체의 화해를 기원한다. 반면, 이스트우드는 두 서사를 독립시킨다. 두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각각의 영화에서 서로 마주치는 일조차 없다. 두 서사는 정확한 대비의 관계에 있지 않고, 시간적으로 엇물려 있다.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전투 시점에서 현재의 시간대에 걸쳐 있고,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이오지마전투 시점에서 과거와 연결돼 있다. 두 영화를 한꺼번에 보면 이상한 연상 작용이 일어난다. <아버지의 깃발>이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의 후일담처럼 느껴지거나, <아버지의 깃발>이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의 회상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혹은 두 영화의 주인공은 한 핏줄에서 나온 인물들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다. 예컨대, 브래들리와 쿠리바야시는 기질도 동기도 배경도 다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한 착시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이것이 이스트우드적인 숏의 효과라고 생각한다. 이기를 찾아 동굴 앞에 선 브래들리의 숏에서, 또한 죽음을 앞두고 아이들의 아름답고 잔혹한 노래를 듣고 있는 쿠리바야시의 숏에서 예정된 자리에 불려나간 나약한 인간이 아득한 운명의 심연과 마주할 때, 그들의 세속적 경계의 차이는 불현듯 사라진다.

나는 이것이 국가라는 기표를 냉소하며 인간조건의 한계를 탐구해온 이스트우드가 이른 깊은 지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종 비난받아온 이스트우드의 정치적 성향이 그 지혜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리버럴, 리버테리언_이스트우드, 마지막 서부사나이

오슨 웰스는 결국 찍지 못한 프로젝트 <Big Brass Ring>(1999년에 다른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고 한국에 <킹 메이커>로 소개됐다)의 주연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기용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이스트우드는 거절했다. 오슨 웰스의 네 번째이며 마지막 반려자이자 영화 동료 오자 고다는 “이스트우드는 우익 파시스트여서 이 시나리오의 자유주의 정치학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너선 로젠봄은 이 이야기를 전하며 이스트우드가 이 시나리오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런 비난이 처음은 아니다. 돈 시겔의 <더티 하리>에 대한 진보적 비평이 겨냥한 그 영화의 우파 정치학은 주연을 맡았으며 오랜 공화당원인 이스트우드의 것으로 종종 동일시되었다.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로젠봄은 <추악한 사냥꾼> 외에는 이스트우드의 영화에 대해서 오랫동안 유보적이었다. 실은 이스트우드 영화의 정치학에 동의하지 않았다. 로젠봄은 특히 <미스틱 리버>(2003)에 바쳐진 만장일치의 찬사에 부정적이었는데, 거기엔 경청할 만한 근거가 있다. 그는 지미(숀 펜)의 복수가 아무리 오인에 기반해 있으며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 해도 그가 결국 의연히 살아간다는 것에 주목한다. <더티 하리>의 복수 모티브가 미국 주류영화의 단골 메뉴가 되고 심지어 두 미국 대통령에 의해 모방돼 추악한 전쟁을 벌어지는 시대에 지미의 복수는 난폭한 미국적 방식과 내면적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미스틱 리버>의 복잡성을 의식하며 로젠봄은 이렇게 말했다. “이스트우드는 우리가 옳을 때조차 틀리다고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메시지를 거꾸로 읽는 것도 너무 쉽게 만들어놓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는 로젠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로젠봄은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를 걸작으로 평하며 “이스트우드는 1944년의 미국과 일본의 병사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유사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놀라울 만큼 리버럴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스트우드가 3년 만에 보수 우익에서 자유주의자로 개종했다고 믿기는 힘들다. 멀리 떨어져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이스트우드는 1992년 <카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1950년대 군복무 시절부터 공화당에 표를 던지긴 했지만, 나는 어느 정파에도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차라리 리버테리언(libertarian)에 가까운 것 같다”고 말했다.

자유의지론자로 번역되며 우리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리버테리언은 미국 보수파의 한 부류로 분류되지만 약간 모호한 면이 있다(“미국의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는 지난해 ‘리버테리언 유권자’라는 보고서를 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10∼20%가 경제적 이슈에선 보수이지만 개인적 자유에는 진보적 성향을 보여 종래의 보수·진보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리버테리언’ 유권자로 나타났다.” - 2007년 1월11일 <동아일보>)

이스트우드를 자유의지론자의 한 표상으로 본 소에지마 다카히코는 <누가 미국을 움직이는가>라는 저서에서 자유의지론자의 특징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 아니면 가족하고만 살고 싶어하는 고집 센 개인주의자이며… 절대적 자유주의자”라고 요약하고 있다. 이스트우드가 카멜시의 시장으로 나선 것도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대한 시의 규제를 견딜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미국 좌파 지식인의 정신적 지주인 노엄 촘스키도 스스로를 무정부주의자의 동반자로 표현하지만 때때로 ‘리버테리언 무정부의자’라고 칭한다는 것이다.

이스트우드의 영화가 존 포드의 영화 혹은 발자크의 소설처럼 창작자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로부터 온 편지>를 반전영화라고 말하는 건 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이스트우드의 주인공들은 폭력적인 세상을 폭력으로 버텨왔지만 그들은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은 어딘가에 내던져졌고, 그곳에서 살아내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육체적으로 버틴다. 이스트우드가 한 인터뷰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의 폭력적인 보안관 빌에 대해 한 말을 빌리면 그의 영화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이야기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스트우드는 마지막 서부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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