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남성 킬러’ 중 맏형답게 신현준의 카리스마는 막강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세 동생’들을 모이라고 할 때도 “얘들아!” 한마디면 충분했다. 처음엔 카리스마 넘치는 킬러였다가 나중엔 나사 하나 풀린 듯 어리숙한 면을 드러내며 차츰 ‘망가지는’ 킬러들의 맏형 상연은 ‘신현준’ 이름 석자가 주는 무거운 고정관념을 단숨에 날려버린 통쾌한 한방이었다. 장난을 쳐보라는 사진기자의 주문에 오히려 가지런히 서서 손을 모아잡는 표정에도 개구쟁이 소년 같은 장난기가 폴폴 날린다. 껑충한 키, 매처럼 굽은 콧날, 부리부리한 눈, 아주 짧게 자른 머리, 진회색 바짓단 아래 드러난 하얀 맨발. “원래 신발을 못 신어요. 양말도. 답답해서요.”
<장군의 아들>의 하야시, <은행나무 침대>의 황 장군, <비천무>의 진하 등 유독 눈에 힘주고 무게잡는 역할을 많이 해온 신현준에게 킬러 상연으로의 변신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연기생활 11년에 코믹 연기도 처음이었고. 그래서 “처음엔 관객에게 괴리감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결과적으로 괜한 걱정이 되었지만. 카리스마와 어눌함을 동시에 갖춘 상연을 표현하기 위해 수염을 기르고 펑크 스타일 파마를 6번이나 하는 등 분장과 헤어스타일까지 하나하나 공을 들였다.
<킬러들의 수다>를 찍으며 가장 힘들었던 건 웃음과의 전쟁. 코미디 연기가 왜 힘든지를 배웠다. 평소에 장난 잘 치고 잘 웃는 그에게 웃음을 참는 건 고문이었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얼굴을 보면서 웃음을 참노라면, 등줄기에 식은땀 한 줄기가 주륵 흘렀다고. “사실 맘만 먹었다면 더 어렸을 때도 코미디에 출연할 순 있었죠. 만들 순 있었죠. 들어오는 시나리오 10개 중 8개가 코미디였으니까. 하지만 때가 아니다 싶어 기다렸어요.” 코미디는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고. “쌈마이 코미디라도 현실에 솔직하고 척하지 않는 점에서 좋아요.” 상연의 멜로가 없네요, 라고 멜로가 빠진 배역은 처음 아니냐고 묻자 “그래도 상연은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거는 쿨한 친구”라고 응수한다.
배우생활 11년. 이제 깨달았다. “한편은 스스로가 하고 싶은 영화를, 다른 한편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하면 된다”는 것을. 아직도 “하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아서 미치겠다”는 맨발의 배우 신현준은 이제 촬영현장이 제일 좋다. 남은 바람은 안성기, 박중훈 같은 좋은 배우, 좋은 생활인이 되는 것. 장군에서 소방수까지 온갖 캐릭터를 다 겪었지만, 킬러 상연은 그중에서도 꽤나 혁명적인 변신이고 그래서인지 관객의 반응이 이렇게 궁금했던 적이 없다고. 차기작 <블루>에서는 눈에 힘주는 해군으로 되돌아가더라도 혁명의 짜릿함을 아는 자, 다시 혁명을 꿈꾸리니. 의뢰인 없는 세상을 꿈꾸는 킬러 상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