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킬러들의 수다>의 넘버3 킬러, 신하균
2001-10-10
글 : 위정훈
사진 : 이혜정

은발도 모자라 그 위에 녹색으로 덧염색한 이 남자는 누구? 낯선 염색머리로 스튜디오를 습격한 신하균은 입술과 눈이 함께 빙그레 곡선을 긋는 ‘신하균’표 미소를 짓자 비로소 그다워보였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넘버3’ 킬러 정우는 막내 하연의 표현을 빌리면 ‘거침없고 당당한’, 달리 이야기하면 껄렁하고 머리보다 가슴이 앞서는 킬러다. 그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뭔가 코믹한 엇박자가 있다. 첫째, 길눈이 어두워 마라토너의 길을 포기한 ‘비극적’인 과거. 둘째, 미행하는 차를 발견하고 왜 쫓아오는지 물어보겠다며 뛰쳐나가는 막가파 기질. 셋째, 하연의 ‘영롱한 사랑론’에 배꼽을 잡으며 비웃음을 날리지만, 정작 자신이 그런 사랑에 빠지고 임무수행에도 실패하는 못 말리는 킬러. 이 세 가지를 조합하면 정우가 완성된다. 하나 더. 신현준은 신하균이 “맑은 영혼을 가졌다”고 했는데, 그건 킬러 정우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기막힌 사내들>의 번번이 자살에 실패하는 막내, <간첩 리철진>의 짱이 되는 것이 소원인 문제적 고교생, <공동경비구역 JSA>의 순박한 북한군 병사. 코미디든 드라마든 신하균 특유의 천진함과 해맑은 미소는 때론 웃음을, 때론 콧날 시큰해지는 감동을 불러들이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정작 ‘배우’ 신하균과 ‘인간’ 신하균의 간극은 넓다. 장진 감독과의 인연으로 코미디에 많이 출연했지만 본인이 평하는 인간 신하균은 “엄청 재미없고 썰렁하다.” 그렇다면 코믹한 연기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희비극이 속에서 어긋나는 자기 인물들처럼 그는 그런 어긋남에 익숙하다. “내 모습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작품 속 인물로 이야기하기는 쉬워요.”

수줍음 많고 혼자 걷길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기는. 특별히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열정도 없었고. 하지만 영화보는 건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진로를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오자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해맑은 얼굴 어디에 그런 고집이 숨어 있었을까.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기자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연극배우 5년, 영화배우 4년. 천진한 미소 어디에 그런 예민함이 숨어 있었을까. 작품 들어가기 전에는 불면증이라도 걸린 듯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다. “연기엔 정답이 없음을, 자기만의 정답을 만들어놓고 결론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정답을 찾는 길은 여전히 험하고, 술이 유일한 친구가 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가다보면 길이 나타날 걸 아니까 그저 걸어가는 거죠.” 정우와의 ‘수다’를 다 떨기도 전에 <복수는 나의 것>에 합류한 신하균은 오늘도 잠 못 이루고 있을까. 애타게 착한 유괴범의 정답을 찾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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