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좋지아니한가> 심씨네 가족 캐릭터 vs 정윤철 감독이 말하는 배우
2007-03-01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아버지 창수 vs 배우 천호진

아버지 창수 학생의 유창한 발음 앞에 멈칫하는 중년의 영어교사. 몇년째 발기부전인데도 한번 했으면 싶은 아내에게 “덤덤하게 좀 살자”면서 도리어 큰소리를 치는, 요즘 보기 드문 담력의 소유자다. 그 담력을 한밤중 가족 대항 패싸움에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휘하게 된다.

배우 천호진 “천호진은 지치고 피곤하고 무뚝뚝한 중년 남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담담한 연기의 달인인 빌 머레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끊임없이 미세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에서도 그의 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창수는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점에서 자폐아와 비슷하다. 그런 연기를 주문했더니 문득문득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나와 즐거웠다.”

어머니 희경 vs 배우 문희경

어머니 희경 뚜껑 떨어진 밥통을 허리띠로 묶어 사용할 만큼 알뜰했지만 중년의 위기를 겪으면서 꽃무늬 원피스와 커피잔을 산다. 입은 걸어도 마음은 느닷없이 찾아온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한때는 예뻤을 아주머니. 아침 반찬으로는 계란말이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배우 문희경 “가장 캐스팅하기 어려웠던 배역인데 뮤지컬 <밑바닥에서> 포스터가 인상적이어서 공연을 보러 갔다. 연기도 잘하고 선입견을 주지 않는 배우여서 좋았다. 희경은 화장기없이 수더분한 아줌마인데도 강단과 카리스마가 있다. 현장에선 천호진에게 와이프처럼 구박도 하고 격려도 해주어서, 낯을 가리는 편인 천호진이 매우 재미있어하며 촬영을 했다.”

이모 미경 vs 배우 김혜수

이모 미경 보일러 가게 경리로 일하다가 취미를 특기로 살려 무협작가로 데뷔한다. 필명은 살수검귀 냉월. 그러나 살수나 검귀와는 거리가 매우 먼, 추리닝 바람에 슬리퍼를 끌고 하드를 빨아먹고 다니는, 태평함을 형상화한 듯한 노처녀다. 얼마 전 ‘진짜 작가’와 사귀게 되었다는 남자친구에게 차였다.

배우 김혜수 “김혜수는 우연하게도 먼저 시나리오를 읽고 출연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너무 고마웠다. 나는 김혜수가 관능적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화장도 하지 않고 촬영하는 모습을 보며 되게 예쁘고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아들 용태 vs 배우 유아인

아들 용태 최면요법으로 세살 적 기억을 되살린 다음 자신은 창수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믿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하은에게 순정을 바치면서도 원조교제한다는 이유로 창녀라고 악을 쓰는 야누스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한편 매우 소심하기도 하다.

배우 유아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바로 유아인을 떠올렸다. 유아인은 아웃사이더 같은 느낌이 있는데, 단순히 반항적인 이미지라기보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순정적인 모습도 있고. 나는 완벽하게 잘생긴 얼굴보다 무언가 결핍이 있는 얼굴을 좋아하는데 유아인이 그랬다.”

딸 용선 vs 배우 황보라

딸 용선 어느 날 갑자기 첫사랑에 빠진 소녀. 오빠가 자살하고 싶은 날이라고 문자를 보냈는데도 “호호, 자, 신청곡 나갑니다”라며 의연하게 개인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계속 진행한다.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만 정확히 거기까지, 고백은 하지 않는다.

배우 황보라 “처음엔 순이(촬영을 하며 삭제된 인물, 창수의 첫사랑)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만나보니 아니었다. (웃음) 까칠하면서도 세상을 다 아는 것 같고, 그러다가도 어린애 같아 보이는 면이 용선과 어울렸다. 시트콤 연기가 굳어졌을까 걱정이 되어 고등학교에 보내기도 했는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여서, 잘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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