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 14일
장소 용산 CGV
이 영화
태수와 태진(지진희의 1인2역)은 일란성 쌍둥이. 태수는 어릴 적 굶주림에 지쳐 마약 조직 보스 구양원(문성근)의 돈을 강탈해 도망치지만 그 대신 동생 태진이 붙들려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후 태진과 헤어진 채 살아가게 된 태수는 실력있는 해결사 ‘수’로 활동하게 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동생에 대한 죄책감은 좀처럼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태진과의 재회를 인생의 목표로 삼아 살아가던 태수는 갖은 노력 끝에 만남을 갖게 되지만, 태진은 바로 그의 눈 앞에서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즉사한다. 복수심에 불타는 태수는 강력팀 형사였던 태진 행세를 하면서 동생을 살해한 자를 추적하게 되고, 마침내 구양원의 존재를 알게 된다. 여기에 태수의 정체를 알아챈 태진의 애인 미나(강성연)와 부패한 형사(이기영)가 얽히면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복수극이 시작된다.
말말말
“영화를 보시면 정말 지진희가 고생했구나, 이런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지진희)
“영화를 보고 나면 아까 쟤는 왜 나와서 무대인사를 했지, 하고 궁금하게 느끼실만큼 짧게 나왔습니다.”(오만석)
“최양일 감독님의 영화적 업적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채 일본영화감독협회장을 두번이나 역임했다는 점만 봐도 대단한 삶을 살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감독님이 나를 찾으신다는 얘기를 듣고 막바로 달려갔습니다.”(문성근)
100자평
최양일의 하드보일드는, 생생한 날것이다. 논리적인 이유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대표작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가 단지 친구와의 의리 때문에 무익한 복수극에 집착하는 것처럼, <수>는 쌍둥이 동생에게 속죄하기 위한 복수극일 뿐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설명 대신 툭툭 단서만 던져준다. 필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어떻게 그들을 처단하는지 뿐이다. 한국영화에서는 거의 낯선 장르에 가까운 <수>이지만, 한겨울의 지독한 매질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수>는 확고한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는 영화다. 관객의 호오 역시.
김봉석/ 영화평론가
과연 하드고어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영화는 꽤 흥미진진한 서사를 품은 듯 보이지만, 영화가 끝나도록 궁금한 서사의 자락은 다 해명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나면 느낀다. 이 영화에서 서사는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의 핵심은 피칠갑의 액션과 파토스이다. 그런데 그것이 꽤 괜찮다. 액션은 여타 장르물 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확실히 '쎄다'. 맨손, 칼, 총, 폭약 등을 이용하는 액션은 스케일도 크거니와 대단히 사실적이다. (가령 현란한 발차기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엉겨 붙어 목 조르고 물어뜯으며 피와 침이 범벅이 된 '개싸움'이 나온다.) 주인공의 이토록 '죽어도 죽지 않는' 질기고 징한 파토스의 근원은 알기 어렵다. 다만 심정적으로 수긍하거나, 거부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절절한 파토스를 수긍하는 자에겐 더 없는 카타르시스를, 그렇지 못한 자에겐 꿈자리 뒤숭숭한 폭력의 향연을 제공하는 영화이다.
황진미/영화평론가
많은 한국 영화는 장르영화를 지향한다고 공공연히 표방하는 경우에도 한 눈 팔지 않고 장르적 미학의 극단까지 내달리는 용단을 내리지 못했다. 다수가 가족애나 거짓 화해의 강박에 발목 잡혔고 그 함정을 피한 영화들은 미처 무르익지 않은 혹은 새로울 것 없는 철학에 한 발을 빠뜨리거나, 자살극의 형태로 미성숙한 열린 결말에 도달했다. 그런 맥락에서 <수>는 오랜만에 만나는 순수하고 장쾌한 영화다. 지하주차장에서 다른 무기없이 벌어지는 첫 폭주 시퀀스부터 넋을 빼앗는 최양일 감독의 액션 연출은 심플하고 독창적이다. <수>의 액션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저러한 스타일이 아니라 오로지 한 인간의 지독한-신적인 또는 동물적인 경지의- 의지다. 수는 복수를 위해 태엽감긴 기계다. 최양일 감독의 눈이 잡아낸 서울의 공간과 번역 투의 문어체 대사는 미묘한 이국성을 영화에 불어넣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양식이 자리잡은 평면과 썩 잘 어울린다. 특히 공간 속의 인물을 아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잡아낸 독특한 사이즈의 숏들에는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예기치 못한 유머를 발하는 대사도 재미나다. 피와 뼈가 질펀하게 드러나는 폭력 묘사는 심약한 관객의 눈을 가리게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는 않다. 비틀즈의 ‘THAT'S WHAT I WANT’를 흥얼거리며 숫돌에 칼을 가는 해결사 지진희는 지금까지 출연한 그의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이다. 김성복의 촬영, 이병우의 음악도 인상적이다.
김혜리/ <씨네21> 기자
<수>는 한마디로 입이 떡 벌어지는 영화다. 다른 모든 것을 제쳐놓고, 이 영화 속에 담겨진 극단적인 폭력 묘사는 샘 페킨파의 영화는 물론이고 웬만한 호러영화까지 훌쩍 뛰어넘어버리는 수준이다. 손으로 귀를 뜯어내거나 눈알을 뽑아버리는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칼과 도끼,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 그리고 총까지 동원되는 클라이맥스의 액션신은 말 그대로 ‘피바다’라 할 만하다. 굳이 말을 붙이자면 ‘스플래터 하드고어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 특이한 점은 이 영화의 액션장면이 이상하리만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이 잔인하고 끈끈한 액션은 화려한 카메라 움직임이나 빠른 편집, 또는 양식화된 액션 연기 없이 다소 무덤덤하다 싶을만큼 거리감을 둔 채 관객들 앞에 드러난다. 그러나 이토록 잔인한 폭력장면들이 왜 등장하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태수의 동생에 대한 죄책감이나 원죄의식은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바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설득력 있게 표현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이야기의 연결고리 또한 느슨한 편이어서 다소 긴장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문석/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