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단아한 그녀의 ‘별짓’, <쏜다>의 문정희
2007-03-22
글 : 최하나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두번의 이별이다. 다른 이를 향한 남편의 마음을 인정하고 소리없이 등을 돌렸던 그가 이번에는 남편이 너무나 ‘FM’이라는 이유로 결별을 선언했다. <연애시대>에서 <쏜다>로,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문정희는 연거푸 감우성과 헤어짐의 만남을 가졌다. “그렇고 그런 공무원에, 반듯하게 살아온 남자의 부인이 가질 수 있는 답답함이 무엇일까, 그 입장이 돼서 고민해보려 노력했어요. 단지 삐치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억눌러왔던 것이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느낌을 내고 싶었죠.” 숨막히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었으되, 오히려 남편의 극단적 일탈에 뒤통수를 맞는 아내. 문정희가 <쏜다>의 경순이 된 데는 무엇보다도 인연이 강하게 작용했다. <바람의 전설>로 한솥밥을 먹은 박정우 감독과 김수로, <야수>로 낯을 익힌 강성진, 그리고 <연애시대>의 감우성까지. “타이밍이 운명”이라는 생각에 망설임은 없었지만, 사실 두 남자의 도심 난장극 속에 경순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저는 <쏜다>에서 한 게 없어요, 정말. (웃음) 그래서 인터뷰하는 것도 참 민망해요. 솔직히 저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좋은 도구가 되자는 생각으로 참여했거든요.”

지난해 <연애시대>의 유경, 온화하고 단아하며 요리까지 잘하는 첫사랑 그녀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사실 문정희는 짧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극원을 졸업한 뒤, 98년 뮤지컬 <의형제>로 데뷔했고, <그리스> <록키호러픽쳐쇼> 등 무대를 거쳐 2000년 스크린에 입문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하류인생> <바람의 전설> <야수> <강적> 등 이름을 새겨넣은 영화만 해도 10편이 넘으니, 섣불리 그를 ‘신인’이라 판정했다간 열없기 십상이다. “학교 다닐 때 공연하느라고 단편영화 출연 요청이 들어오면 수락한 적이 거의 없어요. 튕기는 배우 1위였다고 할까. (웃음) 이상한 신비감이 생겼던 건지, 졸업하고 나니까 영상원 언니들이 뭘 하나씩 시켜주시더라고요. 영화의 메커니즘을 익힌다고 시작한 것이 어느새 필모그래피가 된 거죠.”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문정희는 톰보이, 그 자체였다. “2교시 종 땡 치면 바로 체육복 갈아입고 막 달려나갔어요. 꼬치 하나 먹고, 붕어빵 두개를 손에 딱 붙여서 들어오는 거죠. (웃음) 단짝 친구가 있었는데, 둘이 농구하고 놀았어요. 막 드리블 연습하고. (웃음)” 그에게 연기의 길을 처음 열어준 것도 바로 붕어빵 동지였다. 한예종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친구는 “우리가 공부해서 뭔가가 될 거라고 생각해?”라며 신문 광고를 휙 던지고 갔고, 큰 기대없이 연극원에 지원한 문정희는 덜컥 합격해버렸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난 꼭 배우가 될 거야, 하는 식의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셰익스피어 작품을 내 입으로 읊어보는 게 재밌고 신기했죠. 참 운이 좋았어요. 제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물론 현실이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바람의 전설>을 마친 뒤 그에게는 2년여의 공백기가 찾아왔다. 이러다가 연기를 영영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정희를 괴롭혔다. 다행히도, 그에겐 춤이 있었다. “살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제가 알지 못했던 희열을 느끼게 됐어요. 손맛이라고 하나. 카바레 가시는 아주머니들이 그것 때문에 못 빠져나온다고 하는데 저도 다를 바가 없었어요. (웃음) 한번은 암스테르담에 간 적이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랑 살사를 췄어요. 말이 전혀 안 통해도 춤을 통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죠. 힘들 때 춤을 추는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기회는 찾아왔고, 문정희는 <야수>를 거쳐 <연애시대>에 다다랐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 주목받은 기쁨이 남달랐을 법도 하건만, 그는 달라진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남들이 거짓말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정말 저는 모르겠어요. 사실 제 친구들은 <연애시대> 보면서 막 놀렸다니까요. 너랑 너무 다르다고. (웃음)”

한때 “무서운 물체”였던 카메라 앞에서 이제는 “별짓 다 한다”는 문정희는 지금 드라마 <행복한 여자>에서 푼수기 다분한 노처녀로 활약 중이다. 5월부터 방영되는 드라마 <에어시티>에선 이정재의 옛사랑이자 냉철한 의사 역을 맡았다. <바람의 전설>의 ‘꽃뱀’이 되기 위해 카바레를 순회했다는 그는, 이번엔 응급실 일일의사 체험을 했다며 열띤 얼굴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좀더 큰 역할을 맡고 싶은 욕심은 없냐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소박하다. “연기하는 것은 욕심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성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연기할 때나 안 할 때나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게 제 모토예요.” 너무 교과서적인 것 아닌가. <연애시대>의 다소곳한 그녀가 떠오르려는 차, 문정희가 한손으로 드리블 포즈를 취하며 대꾸한다. “벌써 잊으셨어요? 이게 저예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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