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노체>는 <아이다 호>, <엘러펀드>, <라스트 데이즈>를 찍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1985년 장편 데뷰작이다. 청춘영화이자, 퀴어영화이자, 이주민영화인 <말라노체>는 흑백화면의 느슨한 프레임 속에 젊은 날의 들뜸과 불안정함을 고스란히 담는다. 영화의 내용은 미국인 청년이 멕시코 불법이민자 소년에게 반해 그와 그의 친구들을 쫓아다니는 게 전부이지만, 이런 줄거리는 별반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돌아다니는 거리의 풍경과 그들의 내면 공기가 더욱 중요하다. 영화의 화면들은 마치 사진전의 사진들처럼 깊은 '푼크툼(punctum ; 코드화 될 수 없는 사진의 작은 요소가 보는 이의 마음을 강렬하게 찌르는 것)'을 남긴다. '말라노체'는 '나쁜 밤'이라는 뜻으로, 임상수 감독의 <눈물>에 나온 대사, '나쁜 잠'과 비슷한 의미이다. 어쩌면 '소수자적'이라 할만한 특유의 미학과 정치학을 구사하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장편 데뷰작을 챙겨보면서 <아이다 호>와 <엘러펀트>와 <라스트데이즈>의 맹아를 살펴보는 것도 즐거운 취미생활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에겐 78분이라는 상영시간이 최고의 미덕이 될 지도 모를 영화이다.
황진미/영화평론가
씨네21
검색관련 영화
최신기사
-
쉬운 길을 버리고 ‘사이다’의 이면을 살핀다, <베테랑2> 칸영화제 첫 반응
-
[리뷰] ‘도뷔시’, 우리 민족은 양이다. 그럼에도 살아남았다
-
[리뷰] ‘별처럼 빛나는 너에게 더무비-일섬일섬량성성’, 죽지 마, 같이 우주에 가자
-
[리뷰] ‘스텔라’, 니나 호스의 대척점에서 지옥도를 노래한 파울라 베어
-
[리뷰] ‘늦더위’, 한점의 거슬림도 없이, 잔잔하게
-
[리뷰] ‘목화솜 피는 날’, 기억과 상실 모두가 고통이다
-
[리뷰]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 기본에 충실한 청춘영화, 첫사랑영화, 여행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