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여성인 척하는 남자의 이야기 <플루토에서 아침을>
2007-04-04
글 : 정재혁
세상과 싸우는 새로운 방법. ‘3인칭 게임’의 경쾌함.

아픔을 이겨내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아픔의 원인을 찾아 맞서 싸우거나, 아픔에 굴한 채 싸움을 포기하거나, 아픔을 모른 척하며 싸움을 끝없이 지연시키거나. 앞의 두 가지 방법이 갈등, 충돌을 야기하는 뜨거운 싸움이라면, 끝의 세 번째 방법은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차가운 냉전이다. <크라잉 게임> <푸줏간 소년> 등에서 부조리한 사회와 정면으로 부딪쳤던 닐 조던 감독은 2005년 작품 <플로투에서 아침을>에서 냉담한 시선을 견지한다. 동성애, 종교, 아일랜드와 영국의 정치적 문제 등 전작에서라면 충분히 논쟁의 대상이 될 문제들이 <플루토에서…>에서는 논점의 맥락을 의도적으로 비켜간다. 여자가 되고 싶은 소년 패트릭(킬리언 머피)의 일대기와도 같은 이 영화는, 문제를 대하는 감독의 태도를 고려할 때, ‘여성(女性)이 되려는 남자(男子) 이야기’임과 동시에 ‘여성인 척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바구니에 담겨 성당 문 앞에 버려진 아이 패트릭은 자신을 ‘성인 키튼’이라 부른다. 신부와 사제 숙소의 가정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교복 스웨터에 빨갛고 노란 장식을 달고, 체육 수업 대신 가사와 바느질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종교 수업에서도 섹스와 사랑에 대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집에서도 문제가 되어, 패트릭을 대신 돌봐주는 양엄마는 그에게 항상 “동네 창피하다”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패트릭은 자신의 친엄마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환상의 여인’이라 불리는 그녀는 여배우 미치 게이너를 닮은 패트릭의 ‘환상 속 여인’. 전차를 타고 가는 뒷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는 패트릭은 ‘미치 게이너를 닮은 환상의 여인’ 혹은 친엄마를 찾아 런던으로 향한다. 영화는 이후 국경 기사대, 마술사, 밴드, 테러리스트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다양하게 얽히는 패트릭의 사연을 하나씩 들려준다.

여성인 척하는 패트릭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닐 조던. 억압과 차별, 문제는 있지만 이에 고통받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영화 <플루토에서…>는 패트릭에게 ‘성인 키튼’이란 닉네임을 붙여주고, 주인공의 에피소드를 노래 가사와 스릴러영화의 줄거리로 치환하면서 가상의 세계를 완성한다. 학교 선생의 체벌은 무시하고,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으며, 친엄마 얘기를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패트릭은 “진지함”을 피함으로써 현실을 버텨낸다. 그에게 존재하는 억압은 진지함뿐이며, 그래서 영화는 진지하지 않은 ‘패트릭적 요소’들로 장식된다. 패트릭은 스스로 “자신은 여자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비음이 섞인 허스키 톤의 목소리를 버리지 않는다. <For the Goodtime> <Feeling> 등 36개의 챕터로 나뉜 영화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80년대의 팝음악은 패트릭의 현실을 허구의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도구다. 윔블던 공원에 세워진 작은 요정 집처럼 <플루토…>의 공간은 싸움을 진행시키지 않는다. 패트릭은 투쟁하고 주장하는 대신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지으면서 자신의 상처를 타자의 것으로 돌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울 거고, 울음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런던을 향하는 패트릭의 여행길은 기구하다. 바람기 짙은 시인(게빈 프라이데이)을 만나 총기가 숨겨진 트레일러에 묵는가 하면, 중년의 마법사를 만나서는 무대 위 보조 출연자로 웃음을 판다. 여자 인디언 분장을 하고 노래를 하다 야유를 받고, 클럽에서 만난 남자와는 춤을 추다 클럽의 폭발사고로 병원 신세를 진다. 그리고 패트릭은 여장을 한 아일랜드인이라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오인돼 열흘간 감옥 생활을 한다. 사건에 사건이 터지고, 수난과 고난이 계속되는 삶이지만, 패트릭은 ‘플루토에서의 아침을’ 꿈꾸며 모른 척한다. 그는 심지어 감옥을 “나의 사랑스럽고 작은 방”이라고 노래한다. 피억압자가 억압을 억압이라 인식하지 않을 때 문제는 대립 구도를 벗어난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분쟁, 성 정체성과 자아를 영화의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플루토에서…>는 닐 조던의 1992년작 <크라잉 게임>을 연상시킨다. 선과 악, 종교사회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1997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푸줏간 소년>이 떠오른다. 하지만 <플루토에서…>는 정치적 소재를 보여주되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패트릭과 함께 어울린 국경수비대는 “정치적인 얘기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는 면에서 <크라잉 게임>과 다르며, 종교적 가치관이 팽배한 6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것이 영화에 커다란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푸줏간 소년>과 다르다. 종달새의 지저귐으로 영화의 앞과 뒤를 열고 닫는 <플루토에서…>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려 자신은 지금 “하찮은 것에 대해 말하는” 중이라고 고백한다. 닐 조던은 패트릭이란 인물을 통해 정치, 성 정체성, 사회, 인종 문제의 답답함을 가벼운 필치로 날려버린다. 동시에 이런 문제는 사실 진지함에 대한 강박이 가져온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패트릭이 향수 스프레이로 위기에 대처하는 것처럼 닐 조던은 영화를 핑크와 보라색으로 채색하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것이 다소 엉뚱한 희망으로 가득 찬 플루토에서의 아침이라고 해도, 여기서 플루토는 “별을 지나 다다른 여행”의 도착점이거나 패트릭의 환상을 완성해줄 유일한 기표다.

<푸줏간 소년> 이후 다시 매케이브의 소설을 스크린에 가져온 <플루토에서…>는 매케이브와 닐 조던이 공동으로 각본을 작업한 영화다. “소설 속 주인공인 키튼에게 푹 빠졌다”는 감독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플루토에서…>는 패트릭이란 캐릭터가 이야기의 전체 얼개를 구성한다. 학교 선생에게 끌려가고, 테러리스트로 몰려 감옥에서 고문을 받아도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 있는 패트릭은 무한한 긍정과 낙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영화의 방향을 설정한다. 3인칭 내레이션과 짧은 제목의 챕터로 구분된 이야기 구성이 인물의 내면을 충실히 반영하진 못하지만,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패트릭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킬리언 머피는 이 영화로 2006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됐다.

상황에 따라서는 가벼움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답이 환상 속에 있을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 닐 조던의 경쾌함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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