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로버트 드 니로] 일어나는 일을 거부하는 것보다는 끌어안는 게 낫다
2007-04-10
글 : 오정연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만난 로버트 드 니로 인터뷰

지난 2월10일 오후 4시30분(현지시각) 베를린 아들론호텔. 로버트 드 니로가 의자에 앉자마자 터져나온 질문공세는 예정된 시간을 3분 정도 넘겨서야 잦아들었다. 다른 기자의 말을 자르고 끼어드는 건 예사였다. 드 니로는 그 난장판 속에서 옅은 미소를 띤 채 질문자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을 이어갔다. 하나의 질문이라도 던지기 위해 안면몰수한 기자들의 조급함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않던 노배우는, 방을 나서기 전 사진촬영과 사인을 부탁하는, 예전 같았으면 가볍게 거절했을 요청에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몇개의 단답형 대답을 하나로 묶는 편집을 거쳐, 미처 전하지 못한 문답을 싣는다.

-<굿 셰퍼드>의 배경이 되는 CIA와 1960년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냉전시대에 유년기를 보냈다. 동쪽과 서쪽, KGB와 CIA 등은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아들었을 때부터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임을 느꼈다. 그 시절엔 종종 가상훈련을 했는데, 사이렌이 울리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했다. 폭탄이 떨어질 때를 대비한 것이었고, 그때는 진짜로 머리 위로 폭탄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하지만 책상 밑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다니, 정말 바보스런 일이다.

-마이클 베이 같은 사람들이 두 시간짜리 트레일러처럼 요란하게 만들 수 있을 만한 영화를 매우 신중하게 완성했다. 놀라게 하고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영화가 아닌 것에 대해 유니버설쪽과 문제는 없었나.
=나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총에 맞아 피를 흘리는 장면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되도록이면 최소화해서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액션을 과장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모두 그런 장면은 이미 너무 많이 보지 않았나.

-연출할 때 현장에는 어떤 것들을 준비하나.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 나는 경험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길 만한 문제를 피하기 위한 다음 단계를 알게 됐다. 항상 문제가 되는 건 예산과 스케줄이다. 주로 그와 관련된 문제는 거대하고 급박한데, 영화제작의 항시적인 불안요소와도 같다.

-현장에서 사람들이 “저 사람은 드 니로야. 그가 무엇을 하든 그냥 놔두자고”라고 말하지 않나.
=그런 면이 있긴 하다. (웃음) 하지만 매일같이 조금씩 예산이 초과된다면,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웃음)

-러닝타임이 길다.
=3시간20분짜리 버전도 있었다. (웃음) 나는 스튜디오를 포함한 모두의 의견, 일반적인 감상을 들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를 반영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삭제하고 싶지 않은데 잘라야 하는 장면도 있었는데,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에 대해 어떤 사람은 좀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지금도 충분히 길다고 한다. 이젠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이 배우여서 연기지도가 좀더 쉬웠나.
=기자인 당신은 처음 보는 사람과 좀더 쉽게 친해지고, 빠른 속도로 소통할 수 있지 않나. 나 역시 배우이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그들의 문제나 불만이 무엇인지 안다. 그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역시. 내가 그런 걸 안다는 걸 그들 역시 눈치챌 것이다. 만일 모르겠다면, 내쪽에서 먼저 “이봐,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이 문제를 어떻게 풀면 좋을까?”라고 물어보면 된다.

-배우에게 명령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
=나는 명령하지 않고, 협력한다. 우리는 뭔가를 이루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고, 배우가 감독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 우리(배우들)는 감독이 이루려 하는 것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맨 처음 시나리오와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다른가.
=시나리오작가 에릭 로스와 내가 몇년에 걸쳐 수정했다. 좀더 길고 복잡한 버전에서는 주인공이 소련대사관으로 망명하고, 자동차에 치어 죽는 장면도 있다. 그 장면은 모스크바를 대신해서 뉴욕에서 실제로 찍기도 했다. 2편을 만든다면 그걸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신은 몇편의 걸작 코미디에서 자신의 옛날 캐릭터들을 희화화했다. 자신의 명성에 스스로 질렸던 건가.
=그런 면이 있긴 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 첫 번째 영화가 <애널라이즈 디스>였을 텐데, 빌리 크리스털이 추천한 영화였다. 우리는 함께 작업하기 위해 적당한 감독을 물색했고, 그러고 나니 이후 <미트 페어런츠> 같은 영화도 만들게 됐다. 정확히 어떤 아이디어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와 (계속해서 함께 작업했던) 제인 로젠탈이 대화하던 중 시작된 영화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싫지 않나.
=물론. 매우 싫다. (웃음)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다. 어차피 일어나는 일을 거부하는 것보다는 끌어안는 게 낫다.

-80년대 3인조 여성그룹 ‘바나나라마’의 <로버트 드 니로가 기다리고 있어>(Robert De Niro’s Waiting)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
=가사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근데 그게 대체 몇년 전 노래인가.

-1983년.
=맙소사. 놀랍지 않나. 세월은 이렇게 흐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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