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달콤하고 유쾌한 비극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2007-04-19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지난 2005년 여름 <불량공주 모모코>가 개봉했을 때, 다케모토 노바라의 원작 소설 <시모쓰마 이야기>를 먼저 읽었던 사람들은 정상적인 방법의 영화화가 가능하지 않으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중고 신인 나카시마 데쓰야는 CF의 순발력과 순정만화의 감성을 무기로 원작 소설의 달콤함을 어른의 성장영화로 치환해내는 재주를 부렸다. 다음에도 이런 식의 영화 만들기가 가능할까. 사람들이 묻는 사이 나카시마 데쓰야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들고 찾아왔고, 결점 가득한 여인의 비극을 초현실주의적인 손길로 감싸안으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혹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영화적인 실험이 사라진 시대에 당도한 새로운 세대의 영화는 아닐까. 영화평론가 김봉석이 나카시마 데쓰야의 지난 궤적과 영화적인 힘을 짚어보았다. 절반의 몫을 해낸 괴물 같은 여배우 나카타니 미키를 돌아보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혐오스런’이라는 형용사는 그녀의 일생이 아니라, 53살의 마츠코에게 붙은 별명이었다. 집을 치우지 않아 사방이 쓰레기 천지이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이웃 사람들은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불렀다. 가족도 그녀를 버렸고, 연인들도 그녀를 버렸다. 짐승처럼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던 마츠코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지독하게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인의 일생을 추적하는 영화다.

마츠코의 일생은 오로지 하나로 귀결된다. 아버지에게서, 연인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하지만 모든 남자들은 그녀를 떠나갔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는 돈을 벌어오라며 폭력을 휘두르다가 자살했다. 죽어버린 천재 작가의 재능에 빌붙을 수 있을까 싶어 마츠코를 탐했던 유부남 작가는 아내가 무서워 도망가버린다. 그리고 만나는 남자들은 기둥서방에 야쿠자…. 마츠코의 일생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는 단 한순간은, 살인을 저지르고 도피 중에 만난 이발사와의 사랑뿐이다. 하지만 운명은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심이야 어떻든 결국은 모두 그녀를 버렸다. 계속 버림받으면서도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갔던 마츠코도,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짐승처럼 살아간다. 이건 너무나도 비극적인 이야기다.

이야기는 전통적인 ‘여인잔혹사’

그러나 기묘하게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활기찬 비극, 슬프지만 황홀한 판타지의 진경을 보여준다. 야마다 무네키의 원작은 마츠코의 불행한 삶을 끈질기게 파고든 무거운 소설이었다. 마츠코의 일관된 불행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도전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원작의 무겁고 침울한 이야기를 그대로 전개하면서도 기발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비디오클립풍의 뮤지컬 영상 등으로 마치 성인의 동화를 보는 것 같은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백화점 옥상에 몽환적으로 꾸며진 테마파크나 마츠코의 사랑에 대한 몽상을 다소 익살스럽게 보여주는 장면들은 나카시마 데쓰야의 ‘가벼운’ 전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완전히 판타지로 빨려들어가지 않고 두발을 굳건하게 현실에 디디고 있다. “디즈니영화와 같은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하면서도, 진짜 지향점은 밥 포시의 뮤지컬이나 팀 버튼인 것이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음악이다. <불량공주 모모코>를 찍은 뒤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의 모든 장면에 음악이 흐르는 것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던 나카시마 데쓰야는 바로 다음 작품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도전을 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흐르는 곡은 무려 70곡으로 보통 영화의 3배에 달하는 분량이다. 마츠코의 일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부각되는 노래만이 아니라 영화 전편에서 정말로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당연히 음악을 선정하고 장면에 넣는 데에도 기존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불량공주 모모코>에서는 나카시마가 연출한 영상에 간노 요코가 음악을 맞춰나갔지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는 음악을 먼저 결정하고 영상을 찍는 순서로 바뀌었다. 일단 영화 시나리오로 그림 콘티를 그리고,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비디오 콘티를 만들었다. 비디오 콘티에 맞춰 시나리오를 읽어나가면서 대략 각 장면에 어떤 정도의 타이밍으로 대사가 흐를 것인지, 거기에 맞는 음악의 템포감이 무엇인지 음악 프로듀서가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작업이 끝난 뒤에 어떤 뉘앙스의 곡이 좋을지 감독에게 제안하여 결정했다. 영화 전체에 70곡이 계속 바뀌면서 진행되지만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치밀하게 톤을 맞춰 배열했다. 그 결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전체가 하나의 악극처럼 리드미컬하게 진행된다. 영화 속에 보니 핑크, AI, 기무라 가에라 등 가수가 직접 출연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특히 형무소에서 AI와 오이카와 린이 부르는 <What Is A Life>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마츠코의 심경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노래다. 나카타니 미키가 직접 부르는 <Happy Wednesday>와 보니 핑크의 <Love Is Bubble> 등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영상은 MTV적 감수성으로 리드미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분명 암울한 이야기지만, 천변만화하는 음악과 환상적인 영상 덕에 가벼운 고양감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슬픈 상황이어도 노래와 춤이 있으면 이겨낼 수 있다. 그건 마치 마츠코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도 유사한 방식이다. 나카시마 데쓰야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영화화하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마츠코라는 여성의 에너지’ 때문이다. ‘그토록 지독하게 당하면서도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캐릭터에 감정이입’되었고, 그녀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영화에서 주로 보여주는 인물은 ‘결점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그렇게 결점을 살아가는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사람을, 텐션을 아주 높게 표현하면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암울한 이야기와 쾌활한 영상이라는, 언뜻 보기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의 결합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간을 바라보는 나카시마 데쓰야의 개성적인 인간관이다. 나카시마 데쓰야는 무엇보다 인간의 개성에 흥미를 느낀다. “재미있는 사람이 좋다.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특히 그 사람이 가진 결점 부분이다. 올바름이나 뛰어난 것은 나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상식에서 일탈된, 보통 결점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 사람의 캐릭터를 잘 느낄 수 있다. <불량공주 모모코>의 할머니와 아버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쁘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겐 그들이 ‘나쁘다’라고 보이지 않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내 영화에는 ‘보통의 좋은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나카시마 데쓰야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보이는 태도도 ‘좋은 것’은 아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만들면서, 나카시마 데쓰야와 나카타니 미키는 엄청나게 싸웠다고 한다. 오죽하면 나카시마 감독이 퍼부은 욕설들을 모두 일기에 적어, 촬영이 끝난 뒤 나카타니 미키가 책으로 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지독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영화는 나카타니 미키가 “천재감독의 대단함을 통감한다. 지금은 감사의 마음이다”라며 충분히 만족할 정도였다. 욕설이나 싸움, 갈등은 인간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모든 이가 함께 평화롭게 잘 살았다는 동화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카시마는 아주 끔찍하고 음울한 마츠코의 일생에서도, 에너지와 꿈을 발견하고 이끌어낸다. ‘달콤씁쓸한’(bittersweet) 맛이야말로, 인생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불량공주 모모코>의 모모코와 이치고는 각각 환상에 젖어 사는 롤리타 오타쿠, 한없이 무식한 폭주족이다. 보통의 눈으로 본다면 그들은 결점투성이 인간이다. 이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기에는 애당초 싹이 노란 불량품들. 하지만 양극단에 서 있는 모모코와 이치고는, 서로를 이해한다. 그들은 자신의 결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결점을 동력 삼아 끈질기게 전진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마츠코도 마찬가지다. 감옥에서 마츠코를 본 메구미도 마츠코의 에너지에 감탄한다. 대체 그녀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미스터리 구성으로, 전혀 알지 못했던 마츠코의 일생을 추적하는 조카 료에 의해서 모든 것은 밝혀진다. 결코 마츠코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불행했지만, 그녀의 에너지만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은 모든 이에게 행복만을 안겨주지 않는다. 마츠코는 불행을 만났지만, 그 불행에 굴복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아마도 마츠코는 행복했을 것이다. 자신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녀에게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머리를 깎아줄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나카시마 데쓰야는 그런 마츠코에게 한없는 신뢰를 보낸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신뢰가 영화의 힘

나카시마 데쓰야도 평탄한 길을 걸어온 영화감독은 아니다. 이누도 잇신처럼 먼 길을 돌아, 영화로 돌아온 탕자다. 나카시마 데쓰야가 영화감독으로 알려진 것은 <불량공주 모모코>부터지만 CF감독으로서는 이미 거장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1959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메이지대학을 나온 나카시마 데쓰야는 광고제작회사에 들어가 CF감독을 하다가 87년부터 프리를 선언했다. 나카시마는 사포로 맥주 블랙라벨의 ‘온천탁구’편이라든가 SMAP가 독수리 5형제로 변신하여 등장한 NTT 동일본의 CF 등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유머감각 넘치고 경쾌한 걸작 광고를 만들었다. ACC, ADC 등의 광고상에서 그랑프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이미 CF감독으로 유명했던 나카시마 데쓰야는 <불량공주 모모코>가 요코하마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는 등 화제를 모으면서 영화감독으로도 주목받게 되었다. 하지만 나카시마의 영화 연출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82년 대학 재학 중에 만든 <하노지 와스레테>(はの字忘れて)로 피아영화제에 입선했다. 광고회사에 들어가면서 영화 연출은 중단했지만, 프리를 선언한 다음해인 88년에 데뷔작을 찍는다. <가족게임>의 모리타 요시미쓰가 제작 총지휘를 한 옴니버스영화 <바보자식! 저 화났습니다>(バカヤロ一!私怒ってます)에서 두 번째 에피소드를 연출한 것이다. 다시 한동안 광고에만 주력했던 나카시마는 9년 만에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이 벌이는 소동극 <여름철의 어른들>(1997)을 만든다. 다음해에는 어느 맨션에서 살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일요일을 코믹하게 그린 <뷰티풀 선데이>(1998)의 각본과 감독을 맡는다. <뷰티풀 선데이>는 토론토영화제에도 출품됐지만, 일본에서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불량공주 모모코>가 나카시마의 영화 데뷔작이라는 오보가 일본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다.

다시 영화로 돌아온 나카시마 데쓰야는 영화만이 아니라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드라마로는 <사립탐정 핀 마이크>의 9화 ‘미스터 일본 21세기의 남자’, <세상의 기묘한 이야기> ‘마마 신발견’편, SMAP가 출연한 <호랑이와 라이온과 6인의 남자> 등을 연출했고, 마쓰 다카코와 CHARA 등의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다. 2006년에는 문화청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을 수상했다. 경력에서 보이듯 나카시마 데쓰야는 영상 연출에서는 하나의 경지에 오른 감독이다. 하지만 나카시마 데쓰야의 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은, 영상의 화려함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신뢰 때문이다. 나카시마 데쓰야는 인간의 결점을 응시하고, 그 결점에서 에너지를 찾아낸다. 그 역설적인 시선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활기차게 만든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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