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독립단편영화라는 용어는 어딘지 이중적인 느낌으로 들려온다. 한편으론 젊은 창작자들의 다양한 실험과 상상력의 무장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상업적 공간 속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여러 제한들이 전면적으로 노출되는 장이기도 한 것이다. 올해로 제 7회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정한 비평가 주간의 영화들은 한편으로는 그러한 고민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품들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의 문제점들을 돌파하는데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논쟁의 여지는 많다. 올해 비평가주간에 1차 예심으로 들어온 작품들은 총 500여 편에 달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이 영화들 속에서 예심위원들 전원의 지지를 받을 만큼 탁월한 성취로 우리를 기쁘게 한 작품은 없었다. 그러니까 한국의 독립단편들은 그 가능성과 더불어 오랫동안 지적되어 온 많은 한계들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디지털이 영화의 제작편수를 급격히 증가시켰을지언정 그와 동시에 필름이 지녔던 프레임 하나하나에 대한 고민과 진중함은 사라지고 있다. 여전히 삶의 일상과 편린들을 포착하는 영화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이미지들을 영화 속에 담아야만 했는지 납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충무로 장편영화들의 화려한 비주얼은 독립단편영화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이 연출자의 의도에 봉사하는 미장센으로서 기능하는가는 시종일관 의문이었다. 많은 평자들이 지적했듯 비전의 상실, 표피적인 수사학, 영화매체에 대한 성찰의 부족, 인디 스피릿의 부재 등은 여전히 한국 독립 단편 영화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스무 편의 영화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주어진 한계들을 돌파하고, 단편영화가 선보일 수 있는 영화적 완성도와 미덕을 지닌 작품들이다. 서원태 감독의 <서울스테이션>이 실험성 높은 포토 로망을 선보인다면, 예심위원들 사이에 다소 논란은 있었으나 이번 상영작 중 유일한 다큐멘터리인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는 일본의 기타 울프의 내한공연을 담은 유쾌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이번 경쟁작에 올라온 작품들 중 여전히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삶의 다단함을 포착한 작품들이다. 과거처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윤리나 강박증은 현저하게 부재하지만,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스타일로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피는 멈추지 않는다>는 해체되는 가족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한 남자의 실패담이다. 시종 울분에 찬 주인공의 심리적 내면에 맞추어진 시점 숏들은 종종 주인공의 감정만큼이나 격렬하게 관객의 몰입을 자아낼 만큼, 연출의 호흡과 만듦새에 주목할만하다. 정지우 감독의 <생강>을 연상시키는 <승아>는 비혼모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거움을 세밀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포착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밖에 용역 일을 하는 한 남자의 슬픈 가족사를 담은 <성북항>이나, 한밤중 강변북로를 달리며 삶의 교감과 긴장을 주고받는 남녀를 기록한 <강변북로>, 그리고 한 지식인이 유년기 친구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지리멸렬과 위선을 담아내는 <봉수> 및 영화청년과 그의 애인의 이야기를 영화 속 영화의 구조로 실험한 <소양강 처녀>는 모두 삶에 대한 감독들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성장통 역시 빠질 수 없는 소재이다.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에 오마쥬를 바치는 제목이기도 한 <친애하는 로제타>는 윤간당한 소녀의 임신중절을, 마찬가지로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를 떠올리게 만드는 <유년기의 끝>은 고등학교 졸업반인 두 소년이 포르노 영화 찍기를 벌이는 일탈극을 담고 있다. 반면 <자전거 도둑>은 데 시카 감독의 동명 영화에 오마쥬를 바치되 한 지방도시의 한밤중 소동극을 펼치면서도 가난한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 밖에 <코스믹 댄서>나 <궁금해요 그대 팬티>는 다소 느슨한 호흡 속에서 기이한 엇박자 유머를 만들어내는 작품들이다. 반면 병영의 탈영병 수색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십분간 휴식>은 초반, 말년병장과 신참병 사이에 벌어지던 사사로운 유머가 점점 군대라는 억압적 조직구조와 규율에 의해 폭력과 광기로 치닫는 비극을 밀도 있게 묘사하고 있다. 영화라는 일루전이 어떻게 판타지와 만나는가를 실험한 작품들 역시 흥미롭다. 지구멸망의 마지막 날을 기이한 SF로 연출한 <세상의 끝>이나, 한 남자의 서재에서 벌어지는 여성 판타지와 공포에 관한 소극 <스태리 나잇>, 그리고 20대 여성의 불안과 콤플렉스 등의 복잡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포착한 <자야한다>와 역시 악몽에 관한 옴니버스 영화 <비몽>은 모두 영화라는 매체만이 선사할 수 있는 시각적 쾌감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작품은 <프랑스 중위의 여자>이다. 어린 소년이 자신에게 주어진 버거운 삶을 외면하기 위해 빠져든 동명의 소설과 그로인해 벌어지는 소년의 망상, 그리고 그 망상을 깨며 다시금 소년을 비참한 현실로 불러들이는 어머니의 존재가 독특한 화법으로 연출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독립영화계에서는 스타로 자리 잡은 김종관 감독의 <모놀로그 #1>은 총 10개로 구성될 단편 에피them의 첫 번째 이야기이다. 실연당한 여자가 바다를 마주보며 홀로 독백하는 이 작품은 단순하지만 정서를 가득 담은 클로즈업과 풍경으로 채워진 인서트 숏들이 강렬한 영화적 쾌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단편영화라는 매체의 정체성과 쾌감을 가장 명쾌하게 정의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