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토크]
[메신저토크] 나의 피터는 저렇지 않아!
2007-05-10
글 : 김혜리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이동진 “악역을 다루는 터치가 2편보다 한참 뒤져요” vs 김혜리 “성장영화나 멜로드라마의 만듦새가 떨어지죠”

스포일러 있음

*산 입에 거미줄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언제나 동화처럼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언제나 동화처럼님의 말(이하 동화남): 오늘 <스파이더맨 3> 시사회에 다녀왔더니, 갑자기 더위가 느껴지는 것 같더군요. 역시 5월에 첫 포문을 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고나면 극장가에는 저절로 여름이 호출되는 것 같아요. 이젠 첫 번째 여름 블록버스터를 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적으로 몸이 덥기까지 하니, 참. -_-# 휴대폰 맡기고 영화 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네요.

산 입에 거미줄님의 말(이하 거미녀): 블록버스터 시사회 소지품 검색대 통과하며 통감하는 거죠. “올해도 여름이 왔구나!” 정말 오늘은 커피보다 얼음 넣은 콜라 들고 입장하는 기자들이 많던데요.

동화남: <스파이더 맨> 시리즈 좋아하시죠? 전 슈퍼히어로영화 중 <엑스맨> 시리즈가 더 좋아요.

거미녀: <스파이더 맨> 시리즈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블록버스터는 제 베스트 목록에 늘 들어 있죠. 오늘 본 <스파이더맨 3>도, 재미가 부족해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동화남: 재미(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탈이죠.^.~

거미녀: 영화를 보고나서 적어봤거든요? <스파이더맨 3>에는 악당 셋, 직장 라이벌 하나, 삼각관계가 두 세트, 애정관계에 있는 여자가 둘- 물론 중복 카운트도 있지만- 이에요. 이 정도를 2시간20분 안에 이만큼 마무리한 각본과 연출도 굉장한 줄타기 솜씨라고 우선 인정해요.

동화남: 샘 레이미님께서 속편의 딜레마를 직접 체현해주고 계시죠. 그 많은 모티브 중 굳이 핵심을 꼽는다면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거미녀: 악당 중 하나인 샌드맨과 피터의 이야기 아닐까요? 1편은 큰 힘에 큰 책임이 따른다는 주제였고, 2편은 그 책임을 피터가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는 얘기였는데, 3편은 큰 힘에는 큰 용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렇다면 용서의 테마와 연관되는 캐릭터 샌드맨이 중요하죠.

동화남: 저는 성장영화적 측면이 훨씬 강하다고 보는데요. <스파이더 맨> 시리즈는 “남자아이가 성장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 시리즈”라고 생각하거든요.

거미녀: 2편까지는 저 역시 거기서 매력을 느꼈지만….

동화남: 저는 그것이 3편에서도 유효하고, 유효한 정도를 넘어 그 느낌이 9·11 이후 뉴욕 배경 블록버스터에서 용서를 말하는 클라이맥스보다 훨씬 더 강한 기운을 발산한다고 봤어요. 예상보다 영화 전체의 느낌이 밝고 순했어요. 기본적으로는 어두운 이야기지만, 슈퍼히어로영화로 아무리 어두워봤자 <배트맨> 1, 2편을 능가할 수는 없다고 느꼈던 탓인지도 모르겠지만요. 물론 <엑스맨> 시리즈도 지지 않게 어두워주시니까.^.~

거미녀: 피터의 나이부터 배트맨보다 어둡긴 어려운 나이죠.-.- <엑스맨>은 떼지어 어둡고.^.~

동화남: 그런데 이 밝음은 스파이더 맨이라는 캐릭터와 그를 연기하는 배우의 조합에서 온다고 봐요. 예를 들어서 배트맨이 신경쇠약 직전까지 고민한다고 해도 그를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은 안 들잖아요? 그런데 스파이더 맨은 극중에서 사람들을 보호해주지만 관객도 그를 보호해주고 싶은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캐릭터라는 거죠.

거미녀: 그건 나이와 성격도 있지만 배트맨이 재벌이라서 주는 얄미움이 더 크게 작용한 건 아닐지.^_^ 스파이더 맨은 줄타기 능력을 이용해 피자 배달로 먹고산 전력이 있는 생계형 히어로잖아요.

동화남: 그렇군요. 계급적 문제도 있었네요. ^_^ 사실 시리즈가 세편째라면 장기전에 돌입한 것이고 대개는 3, 4편쯤에서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어두워짐으로써 깊이를 더하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죠. <해리 포터>도 3편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어두워졌잖아요. 그런데 <스파이더 맨> 시리즈는 어둠의 농도와 깊이에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죠.

거미녀: <해리 포터>는 3편이 가장 어두웠고 4편은 오히려 밝아졌죠. <스파이더맨 3>는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도 생각나지만, 슈퍼맨이 나쁜 슈퍼맨과 대결하고 탈선으로 평판을 흐리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슈퍼맨>의 예전 속편들을 생각나게 하더군요. 캐릭터를 말하다보니 주요한 액션 시퀀스 중에서 첫 번째 액션이 떠오르네요. 도심 고층 건물 사이의 아주 좁은 틈을 이용해서 공중 결투를 벌이는데 그 모습이 보드 타는 10대 소년들의 경주처럼 묘사됐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아이들이 교실에서 장난칠 때 쓸 법한 유치한 기술로 승부를 내고요. 비록 토비 맥과이어 나이 서른두살입니다만. ^_^

동화남: 토비 맥과이어와 커스틴 던스트 커플을 보면 실제로 토비가 7살 많은데도 커스틴이 꼭 누나처럼 보여요.

거미녀: 특히 3편은 토비의 그런 단순하고 어리벙벙한 면을 부각한 코미디를 많이 썼죠. 심비오트라는 물질의 영향으로 탈선해서 앞머리 내리고 말썽 부리는 대목에서는 실제로 토비 맥과이어가 친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파티광이라던 외신도 생각나면서 약물 중독의 폐해를 겪는 어린 양을 보는 듯했습니다. “나의 피터는 저렇지 않아!” 하면서도 어쩐지 해방감을 맛봤어요. T-T

동화남: 저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탈선한 피터의 장면들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거미녀: 앗! 선배의 억눌린 욕망이? *.*

동화남: 말씀하신 대로 저도 앞머리 내리고 제법 노력하는데 말입니다. -_- 저는 토비 맥과이어가 탈선을 표현하는 장면들에서 이상하게 <아비정전>이나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의 모습을 보는 듯했어요. 귀엽기도 했죠. 끽해야 저 정도 탈선인가 싶은 것이, 그조차 너무도 스파이더 맨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거미녀: 제 불만을 말해볼까요. 돌아보면 1편은 아무래도 현대 테크놀로지로 처음 스파이더 맨을 스크린에 그리는 작품이었으니 액션을 위한 액션이 있었지만 2편은 거기서 훨씬 진보했다는 평가였죠. 모든 액션이 스토리의 필요에서 비롯됐는데 3편은 구경시켜주는 목적이 더 커 보이는 액션 시퀀스들이 있었어요.

동화남: 저는 볼거리를 현시하는 블록버스터로서 이 영화의 기능이 그리 좋지 못하다고 봐요. 성장영화적이고 멜로드라마적인 느낌이 상대적으로 생생히 살아 있는 반면 여름 블록버스터로서 관객이 기대하는 종류의 오락성은 기본만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무엇보다 악역을 다루는 터치가 2편보다 한참 뒤져요. 역시 이 시리즈 최강의 악당은 현재까지 2편의 닥터 옥토퍼스인 듯. 샌드맨은 용두사미적 캐릭터이고 베놈은 흡사 ‘하나 사면 하나 더’(Buy One Get One Free) 행사에 딸려 나온 마케팅용 판촉물 악당 같다는 느낌이었어요. 덕분에 두 악당과 맞붙는 클라이맥스가 오히려 지루하기까지 했어요.

거미녀: 닥터 옥토퍼스는 동감이지만 3편의 총평은 반대예요. 스펙터클을 만드는 테크놀로지 측면에서, 물론 기술은 크게 진보했겠지만 기술이 안겨주는 놀라움과 새로움은 2편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봤고요. 도리어 성장영화나 멜로드라마의 만듦새는 떨어진다고 느꼈어요. 저는 <스파이더 맨> 연작의 값진 장점 하나가, 군더더기를 최후까지 뺀 아주 일상적이고 단순한 대사로 의미심장한 내용을 전하는 각본이었다고 생각해왔어요. 예컨대 옆집에 이사 온 메리 제인을 처음 본 여섯살 피터가 “저게 천사예요?” 했다던가 하는 대사 같은. 그런데 3편은 그런 감흥을 주는 대목이 적었고, 내러티브상 중요한 메리 제인과의 갈등은 특히 실망스러웠어요. 아니, 5년을 우정에다 애정까지 쌓았는데 고작 저걸로 흔들릴까? 그걸 보며 <수퍼맨 리턴즈>의 다소 실망스런 흥행과 <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높은 수익이 어떤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상상하기도….

동화남: 헉, 그렇게까지! 성장영화에서 성장이 꼭 완료시제인 것은 아니죠, 뭐. ^_^

거미녀: 반면 몸의 분자가 규소화됐다든가 어쩌고해서 샌드맨이 처음 모래알에서 탄생하는 특수효과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부스러져내리며 동시에 형태를 빚어가는 모습이 슬프기도 한 것이, <미이라>팀이 두번 울고 갈 만했어요. T-T

동화남: 저는 피터와 메리 제인이 충동적으로 키스하기 직전의 시퀀스 같은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반면 샌드맨 특수효과는 처음 그가 탄생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그 처음 장면들을 능가하거나 필적할 만한 인상을 남기지 못해요.

거미녀: 4편이 나올 여지는 얼마든지 있지만 저는 이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화남: 4∼5편으로 당연히 이어지겠죠. 하지만 전 이 시리즈의 대단한 팬도 아니고…. -.- 아, 유달리 춤과 노래장면이 많은 걸 보면 뮤지컬로 속편이나 스핀오프 나와도 재밌겠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

거미녀: (그럼 대단한 팬인 무슨 시리즈가 있긴 하고요?) 선배는 팬심을 모른다니까.

동화남: 나도 알아요!!!!!!!!!! <엑스맨>만 해도 기다리는 편이고…. (좀 구차하긴 하다) 확실히 전 시리즈의 팬은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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