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토크]
[메신저토크] <내일의 기억>에는 특유의 향이 있어요 ②
2007-05-17
글 : 김혜리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상어녀: 이제 전주를 방문 중인 이리 멘젤 감독의 <가까이서 본 기차>를 이야기해볼까요? 독일군 점령 아래 체코의 한 청년이 역무원으로 취직한 뒤 겪는 경험을 그렸죠. 우선 저는 이 영화처럼 ‘희비극’이라는 규정이 정통으로 어울리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적당히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희극으로서도 고전적인 재미가 있고 비극으로서도 허점이 없다고 봤어요. 그 희비극 바닥에 깔린 정서는 결국 분노라고 느꼈고요.

편집광: 그런 점이 있죠. 저는 <가까이서 본 기차>를 보며 로르카의 말을 떠올렸어요. “생각하는 자에겐 모든 것이 희극이고 느끼는 자에겐 모든 것이 비극이다, 라는 말이죠. 제가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는 말이에요. 어찌 보면 기름기를 뺀 에미르 쿠스투리차 영화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삶을 좀더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 같은 느낌도 있더라고요. 이 영화가 훨씬 더 먼저 나온 작품이지만.

상어녀: 보도자료는 <인생은 아름다워>와도 비교하고 있던데 그 영화는 현실의 비극성을 인물이 인식한 상태에서 벌이는 복화술이지만, <가까이서 본 기차>는 본성대로 살다보니 주인공의 인생을 싣고 가던 물길이 자연히 암초에 부딪힌 쪽이죠.

편집광: 이 영화에서 비극은 희극과 영화 속의 세계를 분점한다기보다, 희극을 뚫고 뾰족하게 돌출되어 있죠. 그래서 더 비극이기도 하고요.

상어녀: 희극을 따라가다보니 비극의 대단원이더라, 는 식이죠.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 중에는 우리가 국민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스리랑카라든가, 벨기에, 적도기니…. 저는 체코도 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영화를 보니 밀란 쿤데라 소설을 비롯한 문학작품에서 받았던 체코 사람들의 인상을 조금이나마 구체화할 수 있겠더라고요.

편집광: 헉, 적도기니까지야 뭐. 나우루도 있고, 통가도 있고, 기니비사우도 있고….

상어녀: 제가 졌어요. -_- 아무튼 체코인들은 겉보기엔 퉁명스럽지만 속은 낙천적이고, 예를 들어 독일인의 관점으로 보면 지나치게 실없이 잘 웃는 사람들?

편집광: 저는 이 영화의 프롤로그가 제일 좋아요.

상어녀: 주인공의 증조부와 조부 이야기가 나오는 대목 말이죠? 쉽게 살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놀려먹다 맞아죽었다는 둥, 침공한 독일군 탱크에 맞서 최면을 걸다가 깔려죽었다는 둥. 체코인의 성정과 연결되는 대목이기도 한데, 저는 이리 멘젤 감독이 적으로 묘사하는 대상은 독일 민족도, 관료주의도 아니고 나치의 ‘반(反)생명성’인 것 같았어요. 어미 소를 죽은 송아지와 같은 트럭에 태운다거나 하는.

편집광: 거창하게 대의명분을 이야기할 때 체코인들이 “왜?”라고 거듭 물으니까 결국은 “총통이 원하니까”라는 어처구니없는 답을 말하잖아요. 또 체코인 배차계장이 여직원과 시시덕거리다 그녀의 엉덩이에 도장을 찍은 사건에 대해 강제 추행 혐의 입증에 실패하니까 “이건 어쨌든 독일어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하는 것도 참 우스꽝스럽죠.

상어녀: 그거 아세요? 나치 독일 시대에는 서체도 검열을 해서 로만체를 많이 쓰면 경고받았고 블랙레터체를 가장 독일적이고 우수한 서체로 인증했답니다. 근데 이 영화의 본론 부분은 사실 섹스 혹은 섹스에 대한 호기심과 망설임의 일화로 채워져 있잖아요. 섹스의 기미. 징조, 하다가 들킬까봐 느끼는 두려움. ^_^

편집광: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봐요. 일종의 남성 성장영화죠. 첫 경험에 대한 모든 불안감을 뭉뚱그려놓았어요.

상어녀: 그런데 섹스 이야기가 체코가 처한 시대와 무관하진 않아요. 정말 전쟁 중이라서 벌어지는 우연한 집단섹스도 있고, 성에 대해 시대적 상황의 영향 때문에 사람들이 가볍게, 허겁지겁 섹스를 치르는 분위기도 느낄 수 있죠.

편집광: 저는 체코 여자들이 독일 병사를 유혹해서 기차에서 관계를 가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만일 일제시대를 그린 한국영화에서 그처럼 밝고 희화화된 톤으로 한국 여성과 일본 남성의 내통을 그렸다면 그 영화는 엄청 돌을 맞았을 거예요.

상어녀: 하지만 이리 멘젤 감독도 체코에서 상당히 힘들게 활동해오긴 했어요. 이 영화로 탄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반납 압력도 받았다고 합니다. 핍박받으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적 영화를 만들어 반성에 갈음하면서 살아오신 모양입니다. <가까이서 본 기차>도 그렇지만 <상어>도 많은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인데요. 저는 일단 <상어>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표면적으로 무료하지만 이 정도의 튼튼한 이야기를 지닌 영화가 드문 게 사실 아닐까요?

편집광: 좀더 부연한다면?

상어녀: 이보다 허술한, 혹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영화가 더 많지 않을까요? 겉으로 현란한 플롯이 있다 해도 그것이 세상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하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하고, 다음 진행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발전하다가 주제와 조응하며 완결되는 이야기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아요.

편집광: 저는 몇몇 캐릭터가 아쉬웠는데 특히 가장 힘이 들어간 광녀 캐릭터가 그랬어요. 성폭행을 당해서 충격으로 미치고 아이를 사산한 채 거리를 떠도는 은숙 캐릭터의 전형성은 너무 관념적이며 관성적이라는 인상이었어요. 또 준구가 포커 치는 장면처럼 불필요하게 길게 들어간 장면도 있는가 하면 이야기가 모아지는 결말부는 좀 아깝다 싶게 빨리 흘러갔죠.

상어녀: <상어>는 인물들이 ‘영향력’을 ‘수건돌리기’하는 형상입니다. 그들이 서로 도움을 주거나 물건을 전달함으로써 이야기의 사슬이 연결되죠. 복습하자면, 주요 인물들이 외지로부터 무더운 대구로 흘러들어갔다가 돌아가는 이야기인데요. 머리 나쁜 제가 주요 인물만 도표로 그려봤는데요. 순박한 어부 영철은 노름꾼 친구 준구에게 빚도 받고 자기가 잡은 상어를 보여주려고 대구에 오죠. 그런데 준구는 노름판에 붙어서 영철을 만나주지 않아요. 대신 교도소에서 출소했다가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것을 알고 이 도시에 온 유수가 영철을 만나 상어를 받아요. 그리고 그 상어를 죽은 아기로 믿는 은숙에게 주고 보살펴주죠. 은숙은 그로 인해 맑은 정신을 찾고 결과적으로, 영철의 돈을 떼먹은 준구에게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표를 얻은 셈이 되죠. 모두 일종의 위안을 얻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중 상어를 받지 못한 준구만 집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상어>는 ‘선의의 나비효과’에 대한 영화라고 부르고 싶어요.

편집광: 수건돌리기라는 표현이 딱인데요? 이 영화에서 상어는 일종의 맥거핀이자 메타포로 잘 활용됐죠. 상어는 사실 삶에서 아주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혹은 사실은 그게 별게 아닌 것에 대한 집착이었다는 것일 텐데 그런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게다가 이 영화는 최근 개봉했던 <향수>보다 훨씬 더 후각적이더라고요. ^^ 상어 썩는 냄새, 지긋지긋하게 더운 여름의 공기와 끈적임도 잘 전달됐죠.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무도 없는 집에 쓰러져 못 움직이는 노인의 보이스 오버였어요. “몇시나 됐을꼬. 덥네. 내가 지금 죽었나 살았나. 어디서 썩은내가 진동하지? 내가 지금 송장이 되어서 썩고 있나?”

상어녀: 썩는다는 건 제때 거두지 않으면 생기는 일이므로, 타이밍에 관한 호소인 것도 같았어요. 구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좀더 이야기하자면 <상어>의 카메라는 인물을 대할 때 조심스럽고 꼭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을 ‘구경’시키는 태도를 취하는 순간이 거의 없었어요. 영철처럼 착한 카메라랄까?

편집광: 대단히 윤리적인 영화였어요. 하지만 독립영화 특유의 자의식 과잉이랄까, 그런 점들이 자꾸 걸려서 온전히 몰입하질 못했어요.

상어녀: 어려운 단어를 쓰진 않았어도 “바람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결국, 비를 기다리는 거죠” 같은 식의 대사는 관객에게 어색함을 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그보다 아리송한 점이 있는데요. <상어>의 세계관은 “의도하지 않은 행위가 아름다운 무늬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봤는데, 이런 시선은 보기에 따라 지나치게 무책임하거나 낙관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로 인해 내가 타인을 다르게 바라볼 수는 있겠지만 때로는 거대한 순환의 고리를 생각하면서 “어디선가 정화되겠지”라고 책임을 외면할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편집광: 지엽적인 문제를 하나만…. 한국영화에는 노름판 장면과 노래방 장면들이 제대로 묘사되는 영화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 영화의 노름판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건과의 경중이나 리듬으로 비교해볼 때 기이할 정도로 길고 자세하거든요.

상어녀: 준구가 그동안 움직이지 못해야 나머지 인물의 이야기가 진전할 수 있다는 구조적 필요가 있긴 해요.

편집광: 한국영화는 노름판 장면을 찍을 때면 관성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어요. <소름>처럼 뛰어난 작품조차 도박장면 인서트는 관성적이에요. 고스톱이면 늘 “쌌다!”고 외치는 장면, 포커면 높은 패를 낸 상대가 의기양양하게 판을 쓸어갈 때 약간의 사이를 두고 제지하며 더 높은 패를 과시한 뒤 다시 쓸어가는 장면이 나오죠. 노름판이나 노래방 장면만 나오면 한국영화가 홀려버린다고나 할까.

상어녀: 박흥식 감독의 <경의선>은 전작 <역전의 명수>와 크게 다르다지요? 저는 시사회를 놓쳐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편집광: 작품의 품질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작품의 성향에서 대단히 희귀한 사례예요. 화법이 아예 다르죠. <경의선>은 장단점이 명확한 영화였어요.

상어녀: 일단 좋은 뉴스는 뭔가요?

편집광: <경의선>에는 기묘할 정도로 숭고한 순간이 존재해요. 전혀 다른 영화지만 장 피에르 멜빌의 범죄영화를 보았을 때의 느낌 같은. 두 주인공 중 남자가 전철 기관사인데 그 장면을 마치 교본처럼 상세하게 보여줘요. 전철을 운행하다가 요의를 해결하기 위해서 깡통에 소변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 이상하게 그 장면이 감동적이더라고요.

상어녀: 아하, ‘가까이서 본 기관사’군요.

편집광 : 딩동댕! ^^ 김강우씨가 맡은 그 캐릭터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자신의 고통을 길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 이거 진짜 고통이구나 싶은 게, 정말 가슴에 와닿았어요. 아주 세심히 취재한 느낌이 있는 영화예요.

상어녀: 예전에 지하철 기관사들이 철로 투신자살자들로 인해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잊을 수가 없었는데 그 생각이 나네요.

편집광: 또 하나. 이 영화만큼 인문학 전공 시간강사들의 애환을 리얼하게 표현해낸 작품도 없는 것 같아요. 그 리얼함이 하도 탁월해, 강사의 일상 스케치를 포함한 여주인공의 이야기 자체가 약해지는 느낌마저 있어요.

상어녀: 직종별 노조 단체관람 강추? ^.~ 직업이 인간의 성품에 끼치는 영향만 연구해도 영화의 캐릭터 사전은 훨씬 두꺼워질 거예요. 그런 모습만 모아도 좋은 세부가 나오겠죠. 물론 세부가 영화를 훌륭하게 할 순 없지만.

편집광: 동의합니다. 반면 이 영화의 두축을 이루는 두개의 이야기를 붙이는 접점이 부적절한 느낌이 짙어요.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서 두 주인공이 약속해서 만나 위로를 거래하는 느낌이 드는 거죠. 말하자면 <샘터>적인 남자와 <보그>적인 여자의 절망에 대한 영화인데, 여자는 삶의 의미가 없다고 느껴서 괴로워하고 남자는 삶의 의미가 훼손되어서 절망하죠. <용호문>은 어땠습니까?

상어녀: 마블 코믹스 원작 영화들처럼 만화의 컷을 팔랑팔랑 넘기는 오프닝 크레딧으로 시작하더군요. 중국에서 30년 연재된 만화 <신저용호문>이 원작이라는군요. 스토리는 아주 고답적입니다. 나쁜 무리로부터 서민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무술을 가르쳐온 용호문의 수장이 아버지고요. 견자단과 사정봉이 분한 두 아들이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다가 재회하는데, 그즈음 악당이 아버지를 죽이고 용호문을 쑥대밭을 만들어요. 두 비극이 어느 정도로 융화(?)되냐면, 악당이 문파의 현판으로 아버지를 눌러 죽여요. 그리고 복수가 시작되죠.

편집광: 일단 무술장면은 확실한가요? 견자단 영화는 최소한 액션에서 기본 이상은 하잖아요.

상어녀: 모두 그 점이 궁금하실 텐데 액션은 믿을 만합니다. <옹박>에서 인기를 끌었던 관절을 이용한 무에타이 스타일의 무예가 엿보이고 와이어와 몸의 기술도 비교적 잘 결합된 것 같아요. <짝패>의 클라이맥스에서 미닫이문을 무너뜨리며 반경을 확산해가던 방식의 혈투도 볼 수 있습니다. 싸움이 옆방으로 번지면 그 방에서 식사하던- 우연히도 고수인- 손님이 “조용히 밥 좀 먹자”며 몇합 겨뤄주시는 식이죠.

편집광: 언제 봐도 흥미로운 액션의 크레센도 형식이에요.

상어녀: <용호문>은 현대가 배경입니다. 하지만 주요한 결투는 CG로 가필된 시대극 세트 안에서 벌어지죠. 무협이라기보다는 액션과 SF의 결합이라는 인상이 강해요.

편집광: 몇년 전에 정이건 주연의 그런 영화들이 쏟아져나온 적이 있었습죠.

상어녀: 맞습니다. 그래서 <풍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으나, 견자단의 액션이 갖는 호쾌함은 이 장르의 관객을 만족시킬 만해요. 한 가지 사소한 불만이 있다면 주연 견자단과 사정봉 모두 앞머리를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의 에드워드 펄롱 스타일로 길렀어요. 대개 일당 20 내지 30의 적을 상대하는 주인공들이라 사방의 시야가 트여야 할 텐데 걱정스러워 실핀이라도 찔러주고 싶었어요. -_-#

편집광: 그게 언젯적 헤어란 말입니까…. 역시 최고의 무림고수는 대머리라야 하는 거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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