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어:그럼 다음 영화로 넘어갈까요? ‘다음’ 영화로는 <넥스트> 만한 게 없죠? (히힛)
장모:^_^ 그러고보니 이 영화의 제작, 주연인 니콜라스 케이지도 코폴라가의 일원이네요.
무어:그런데 이 영화 진짜 용두사미 아닌가요? 클라이맥스가 이렇게까지 맥빠지는 영화는 참 오랜만인 것 같아요. 사실 시작은 꽤 근사하잖아요. 특히 주인공이 2분 뒤 미래를 볼 수 있기에, 초반에 카지노에서 경찰을 따돌리고 유유히 탈출하는 장면이 멋졌죠.
장모:<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라스베이거스에 니콜라스 케이지가 그런 식으로 돌아가다니! 그 장면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예언자를 데리고 톰 크루즈가 쇼핑몰을 빠져나가는 신과 닮았죠.
무어:리 타마호리 감독은 점점 하향세인 것 같아요. 할리우드로 잘못 간 대표적인 감독이랄까요. <전사의 후예>에서는 헉 소리나게 좋았는데, 점점 더 영화가 뻔해지고 있죠. 그런데 이 영화의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긴 하네요. 2분짜리 예지력이라는 전제에 대해선 시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걸 전제해야 재미가 발생하니까요. 하지만 사랑하게 될 여자와 관련해서는 유독 그 예지력의 시한이 늘어난다는 것은 일종의 반칙 같아요.
장모:사랑의 운명론이죠.
무어:2분 뒤를 볼 수 있다는 능력과 2분 뒤를 정확히 감지할 수 있다는 능력은 전혀 별개인데, 두 번째 능력을 아무런 설명없이 자연스럽게 묘사한다는 것도 이상해요. 2분 뒤에 적이 내게 총을 쏘는 것을 미리 본다고 해도 그것을 0.1초 오차도 없이 피해내려면 그 순간부터 2분 뒤 타이밍을 생체시계로 정확히 잴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요. -_-
장모:주인공의 초능력은 액션영화로서도 공정한 규칙이 아니라서, 일정 시간이 흐르면 긴장이 현저히 떨어져요.
무어:초반에 여자의 호감을 얻기 위해 예지력을 바탕으로 이렇게 저렇게 시도하는 장면들이 훨씬 더 재밌죠.
장모:<사랑의 블랙홀>처럼! ^_^
무어:<사랑의 블랙홀>의… 헉, 아깝다. 늦었다.
장모:그나저나 핵폭탄이 무슨 지우개도 아니고 영화 속에서는 왜 그리 자주 분실될까요? 저는 오우삼 영화 <브로큰 애로우>를 보고 받은 가장 큰 충격이 분실된 핵무기를 지칭하는 코드명(브로큰 애로우)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거든요. 그럼 그런 일이 왕왕 일어난단 말인가요? -_-# 무엇보다 이 영화의 몇몇 진부한 대사는 줄리언 무어의 입으로 듣기 조금 민망하더군요.
무어:오늘의 제 대화명 보이시죠? 무어 누님은 <디 아워스>나 <부기 나이트> 같은 영화만 해주셨으면 하는 이 어린 동생의 간절한 소망이 있습죠, 눼. -.-
장모:무어나 케이지나 훌륭한 배우라는 것은 튼튼한 사실이지만 배우라는 직업의 고단한 점은 오스카 수상자고 뭐고 작품마다 새로 평가받는다는 거잖아요. 용돈벌이용 작품이 언젠가 진짜 커리어를 파먹고 들어올지 모르죠.
무어:이 영화를 보고 나니 2분 뒤를 주인공처럼 매 순간 보게 된다면 두개의 시간대를 동시에 체험하는 셈이니 한달도 못 되어 정신분열증을 앓을 것 같더라고요.
장모:시간을 미분해서 말하자면 어느 한 순간에는 한 시간대에만 있을 수 있으니 결국 삶의 길이는 마찬가지겠죠. 그럼 이쯤에서 “가장 먼 미래는 내일”이라고 잘라 말하는 영화로 넘어갈까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목말라하는 젊은이의 이야기라는 점이 <마리 앙투아네트>와도 상통하네요.
무어:계급에 현격한 차이가 있긴 하죠. -.- 저는 한국영화에서 절망을 표현하는 방식 역시 유머를 표현하는 방식 못지않게 관성적인 클리셰가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이나 삶에 대한 분노를 총에 대한 집착으로 그려내는 것은 참 생경하고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장모:장편 영화임에도 단편영화같은 느낌이 있었고 전작 <마이 제너레이션>에 비해 화법이 늙었다고 느꼈어요. 인물의 심리적 궤적에 빠져들어 쫓아갈 만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세심한 요령이 없어 감정과 캐릭터가 차곡차곡 두텁게 쌓이질 않았어요. 촬영은 좋았습니다.
무어:청춘영화-성장영화로서 상상력이나 표현력이 풍부하지 못하고 딱딱하다는 인상이 짙었죠.
장모: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 자기를 희생하는 형, 조폭영화의 신파적인 코드, 성적으로 문란한 어머니 등 상투적인 코드로 드라마가 축조돼 있고, 중요한 고비마다 인물의 동기를 잘 좇아갈 수 없었어요.
무어:여성을 다루는 방식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요. 특히 주차장 장면에서 여자에게 “누굴 흥분시키려고 그래?”라고 종대가 말하고 이어 그 여자의 태도가 돌변해서 갑자기 ‘유혹의 장미’처럼 행동하는 묘사가 그랬죠. 그리고 광신자 어머니, 집 나간 형수 등등의 캐릭터들도 그렇죠.
장모:헉, ‘유혹의 장미’는 또 뭐래요? *.*
무어:요한이라는 소년이 종대에게 마지막에서 모두 네번 질문하는데 처음 세번은 아이답게 “왜”를 묻는 자연스런 질문이라는 데 비해서 마지막 질문 “커서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는 일종의 다짐을 요구하는 말이어서 오로지 대답을 위해 걸쳐진 질문 같더군요. 앞에서 복선이 있었던 질문이긴 하지만요. 아마도 감독은 라스트신을 처음부터 명확히 생각하고 찍은 것 같아요. 그래서 무척 인상적이긴 하더라고요. 성장영화의 마무리로서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로케이션도 좋아요. 특히 을지로에서 총을 사려고 헤맬 때의 느낌. ^^
장모:부감으로 찍은 골목장면이 많죠. 김성수 감독의 <비명도시>가 생각나요. 서울에 이런 공간들이 없어지고 있다던데.
무어:그래서 감독님들이 서둘러 더 많은 영화들을 찍으셔야 한다는…. ^^
장모:유아인씨 얼굴도 좋아요. ‘강북’ 미소년의 느낌이랄까. 그런데 노동석 감독 영화에는 <마이 제너레이션>에 이어 이번에도 수상쩍은 뒷골목 거래가 등장하네요.
무어:얌체 대리운전 고객 에피소드 같은 인상적인 장면도 있었어요.
장모:그것도 말하자면 ‘프리터’들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인데요. 노동석 감독 영화에서 주인공 젊은이들이 진입해야 할 기성사회, 경제의 질서는 어딘가 수상쩍고, 정면으로 돌파해서는 편입될 가능성이 없다는 절망이 엿보여요. 어떤 불결함을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랄까.
무어:혐오가 아니라요?
장모: 약간의 동경이 들어 있어서 혐오보다는 두려움이란 말을 썼어요.
무어:전 <세 번째 시선>에서 노동석 감독이 맡은 단편 <험난한 인생>의 넉넉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선 그걸 느낄 수 없어서 아쉽기도 했어요.
장모:<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시사용 테이프를 다시 틀었는데 음악이 참 좋군요. 비는 이제 그쳤나요?
무어:도통 모르겠네요. 비가 오는지, 아침이 밝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