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찬반논쟁] 남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판하다
2007-05-31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관객이 연민할 순간이 없다

역사의 인물을 영화의 주제로 삼을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에 중심을 두어 어떻게 가지치기를 할 것인지를 확실히 인지하는 태도다. 그 태도가 있어야만, 사실을 허구로 완전히 각색할 때나, 역사를 새롭게 재해석할 때나, 사실이라고 믿어져온 것을 의심해볼 때나 영화의 설득력이 생긴다. 이건 역사적 인물을 다루면서 역사 대신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비난과는 별개의 문제로, 감독은 거기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며, 무엇에 책임을 지고자 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피아 코폴라,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겁니까? 영화를 본 뒤, 상상해본 그녀의 세련된 대답은, ‘나는 역사적 강박에서 벗어나 십대 소녀인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만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 한가운데 내던져졌던 인물에게서 그처럼 쉽게 역사를 지워버리는 권리가 감독에게 있는지의 의문을 제쳐두고서 그녀의 대답을 들여다보자. 영화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여자를 얼마나 철저히 깊게 보고 있는가? 그러나 영화가 보고 있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칭하는 껍데기들뿐이다. 그 껍데기는 커스틴 던스트, 마놀로 블라닉, 일류 의류 브랜드, 뉴 로맨틱 록 등등… 말하자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체하고 있지만, 화려한 껍데기만으로 재단, 해석, 고정되어온 역사적 이미지로부터 그녀를 구해내기는커녕, 오히려 그 껍데기를 현대적으로 재전유하고 있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귀족들이 입는 옷과 그들의 놀이 문화는 일시적인 볼거리로는 기능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며 가장 궁금해할 사항은 아니다. 모든 초점을 십대 왕비에게 맞추고 역사적 배경을 털어버리기로 했다면, 영화는 그녀가 특정 순간 왜 특정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그런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자, 어린 나이에 왕실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가련한 십대라는 전제. 영화 곳곳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대한 왕실 속에 파묻힌 작은 새처럼 포착한 숏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 성장기 소녀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무조건적이고 감상적인 연민으로 채워져 있는데, 문제는 연민 자체가 아니라,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영화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연민할 순간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영화는 소녀가 겪는 좌절의 순간을 그릴 때, 그 원인은 최대한 단선적으로, 좌절하는 순간은 최대한 그렁그렁하게 보여준 뒤, 구두와 드레스 행렬을 비추며 좌절의 결과로 건너뛴다. 소녀는 아이를 낳지 못해 운다, 그래서 공허해진 마음에서 사치에 대한 욕망이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이러한 변화는 한 여자의 내면 안에서 유기적으로 읽히기보다는 각각의 상품들에 대한 광고처럼 파편적으로 소비된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타국에 내던져진 어린 왕비가 상실감에 허덕이다 성숙해진다는 틀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기존의 편견을 균열한다. 하지만 왕실의 비극을 보편적인 성장기로 바꿀 때, 영화의 한계도 시작된다. 카메라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그녀 주변의 귀족 여인들을 찍을 때, 그녀들을 보는 게 아니라, 그녀들의 일부로 자신을 위치시킨다. 귀족들의 방탕과 사치는 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는 철없는 소녀들의 성장기로 따스하게 감싸진다. 그러나 이 상류층 소녀들의 방황과 깨달음에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만약 감독이 이 영화를 시대를 불문한 소녀들의 개인적인 성장통으로 내세운다면, 그녀의 패착은 특정 계층의 성장기를 마치 모든 소녀들이 연민할 수 있는 공통된 것처럼 환원했다는 점이다. 오직 죄가 있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돈이 많았고 현실감각 없이 순진했을 뿐인 18세기의 외로운 ‘패리스 힐튼’.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의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렇게 변명한 꼴이 되었다. 결국, 소피아 코폴라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면을 쓴 커스틴 던스트)에게 보내는 시선은 할리우드에서 보낸 자신의 십대 시절에 대한 지극히 사적이고 향수어린 고백이자 연민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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