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는 여행 중이다. 갑자기 사라졌던 연인 E를 찾으러 델리에서 히말라야를 거쳐 라다크로 향하고 있다. 그녀는 K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가장 잔인했던 나를 용서하지 않길 바란다”는 엽서만을 보내왔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로 떠난 것일까. 왜 떠난 것일까를 묻기 전에 K는 3년 전 그녀와 함께 찍었던 사진을 들고서 머나먼 천상고원을 찾는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천상고원>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욕망> <달려라 장미> 등을 만든 김응수 감독의 4번째 장편영화. ‘누군가를’ 만나서 ‘무엇인가’ 벌이는 흔한 로드무비를 기대했다가는, 히말라야 산맥의 광활한 풍광을 맘껏 즐기려고 맘먹었다가는, 금세 고산병에 시달리는 K처럼 말을 잃고 눈이 감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뒤섞은 <천상고원>은 굳이 이름 붙이자면 심리적 로드무비가 적당할 것이다. 라다크로 가는 도중 K는 김태훈이라는 한 남자를 만나지만,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고작해야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나요”가 전부다. 좁고 가파른 길을 덜컹거리며 오르는 차 안에서 두 사람은 언어를 잃고 침묵을 얻는다. 아픔을 통각하지 못하는 일상을 빠져나온 그들은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고문이라도 당하는 듯한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라는 K의 물음도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으로 어느새 바뀌어 있다.
<천상고원>은 보는 이들 또한 어지럼증의 굴레로 밀어넣는다. 광활한 자연이 펼쳐놓은 쪽빛 하늘은 탄성 대신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시커먼 그림자 위에 누런 토사물을 게워내고, 초점 잃은 동공으로 자아를 응시하는 K의 자기 부정과 긍정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라다크로의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덜컹거리는 차 안을 들여다봐야 하는 관객에게도 증세가 점점 전염된다. 오르기 위해선 덜어내야 하고, 나아가기 위해선 버려야 한다는, 치유는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 라다크 사람들에게 사진을 건네며 웃는 K처럼 관객도 웃을 수 있다. 홀로 살아 숨쉬는 듯한 자연과 유일하게 대화하는 카메라, 편두통과 환청을 유발하는 사운드 등도 <천상고원>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 투명한 세계에 가닿아 더러워진 육체를 비춰보고 싶다면, <천상고원>은 필히 건네주고픈 안내서 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