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의 정체
<뜨거운 녀석들>에는 빌 나이히, 스티브 쿠건 같은 영국의 스타들이 카메오 아닌 카메오로 출연한다. 그런데 정말 카메오답게 출연한 두명이 있으니 그중 하나는 피터 잭슨 감독이다. 피터 잭슨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하나로, 심지어 <킹콩> 촬영 중에는 에드거 라이트를 세트장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때 <뜨거운 녀석들>의 계획을 설명했던 에드거 라이트는 피터 잭슨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는다. 잭슨은 “그때쯤 난 영국에 있을 거니까 당신이 원하는 카메오로 출연하겠다”라고 말한 것이다. 결국 그는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감독을 몇초짜리 카메오로 기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잭슨은 카메오 출연 외에도 <뜨거운 녀석들>의 촬영장에서 에드거 라이트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재닌은 누군가
두 번째 ‘카메오다운 카메오’는 바로 케이트 블란쳇이다. 이 대스타는 니콜라스의 헤어진 여자친구 재닌으로 등장한다. 니콜라스는 샌포드로 전근하기 전 재닌을 찾는데, 감식반원인 재닌은 마침 감식작업 중이라 얼굴의 절반 이상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다. 그러니 그가 누군지 알게 뭔가(영화에는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한 유머도 나온다). 사실, 에드거 라이트와 사이먼 페그는 이 배역에 블란쳇이 출연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농담처럼 ‘이 자리에 아카데미 수상 여배우를 출연시키자고. 그리고 얼굴은 보여주지 않는 거야’라면서 낄낄거렸을 뿐이다. 그러던 와중 라이트는 LA의 한 파티에서 블란쳇을 만나게 됐고, 그녀가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대단한 팬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리고 블란쳇은 라이트의 농담 같은 카메오 출연 제의를 흔쾌히, 그것도 무보수로 받아들였다.
쌍둥이 경찰의 비밀
샌포드 경찰서 입구에는 항상 그가 앉아 있다. 아니, 그들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무심히 책을 읽으면서 로비 데스크에 앉아 있는 형사는 나중에 두 사람, 그러니까 쌍둥이로 밝혀진다(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헤어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차피 그는 영화에서 별 역할을 하지 않으니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다). 이 역할은 영국의 코미디언 빌 베일리가 1인2역으로 연기했는데, 둘 중 한 형사가 읽는 책은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이언 뱅크스의 추리소설 <공범>(Complicity)이며, 다른 형사가 읽는 책은 이언 M. 뱅크스의 제목을 알 수 없는 책이다. 이언 뱅크스와 이언 M. 뱅크스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 하지만 여기엔 규칙이 있다. 뱅크스가 이름에 M자를 붙일 때 그 소설은 SF 장르에 속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니 이 똑같아 보이는 쌍둥이 형사의 손에 이언 (M.) 뱅크스의 소설을 쥐어준 것은 ‘하나이면서 두 사람이며, 두 사람이면서 한 사람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라이트 감독의 재치 넘치는 선택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