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봅시다]
[알고 봅시다] 홍콩 누아르의 전설, 삼합회
2007-07-05
글 : 장영엽 (편집장)

홍콩 누아르영화를 감상할 때 당신은 무엇을 기대하는가. 바바리코트, 검은 선글라스, 입에 문 시가 한 개비?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삼합회에 대해 절반쯤 알고 있는 셈이다. 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단체는 홍콩영화의 중심에 자리잡으며 누아르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홍콩 누아르에 기대하는 모든 것은 사실 삼합회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기봉의 영화 <익사일>의 개봉을 맞아 삼합회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았다.


<익사일>

1. ‘피의 서약’으로 맺어진 천지회에서 유래

삼합회의 기원은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왕조 시절, 푸젠 지방은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무법 지역이었고 힘없는 노동자와 영세상인, 그리고 기술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었다. 의형제로서 ‘피의 서약’을 맺어야만 조직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이 모임의 이름은 ‘천지회’다. 천지회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뜻하는 정삼각형 속에 ‘홍(洪)’자를 표식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청조 타도를 외치며 거대한 범죄 조직으로 변해갔고, 고대 전사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충만했던 조직원들은 조직의 명령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천지회는 250년이란 세월 동안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각기 다른 이름을 가졌으며 그중 하나가 삼합회다.

2. 중국의 알 카포네, 두웨성

1900년대 들어 중국 범죄조직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크게 성장했다. 당시 상하이를 주름잡던 전설의 인물은 두웨성. 역사가들은 그를 중국의 ‘알 카포네’로 불렀다. 상하이 최대 범죄 조직이었던 ‘청방’에 가입한 그는 뛰어난 수완으로 두목 황진룽의 오른팔로 성장한다. 곧 청방과 상하이의 지하 경제를 장악한 두웨성은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를 도와 노동자 시위에 개입해 5천여명을 학살한다. 이로써 그는 국민당의 장군 지위를 얻고, 국민당의 지하 자금을 관리하는 등 합법적인 범죄 조직의 보스가 된다. 하지만 천하제일의 권력을 자랑하던 두웨성의 말로는 비참했다. 중·일전쟁 당시 홍콩으로 피신했던 그는 7년 뒤 돌아와 조직의 파멸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중국 제일의 한량은 아편에 중독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한 역사학자는 두웨성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의 일생은 말 그대로 상하이의 역사였다. 그를 존경하는 사람은 없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3. 대륙을 피해 해외로, 범죄 단체로 변신

공산당의 집권으로 대륙에서 추방되면서 삼합회는 본격적인 범죄 단체로 변화한다. 그 이전부터 자본주의 국가 홍콩에서의 풍부한 사업기회를 찾아 헤맸던 이들은 8개 파벌로 나뉘어 홍콩을 ‘분할 통치’했다. 그 대표적인 삼합회가 호싱호, 쑨이온, 퉁 그룹, 루엔 그룹 등이다. 호싱호와 쑨이온은 뒤에 홍콩 당국의 범죄 소탕을 피해 토론토나 런던 등에 굳건한 거점을 가지게 된다.

한편 1960년대 미국의 이민법이 중국인들에게 유리하게 바뀌면서 가난하고 젊은 중국인들이 미국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새로운 범죄 조직을 결성했다. ‘플라잉 드래곤’, ‘파이트 이글스’ 등 현란한 이름의 여러 조직들이 그곳에서 이권을 둘러싼 경쟁을 벌였다. 그중 ‘고스트 섀도’의 니케 루이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차이나타운을 장악했다고 한다. 뒤에 부하 조직원에게 기습당한 그가 조직을 고발하면서 ‘고스트 섀도’에 필적하는 거대 조직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고.

4.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삼합회 에피소드

<영웅본색>에서 ‘따발총’을 멋지게 날리던 주윤발을 기억하는가. 의리의 삼합회 단원 역을 맡았던 그는 실제로 삼합회 보스의 애인과의 염문설로 단원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홍콩의 전설적 무술배우 이소룡도 청소년 시절 삼합회 단원의 아들과 싸운 뒤 신변을 우려해 사실상 미국으로 도피성 이민을 갔다고 알려진다. 또 홍콩 최대의 재벌 리카싱은 장남이 납치되자 홍콩의 모든 삼합회에 장남의 소재를 알아내고, 구출해준다면 원하는 대로 돈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납치한 범인을 잡아 자신이 직접 ‘보복’하겠다는 말과 함께.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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