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라는 이름은 많은 설명을 갖고 있다. 그룹 ‘에픽하이’의 리더, 스탠퍼드대 영문학과 석사 출신, 말 잘하고 유머감각 있는 연예인, 취미 다양하고 문화예술 관련 지식 많고 의식도 뚜렷한 스물여덟살의 청년. 적어도 대중이나 언론 앞에서는 이런 설명 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미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그가 요즘은 영화를 찍고 있다. <암흑 속의 세 사람>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독특한 상상을 펼치는 단편. 사제 폭탄으로 학교를 폭파해 세계 평화를 이루려는 아웃사이더 남학생, 같은 학교 여고생에게 연정을 품는 양호선생님, 자기가 살해당할 거란 망상에 시달리고 사는 학생 주임선생님 그리고 자살에 실패하는 여고생이 주인공이다. 연출은 독립단편 코미디 <핵분열 가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박수영 감독이 맡았다. <암흑 속의 세 사람>은 MBC드라마넷과 (주)인디스토리가 공동제작하는 HD옴니버스영화 <판타스틱 자살소동>의 3편 중 하나. 시트콤(<논스톱5>) 출연 이후 시나리오들이 들어왔으나 “그저 기회가 와서, 타블로라는 이름을 이용해서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았”던 그는 자신에게 좋은 시작이 돼줄 작품을 기다리다 이 영화를 만났다. “독립영화이고, 단편이고, 무엇보다도 캐릭터가 맘에 들었어요. 어눌하고 자기 표현이 서툰 아웃사이더예요. 내면에는 폭발적인 상상이 들어 있어요. 남들이 보기엔 유치하고 현실성없는 것들도 가능하다고 믿어요.”
‘내면에 들어 있는 폭발적인’ 것은 타블로에게도 해당하는 설명이다. 그는 작곡, 랩 쓰기, 프로듀싱 등 ‘에픽하이’의 음악적 부분을 모두 짊어지고 있다. 매번 20여개의 곡을 써서 앨범에 꽉꽉 담아내는 것도 신기하지만 곡마다 선명한 주제, 후크 강한 멜로디, 신선한 랩 라인을 조화시킨 대중적인 흡인력을 낸다는 게 대단하다. 이 왕성한 창작열의 샘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흥얼거리고 상상하던 멜로디들을 갖고 써요. 음악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음악 앞에서 미친 듯이 심한 부담을 느낀다거나 나를 괴롭히거나 하진 않는 것 같아요. 진지하지만 즐겁게, 편하게 하는 편이에요.” 가장 실험적이고, 가장 암울하고, 대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며 만든 이번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이 성공을 거둔 게 신기하다고 그는 덧붙인다. 타블로는 요즘, 진정으로 자신의 내면 욕구에 귀를 기울이는 중이다. 그는 앞으로 책을 쓰고, 연기를 하고, 영화도 만들고, 시장논리에 얽매이지 않은 “좀더” 자기만의 음악을 하고 싶다. 타블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도 유독 더” 많은 편견과 비난에 시달렸던 것 같다고 말한다. 오락프로그램에서 까분다 치면 명문대생 꼬리표를 들어 “타블로 잘난 척한다”는 얘기가, 강남 타워팰리스에 사는 부모님을 언급하며 사회비판적인 힙합 음악과 모순 아니냐고 “타블로한테 실망이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그는 이런 얘기를 할 때 모든 것에 지쳤고 질린 듯한 표정을 짓는다.
비가 올락 말락한 하늘 아래 지난 6월25일 월요일, 타블로는 서울 수유동 화계중학교 옥상에서 김가연, 한여름 등 동료 출연자들과 짓궂지만 편한 장난들을 주고받으면서 현장을 즐기고 있었다. “선택을 잘한 것 같아요. ‘연기자 타블로!’ 이런 식의 화려함은 되지 않겠지만.” 뉴욕에서 살던 고등학생 시절, 영화학교를 가고 싶은 꿈을 가졌고 단편영화 조감독도 해봤던 그는 “고다르와 트뤼포, 루이스 브뉘엘을 좋아하는 영화광”이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극장에 처박혀 하루 3편씩 영화를 보곤 했고, 고교 시절부터 시나리오 자작도 해오고 있다. “본업, 이라는 말이 우스운 게,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가수하나요? 그렇게 치면 난 본업이 아르바이트생인데. ‘아 아르바이트생 타블로씨가 이번에 가수를 한다고 음반을 냈습니다.’ 사회생활을 뭔가로 시작하면 그게 본업이 되고 딴 걸 하면 욕부터 먹는 거 같아요. 그런 평가가 두려워서 못하지 재능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은 주위에서 못 봤어요. 개그맨을 하는 지인이 쓴 곡이 있는데, 정말 좋거든요. 그런데 보나마나 사람들은 ‘개그맨이 가수한다’고 볼 테니까 가수할 생각도 못해요. 그게 사장되는 게 얼마나 안타까워요. 결국 손해보는 건 우린데.” 타블로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쓴 시나리오는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랑 느낌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그건 엄청난 예술영화 시나리오라는 건가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는데 따져 묻지는 않았다. 뭐든 원하면 될 수 있고, 할 수 있고, 그런 믿음에 부응하려는 실천적인 열정이 부러울 따름이다. “아직은, 크게 한번 실패를 해도 괜찮을 나이인 것 같아요. 쓰러졌다 일어나면 더 강해져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