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용감한 기획인 반면 소심하게 연출된 것 같아요”
vs. 이동진 “이런 영화일수록 ’무엇’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하겠죠”
두 마리다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다음주면 화려한 휴가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다음주면 화려한 휴가님의 말(이하 담주): ‘두 마리다’는 ‘두 사람이다’의 패러디인가요?
두 마리다님의 말(이하 마리): <에반 올마이티>에 보면 동물들이 방주를 타러 종별로 두 마리씩 몰려 들잖아요? 워낙 장관이었던지라…. ^^;
담주: 글쿤요. 전 또 우리 두 사람에 대한 자학인 줄 알았습니다. -.-
마리: 어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가 더 좋네요. -_- 이번주에는 <화려한 휴가>가 개봉합니다. 제 머리에 남아 있는 5·18의 움직이는 이미지는 흑백 TV뉴스에 나온 빙빙 도는 헬기와 그 아래 ‘폭도’로 규정된 깨알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훗날 들은 이야기로 인해 기억이 탈색된 걸까 싶기도 했는데, 기록을 보니 광주항쟁이 일어나고 같은 해 말에야 컬러 방송이 시작됐더군요.
담주: 색깔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시네요. 전 가끔 흑백영화를 컬러로 착각할 때도 있는뎁쇼. 전 당시에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뭔가 안 좋은 엄청난 일이 남쪽 어디에서 일어났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꼈어요. 그게 광주인지도 잘 몰랐죠.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저는 어떻게 만들어도 비판받기 쉬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참 다루기 어려운 소재죠.
마리: 음, 동전의 양면으로서 어떻게 만들어도 비판하기 쉽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죠. 영화에 대한 비평이 광주 시민에 대한 무례로 오해될까봐 조심스러우니까요.
담주: 5월 광주는 한국전쟁이나 실미도 사건과는 또 다르잖아요. 역사적 소재에 대한 거리감이 무려 27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때 상흔이 얼마나 큰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셈입니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분명한 것은 5·18에 대한 태도와 이 영화에 대한 태도는 혼동되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마리: <화려한 휴가>를 바라보는 감정은 어떤 영화를 기다릴 때보다 복잡했어요. 예고편이 처음 공개됐을 때는 할리우드 서사극풍의 영화음악에 얹힌 금남로의 영상을 보면서 일단 당혹스러웠습니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관객으로서 5·18을 픽션, 드라마로 다시 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단 거죠. 그리고 예고편에 익숙해지자 매번 조건반사처럼 눈물이 치밀더군요.
담주: 30∼40대 관객의 상당수가 비슷한 감정일 거라고 봅니다.
마리: 그런데 막상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는 예고편의 파편적 영상에서 받은 충격과 감흥을 넘어서는 울림은 얻지 못했다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담주: <화려한 휴가>는 ‘무엇’으로 울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어떻게’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봐요.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몇 차례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는데 그것은 실화의 몫이지 영화의 몫은 아니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이런 영화일수록 결국 ‘무엇’보다 ‘어떻게’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리: 그날의 광주 안으로 최초로 들어가서 어려운 작업을 감당한 용기는 인정해야겠죠.
담주:‘무엇’이 중요할 수 있다면, 그건 특정 소재를 영화화할 수 없는 정치적 억압이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든지, 자파르 파나히의 <서클>이라든지, 일마즈 귀니의 <욜> 같은 영화가 있겠죠. 사드의 소설까지도 그런 면에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요. 그런데 <화려한 휴가>가 과연 그런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는 거죠.
마리: 그런 맥락에서 <화려한 휴가>는 홀로코스트영화들을 볼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우 아닐까요. 소재에 대한 발언이 허용돼 있고 어느 정도 사실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고, 그래서 어떻게 형상화했느냐를 예술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화려한 휴가>의 구성은 5월21일 금남로 발포 이전의 평화적 상황-금남로 발포를 계기로 한 극적인 전환-도청에서의 항전의 세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겠는데요.
담주: 영화의 시작을 보면 만드는 이의 복합적인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우아한 크레인 숏으로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택시를 잡으면서 영화가 시작하잖아요. 이어 제목이 뜬 뒤 계엄군이 광주로 날아가는 장면이 나오죠. “빨갱이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라는 지침과 함께요. 그런데 이후 거의 30분간은 5·18과 아무 관계없는 영화인 듯, 흡사 80년대를 무대로 한 로맨틱코미디인 것처럼 영화가 진행되잖아요?
마리: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로맨스, 가족적 에피소드는 관객을 ‘보호’하려는 듯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그려졌죠.
담주: 어쨌든 5·18 이야기라는 것을 알려야 하니, 도입부에 맥락없이 불쑥 침투장면을 삽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러고도 초반 한참을 웃음과 순정으로 이어가야 했다는 것, 그런 것들이 대중영화로서의 위치에 계속 곁눈질할 수밖에 없었던 이 영화의 구조적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런 초반을 통해서 5·18이 시민들에게 불쑥 찾아온 참극이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는 있겠지만요.
마리: 그 점에서 저는 <화려한 휴가>가 용감한 기획인 반면 소심하게 연출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폭도가 아니었다. 빨갱이가 아니었다”- 물론 ‘폭도’, ‘빨갱이’라는 말의 함의도 다시 생각해야 하지만- 는 어찌 보면 이미 합의된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전반부에 재삼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초월하는 광주 시민들의 정당성을 오히려 묻어버리는 역효과를 냈어요.
담주: 동의해요. 사실 이 영화는 시각적으로는 강력한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메시지나 이야기상으로는 그날의 일들에 대해서 거의 발언하지 않는 것 같은 영화입니다. 어찌 보면 5·18의 역사적 무게를 두려워하는 이상한 5·18 영화 같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이 뜨거운 소재의 영화를 만들면서 뭔가 이견이 있을 내용을 넣어 공격받아선 안 되겠다는 방어본능이 엿보이는 영화랄까요.
마리: 영화가 과거를 재현하는 매체로서 공감을 일으키는 데에는 탁월한 반면 해석에는 약하다는 근원적 약점도 있겠고요. 하지만 <화려한 휴가>는 절충했다는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선택한 시점 안에서 드라마도 안이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실망의 원인인 것 같습니다. 유례없이 특수한 소재를 굉장히 평이하게 소화했다고나 할까요?
담주: 확실히 이 영화는 해석하지 않고 재현하려는 영화죠. 그런데 그게 2007년의 시점이라면, 재현 자체가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남는 겁니다.
마리: 글쎄요. 역사의 재현에서 빠진 조각을 채우는 성과가 이 영화의 기본적 결실인데 궁극적으로 그것이 가장 큰 결실도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여성이 주체로 등장한다는 것만으로 어떤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고 이제는 그 시기가 지난 것처럼, 광주영화가 거듭 만들어지면 <화려한 휴가>도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거예요. 2007년 지금의 시점이 중요했다기보다 5·18이 잊혀질까봐 울리는 경종에 가깝겠죠. “기억해주세요”는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한데요. 사실 역사영화가 소재가 된 사건을 상기시키는 효과는 기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 욕심이 없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기억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영화만큼 영향이 큰 매체가 없는 게 현실인데요. 물론 <화려한 휴가>가 광주의 영화적 부활을 모두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현실적으로 충무로에서 5·18을 그린 또 다른 상업영화가 나오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 보이지 않는 책임의 부피를 부정할 수는 없겠죠. 특히 “정말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 있었냐?”고 묻는 세대에게 <화려한 휴가>는 광주에 대한 결정적인 해석이 될 겁니다. 아무리 영화 만드는 주체들이 해석을 고사했다고 하더라도요.
담주: 저는 이 영화가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누를 끼치지 않으려 조심하는 마음과 100억원이나 들인 대작 대중영화로서 흥행을 고려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마음이 서로 충돌하면서 영화에 좀 기이한 원심력을 불어넣었다는 느낌이 있어요. 예를 들어 박철민, 박원상씨가 주도하는 코미디가 그것인데 그 자체로는 개인기 뛰어난 배우들의 코믹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고 초반에는 보기 즐겁습니다만 참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나서는 그 코미디의 요소를 버리지도 끌고가지도 못해서 어정쩡해진다는 거죠. 이를테면 비극 사이의 휴지기에 도청 앞에서 두 남자가 서로 끌어안고 코믹하게 블루스를 추는데 그 장면에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웃음=흥행에 대한 강박 같은 것이 영화의 기본적 분위기나 리듬에 불편하게 작용했다고 봐요. 박철민씨 연기가 참 인상적이긴 했습니다만.
마리: 그런데 일반 시사회에선 그런 코미디에 호응이 큰 것 같습니다. 그보다 저는 시민군을 조직하는 장면에서 굳이 나오는 방위 조크가 불편하더군요. ^^; 그보다 말씀하신 것과 연관해 더 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배우들을 매우 도구적으로 기용했다는 점이었어요. 애드리브와 코미디에 강한 배우들에게도 이면과 그늘이 있는데 즉각적 코미디로만 주로 활용한 점은 아쉬웠습니다. 특히 아들 잃은 눈먼 어머니로 분한 나문희 선생님은 최근 너무 편의적으로 기용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카메라 앞에 있는 것만으로 심금을 울리는 힘을 지녔다는 사실 때문에 감독들이 너무 안이하게 의지하지 않는가 싶어요. 연기 연출의 이런 성향은 눈물과 웃음, 감동의 안배라는 연출의 방향과도 맞물려 있겠죠.
담주: 기본적으로 캐릭터들이 양식적이고 평면적이란 느낌이 강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도 들더군요. 일단 동생에게 모든 것을 걸고서 힘들게 살아가는 형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같고, 그 형에게 멜로적 공식에 따라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도 같죠.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비극을 소재로 삼아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역사의 비극에 휘말리게 되는 과정도 유사하고요. 무엇보다 두드러졌던 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신애의 대사였어요. 이 대사는 영화에 아주 인상적으로 삽입돼 있는데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형,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눈뜨면 우리집 안방이고. 나는 아침 먹으면서 형에게 말할 거야. 정말 진짜 같은 꿈을 꿨다고”라는 대사가 있잖아요?
마리: 성공한 대작의 레시피에 대한 참조가 있었겠지요.
담주: 구체적인 묘사는 사진과 다큐 같은 기록에서 가져오고, 이야기나 인물 구도는 이전 흥행 대작을 참고하고, 메시지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휴머니즘을 반복한다면 이 영화는 지나치게 안이한 영화가 아니냐는 거죠.
마리: 사족이지만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그놈 목소리>가 생각났습니다. 그 영화는 말미에 아직 잡히지 않은 이형호 어린이 유괴범을 배우의 입을 빌려 공개적으로 수배합니다. 그 연출에 동의하냐는 문제와 별도로, <화려한 휴가>는 끔찍한 학살의 원인제공자가 누군지도 알고 그가 시퍼렇게 두눈 뜨고 살아 있는데도 지목하는 데에 조심스럽거든요. 사실 영화로까지 수배를 굳이 꼭 한번 해야 한다면 <화려한 휴가>야말로 그 한편의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해보았습니다. -..-
담주: 정곡입니다. 또다시 체포조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
마리: 그 비극을 일으킨 모순이 5·18 한번으로 완전히 소멸한 것이 아니라면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를 넘어,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연관이 관객에게 인식될 때 역사를 다룬 영화는 비로소 완성될 것 같아요. 아니, 이거 오버인가요. -_-
담주: 한데 우리는 영화를 너무 비슷하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가끔 이래도 되나 싶긴 합니다. -.- 원래 비슷한 건지 대화를 하다보니 비슷해진 건지…. -_-#
마리: 현실이 영화보다 더 극적이란 말이 <화려한 휴가>만큼 맞는 영화도 없을 겁니다. 외국 스튜디오에 시놉시스 들고 가면 개연성이 없다고 퇴짜 맞겠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왜 갑자기 자국 군대가 비무장 시민을 무차별 사살하냐고.
담주: 게다가 애국가를 틀어놓고….
마리: 사실 발포장면의 애국가는 화면 안 음악인데, 만약 화면 밖 음악이 삽입됐다면 참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허구와 현실의 벽이 그 시퀀스만큼 얇아진 순간은 이 영화에서도 다른 영화에서도 좀처럼 없을 거예요.
담주: 워낙 원초적 분노와 비감을 부르는 드라마틱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대형 금남로 세트를 지어놓고 적절히 활용했다는 점에서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마리: <화려한 휴가>의 주요 인물은 택시 기사들인데요. 실제로 항쟁 세력에 시민들이 대거 합류한 계기가 부상자를 후송하던 택시 기사가 군에 살해된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많은 운수노동자들이 저지선 돌파에 차를 끌고 나섰고요. 영화 속 민우도 처음엔 부상자를 피해 핸들을 돌리다가, 본능적으로 그들을 돕습니다. 동생 진우가 변을 당하기 전인데요. 가족의 안위만 챙기는 것 같던 그가 막상 참상 앞에 가만히 있을 수 없음을 잘 설득한 대목이었습니다.
담주: 김상경씨의 넋나간 표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방비 상태에 놓인 배우의 얼굴을 엿보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배우들은 자신을 완전히 설복시킬 수 있는 요소가 영화에 한두개라도 있으면 확실히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긴 한 것 같아요.
김혜리_“<라따뚜이>는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정해준 길을, 재능과 욕망을 따라 벗어난다는 줄거리 유형에서 픽사의 어느 전작보다 디즈니 영화와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이동진_“마지막 대사 중에 ‘그 얘긴 내가 해야 훨씬 재밌어4’라는 부분, 저는 그게 딱 픽사의 자부심 같았어요. 픽사 애니메이션은 이야기에 정말 많은 공을 들이잖아요.”
마리: 그런 믿음들이 모여서 감독의 구상을 넘어서는 영화가 나오는 거겠죠. ^_^ <라따뚜이>를 이야기하려니 영화의 색깔이 너무 달라 현기증이 나네요.
담주: <라따뚜이>는 미국 쪽 평이 정말 좋더군요. 로튼토마토닷컴의 상반기 평점 순위에서 1위를 했더라는…. *.* 뭐, 상당히 좋은 애니메이션인 것은 맞지만 그 정도인가, 싶은 생각이 아주 잠깐 들긴 했어요. ^^
마리: <라따뚜이>의 레미는 요리사를 꿈꾸는 생쥐인데, 이건 뭐 거의 인어에게 다리가 생기는 일에 비견되는 과제죠? 주어진 환경과 조건이 정해준 길을, 재능과 욕망을 따라 벗어난다는 줄거리 유형에서 픽사의 어느 전작보다 디즈니 영화와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담주: 설정이 기발해요. 주방에서 쥐가 나오면 누구나 소리를 지르게 마련인데, 아니, 그 쥐가 최고의 요리사로 각광받게 된다니요. 쥐들이 우글우글 주방에 모여서 그들끼리 최고의 요리를 만드는데 서사적인 감동과 시각적인 불편함이 겹쳐서 어쩔 줄 모르겠더군요. +_+
마리: ^0^ 레미를 부추긴 건, 명주방장 오귀스트 구스토의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슬로건이었지만, 그 ‘누구나’가 ‘쥐나 소나’는 아니었을 거라고 잠시 이의를 품기도 했다는. ^^ 방금 말씀하신 쥐들의 군중신, 아니 떼신은, 쥐에 대한 인간의 생리적 거부감을 피하지 않고 쥐답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픽사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푸하하.
담주: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미의 아버지가 “그 얘긴 내가 해야 훨씬 재밌어라고 남의 이야기를 가로채서 말하잖아요? 저는 그게 딱 픽사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했어요.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은 <토이 스토리>부터 <니모를 찾아서>와 <라따뚜이>까지 이야기에 정말 많은 공을 들이는 작품들이잖아요.그것이 픽사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요소인 것 같다는 거죠.
마리: 웬만한 PG-13 등급 실사영화보다 이야기가 복잡하죠.
담주: <라따뚜이>를 보면서, 부모들이 자기들은 <사우스파크> 같은 애니메이션 보면서 자녀들에게만큼은 기어코 디즈니-픽사를 보여주고 싶어하는지 너무 잘 알겠더라고요. 정말 바르고 착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잖아요? “인생에서 중요한 건 의지와 용기다”부터 민주 시민의 자질에 대한 메시지까지. ^^
마리: 물론 쥐 주인공으로는 미키 마우스도 있었고 <톰과 제리>의 제리, 스튜어트 리틀도 있긴 했죠. 그들에 비해 <라따뚜이>의 레미는 동족과는 대화하되 인간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반쯤 의인화된 절충적 캐릭터죠.
담주: 이런 설정이면 인간과 동물 캐릭터가 서로 대화를 하게 마련인데 말을 주고받지 않는 걸로 처리한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요리솜씨 없는 청년 링귀니와 주방에 들어갈 수 없는 레미는 서로 도와 일을 해나가는데요, 생쥐 레미가 인간 링귀니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서 마음대로 조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기분이 통쾌해지더라고요. 무슨 심린지….
마리: 저는 태권V와 철이를 생각했는데요. -..-
담주: 인간이 아닌 쥐에게 동일시를 하는 저는 어떤 인간이란 말이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 나오는 할머니의 자손도 아니고.
마리: 저기, 무를 드릴까요?
담주: 주면 바로 갈아드리죠. ^0^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음식 3부작으로 불러도 될 거예요. <복수는 나의 것>의 자장면-<올드보이>의 만두-<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무.
마리: 가만, 세 번째는 <친절한 금자씨>잖아요. 두부네요. -..-
담주: 헉. 두부까지 넣어서 4부작으로 정정.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이현령 비현령 말발타 살발타.
마리: 저는 구스토 같은 요리 명인의 아들 링귀니가 요리에 아무 재주 없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더군요. 하지만 그는 좋은 경영자가 되겠죠. 음식을 좋아하고 레미 같은 재능을 발탁할 줄 아니까. ^^ 픽사 영화치고 진행이 느긋했어요. 공간도 좁은 주방이 되풀이해 등장하고요. 반면 동적인 재미는 주인공이 키가 작고 보폭이 좁고 걸음이 잰 생쥐라는 점에서 끌어냈더군요. 쥐의 시점에서 그린 추격전의 스릴과 확대된 공간감이 좋았습니다.
담주: 레미가 옥상에 오르기 위해 하수관을 타거나 하수도에서 급류에 휩쓸려 테마파크 물놀이하는 듯한 쾌감을 주는 것 정도가 있었죠.
마리: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보다 요리 과정에 홀렸어요. 사실 요리하는 풍경이 오감을 자극하는 구경거리잖아요. 촉각과 미각은 자연히 예민해지고, 재료 성질에 맞게 순서대로 손질하는 과정에는 효율성과 정확성의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썰고 다지고 뿌리는 모든 동작은 음악적이고요. *.*
담주:“먹어보지 않고도 빵의 맛을 알려면 냄새도 모양도 아닌 소릴 들어봐야 해” 같은 고수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명대사도 있었죠.
마리: 사지도 않은 빵을 부숴보라니 그림의 케이크 같은 조언입니다. --; 확실히 미식 문화와 연관해서는 어른들의 재미가 더할 영화입니다.
담주: 그렇죠. 애들이 라타투이니, 송아지 곱창요리니 이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뭔가 군침이 나야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화인데….
마리: 피터 오툴이 목소리 연기한 음식평론가가 고뇌하는 장면도 압권이었죠.
담주: 영화에서 평론가가 나올 때는 일반적으로 묵사발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데…. 유독 음식평론가만큼은 상당히 존중을 받고 있는 게 이채롭더라고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미스틱 피자>에서도 권위도 있고 존중도 받는 음식평론가가 나오죠.
마리: 왜 그럴까요?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보도자료로 배포된 책을 보는 게 아니라 똑같이 돈 내고 음식을 먹기 때문일까요? ^.~
담주: 글쎄요. 전 영화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자신이 좋게 본 영화를 비판한 평을 보면 마치 자신에 대한 모욕처럼 느끼고 불쾌해하는 예를 상당히 자주 보거든요. 음식에 대해선 같은 경우라도 그런 문화적 비하감을 느끼진 않잖아요.
마리: 입맛의 차이는, 영화나 음악에 관한 취향 차이보다 존중하기 쉬운지도 모르죠. 여러 사람이 똑 같은 요리를 놓고 동시에 토론을 벌이기도 어렵고요. ^^
담주: 음식 취향은 그 사람의 문화적 수준보다 계급을 말해주겠죠.
마리: 어머, 쥐가 최고의 미각을 가졌는데 무슨 말씀? ^_^ 결말에는 만족하셨어요?
담주: 제일 만족스런 부분입니다.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란 노래가 있는데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가사의 전부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었죠. 그래서 매우 보수적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픽사 전작과 비교한다면 <니모를 찾아서>나 <토이 스토리>를 더 높게 치고 싶지만요.
김혜리_“<에반 올마이티>의 결말을 보고 웃음이 났어요. 대홍수를 기대했는데 타고 보니 후룸라이드고, 느닷없이 등장한 놀이동산 스탭이 ‘자, 내리세요’ 하는 기분.”
이동진_“저는 이 영화의 선한 본성과 오락영화로서의 재미가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고 봤어요. 그러니 폭우를 몰아치고도 그 누구도 해칠 수가 없는 거죠.”
마리: 제겐 여전히 <니모를 찾아서>와 <몬스터 주식회사>가 최고입니다. 암튼 앞으로는 패스트푸드점에 쥐가 나왔다는 사회면 뉴스가 나와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쥐꼬리만한 여지가 생긴 점을 기뻐하며, 가족영화로서 <라따뚜이>의 경쟁작인 <에반 올마이티> 이야기를 하죠. 의회에 입성한 에반에게 하나님이 찾아와 대홍수가 올 테니 방주를 지으라고 하는 이야기죠. 제작 단계에서 코미디 사상 최대 예산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죠?
담주: 그렇죠. 전 사실 감독 이름 때문에 꽤 기대를 했어요. 톰 섀디악을 좋아하거든요. 전편 <브루스 올마이티>도 재미있었고요.
마리: <에이스 벤추라> <라이어 라이어> <브루스 올마이티>, 짐 캐리의 파트너군요.
담주: <너티 프로페서>도 있죠. 기본적으로 개인기 뛰어난 코미디 배우를 아이디어 좋은 영화에서 최적으로 활용하는 감독입니다.
마리: 뭔가 초현실적 설정에 강하게 끌리는 감독님 같네요.
담주: 일단 <에반 올마이티>는 보여주고 싶은 것에 비해 그릇이 너무 큰 영화라는 생각을 했어요.
마리: 그릇이 아니라 배가 너무 큰 거 아니에요? ^^
담주: ^^ 클라이맥스에서 영화적 재미도 최고조에 올라야 하는데 용두사미의 전형이 됐죠. 중반까지 그럭저럭 재미있다가 방주가 완성되고 하늘에서 폭우가 퍼부을 때부터 배가 진짜 산으로 가는 거죠. -_- 사공이 워낙 많으시기도 하고,.도대체 왜 방주를 만들고 온갖 동물을 태웠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죠.
마리: 특히 결말을 보고 나면 워싱턴DC 인근에 서식도 안 하는 악어, 코끼리는 왜 불렀는지 웃음이 났어요. 아마도 사진이 잘 받아서겠죠? ^^ 대홍수를 기대했는데 타고 보니 후룸라이드고, 느닷없이 등장한 놀이동산 스탭이 “자 내리세요” 하는 기분이었어요. ^_^
담주: 마자마자. 결국 자연환경을 해치는 법안을 막기 위한 시위의 기능을 한 것이라는 말인데, 그러자고 그 무지막지한 일을 벌이다니요.
마리: 그러니까 <에반 올마이티>의 하나님은 미디어의 주목을 끌기 위해 옛날 레퍼토리를 리바이벌하고 초선 의원 에반을 이용한 언론 플레이의 귀재? ^^
담주: ^_^ 저는 이 영화의 본성과 오락영화로서의 재미가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고 봤어요. <에반 올마이티>는 기본적으로 무척 선한 영화죠. 구약 시대 노아의 방주에 대해서도 그게 진노의 심판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한 결과라고 자꾸 말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방주를 띄울 만큼 폭우를 몰아치고도 그 폭우로 누구를 해칠 수가 없는 거죠.
마리: <닥터 두리틀> 같은 영화를 큰 불만없이 보셨다면 무난히 90여분을 보낼 수 있는 코미디입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에 비하면 밋밋하지만 어린이들도 주의를 쉽게 집중하더군요.
담주: 영화 마지막에 신께서 “새로운 계명을 주노니, 모두 춤을 추라”라고 외친 뒤 심지어 현장 스탭들까지 몰려들어서 한바탕의 춤으로 끝나잖아요?
마리: 예 제11계명. “매우 춰라”지요. -..-
담주: 전 그런 부분에 마음이 끌려요. <자토이치>에서도 그런 종결법이 좋았고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도 그렇게 끝난다고 하더군요.
마리: 3편은 이제 아브라함 이야기라도 나올까요? <에이브러햄 올마이티>라든가.
담주: 영화가 흥행이 좋지 않았으니 차라리 <너티 올마이티>나 <에이스 올마이티> 아닐까요?
마리: 참, 에반에게 방주 지으라고 몰아세우면서 <초심자를 위한 방주 짓기> 교본을 건네주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가 감명 깊었습니다. ^_^
담주: 하나님으로 분한 배우 모건 프리먼을 무척 좋아해요. 하나님을 그처럼 잘 연기할 배우도 없다고 생각해요. 흑인 배우로서 핸디캡이 분명 있을 텐데도 대통령 역, 하나님 역을 했죠. 극중에서 에반과 대화하며 짬짬이 화분에 물 주는 연기가 있는데 그 장면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근데 프리먼도 벌써 일흔살이더군요.
마리: 그리고 벌써 우리 토크도 두 시간 반이 지났네요.
담주: 밥먹어야겠어요. ^.~
마리: 저도요. 지금 제게 필요한 책은 <초심자를 위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