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진서는 한사람이다
2007-08-03
글 : 박혜명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두사람이다>의 윤진서

“여행을 정말 좋아해요.” “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두 마디 뒤에 그는 “여행을 가면 꼭 친구를 만들어요. 그래서 전세계에 친구가 있죠”라고 이었다. 마치 그게 날마다 꾸는 꿈인 것처럼. 몽상가의 기질을 가진 윤진서는 아니나 다를까,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을 너무나 좋아한다며, 그 영화와 사랑에 빠져서 그걸 몇번이나 봤다고 했다. “그 주인공들이 꼭 저 같았어요! 저도 걔네들 사이에 끼어서 같이 루브르박물관을 막 뛰어다니고 싶었어요!” 소녀처럼 주먹을 꼭 쥔다. 윤진서는 강경옥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공포물 <두사람이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년의 ‘옆집 내 첫사랑’ 같은 이미지로 시작해서 엉뚱하거나 깍쟁이 같은 여자들을 거치고 최근에는 바람 피우는 유부녀를 능청스레 연기해낸 윤진서는 <올드보이> 이후 4년 동안 느리다면 느리게 자기 길을 걸어왔다. <두사람이다>에 나온 것과 동시에 장률 감독의 신작 <이리>, 윤종빈 감독의 신작 <비스티 보이스> 출연도 예정된 것을 보면 윤진서의 자기 자리 찾기는 아직도 진행 중. 본인에게는 그 길에 대한 걱정보다 즐거운 삶에 대한 믿음이 더 크게 자리하는 것 같다. 엄마를 비롯한 모든 지인들에게 본명 수경 대신 “진서”로 불리는 그의 꿈은, 여전히 세계일주다.

-<두사람이다>의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공포물을 되게 싫어해요. 시나리오가 들어와서 많이 읽어봤는데 다들 비슷한 것 같고, 그래서 이 시나리오가 들어왔을 때도 “또 공포영화야?” 그랬거든요. 근데 읽어보니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공포더라고요. 다음날부터 한 장면, 한 장면씩 머릿속에 여운이 남으면서 이 장면은 이렇게 연기하면 되겠다, 저 장면은 저렇게 하면 되겠다, 이런 게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 뒤에 결정하게 됐어요.

-어떤 점이 좋았나요.
=가인에게 애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동안은 제가 분출보다는 자제하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가인은 감정을 밖으로 분출하면서 왜 그렇게 분출하는지 과정도 보여주는 역할이거든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다른 유형이었어요.

-왜 지금까지는 자제하는 역할을 했나요.
=개인적으로 그런 역할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 아프다, 나 기쁘다, 나 슬프다 이런 걸 말하고 드러내는 사람보다는 그걸 감추고 조금씩만 보여주는 연기,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국내 공포영화들을 홍보마케팅할 때 다들 처음에는 ‘이 영화는 기존의 공포영화들과 다르다. 과장된 효과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공포물이 아니라 진짜 공포가 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막상 영화가 나오면 그게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두사람이다>도 그런 점에서 결과물은 식상하고 전형적인 공포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없었나요.
=아니오. 그런 걱정은 안 했어요. (기자가 대답을 더 기다리자) 제가 하는 얘기는 홍보팀에서 시켜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다 제 생각이거든요. 예, 저는 그런 우려는 없었던 것 같아요.

-<두사람이다>의 촬영은 어떤 점이 특히 어려웠나요.
=격한 감정신이 매일매일 반복되는데 감정의 수위도 장면마다 다르잖아요. 주인공이 믿었던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없어지면서 점점 더 궁지로 몰리는데 그걸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지 않으니까, 그 다른 높이들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그걸 매일 태엽 감듯 반복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본인에게는 그것이 소모였나요, 카타르시스였나요.
=촬영할 땐 소진이라고 생각했어요. 찍고 나니까 카타르시스였던 것 같아요.

-책, 음악, 영화 등을 평소에 많이 접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 접한 것들 중에 좋은 것들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프랑스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인데, 처음 시작은 불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거든요. 근데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프랑스 음악을 듣다보면 늘어진 샹송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핑크 마틴’은 촬영장 가서 처음 접한 뮤지션인데 너무 좋아서 듣고 있고요, 이탈리아 가서 들은 ‘스테레오뮤직’도 좋아해요. 그리고 또 제가 J팝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파리스 매치’ 많이 들어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정말 정말 좋아해요. 그 사람은 제 인생의 스승이라고 저는 말해요. 그 사람을 좋아한 뒤로는 제 라이프 스타일도 그 사람처럼 변했어요. 그 사람이 진토닉을 마신다 그러면 저도 진토닉을 마시고요, 파스타를 좋아한다 그러면 저도 파스타를 먹고요. 운이 좋아서 직접 만나게 된다면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제 처음 접했는지.
=<사랑해, 말순씨> 찍기 바로 전에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어요. 유명하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 건 다 읽어야겠다 결심했어요.

-어떤 점이 좋은가요.
=간결한 문체. 그리고 제가 1인칭 시점의 소설을 좋아해요. 에쿠니 가오리, 야마다 에이미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제가 배우이다 보니까 1인칭 시점이면 그 인물의 보여지는 감정 외에 생각, 깊은 내면이 따라 잡히는 게 좋더라고요.

-불어 공부는 무슨 계기로 하게 됐나요.
=제가 프랑스영화를 좋아하거든요. 근데 프랑스영화를 보다보면 파리가 좋아지고요, 파리가 좋아지면 불어를 배우고 싶어져요. 파리 갔다와서는 더 좋아져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배운 기간은 3년이지만 그 사이에 영화를 5편 찍었잖아요. 드문드문 공부해서 실력은 그만큼 안 되고 6~7개월 배운 정도? 내일은 프랑스 친구를 만나요. 한국에 오래 머물다가 이달 말에 프랑스로 돌아가는 친군데, 내일 새벽 5시에 KTX 타고 보길도 여행가기로 했어요. 뉴욕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방학이라 여기 와 있는데 그 친구 부모님이 보길도에서 우릴 기다리고 계세요. 이제 날이 밝으면, 떠나겠죠?

-배우가 상업적 흥행력을 가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좋죠. 대중과 호흡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좀더 많은 대중과 같이 호흡하는 배우가 된다는 건 정말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런 흥행력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내 선택을 믿고 날 이해해주고 내가 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봐주는 배우가 돼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배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좋은 시나리오를 고를 줄 알아야 하고, 좋은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하고요. 장만옥이나 이자벨 위페르처럼 정말 그들이 그 영화 속 인물처럼 보이는. 제 연기에서 윤진서가 느껴지면 그 배우는 작품 수가 늘어날수록 바닥이 보이게 되는 것 같아요. 작품이 늘어날수록 그 배우도 깊어 보여야죠. 그리고 아무래도 배우는 선택을 당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좋은 선택을 당해야 하고요.

-<두사람이다>에서 촬영 마지막 5일 동안 내내 우는 장면을 찍었다고 하던데, 너무 울어서 나흘째 되는 날은 눈물이 안 났다고요.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서 울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사흘 내내 울고 나니까 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가서 나중엔 눈물이 안 나는 거예요. 물을 2리터씩 마시면서 연기했는데 그래도 나중엔 눈물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렸어요. 어떤 기억인지는 제 사생활이라서 공개적으로 밝힐 순 없고요. 어쨌든 가인하고 비슷한 상황은 있었어요. 그걸 사춘기 내내 잊고 지냈는데 이 영화를 찍으면서 다시 떠올리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눈물이 주체가 안 됐어요.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도 몸이 계속 떨리고, 후유증이 심했어요. 너무 괴로웠던 것 같아요. 배우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면서 연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음 작품 때문에 장률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너는 그런 일을 한번 겪었을 뿐이지만, 네가 좋아하는 장만옥이라는 배우는 그런 지옥을 열두번은 갔다온 배우다. 그래도 네가 진짜 지옥에 들어갔다 온 것 같아서 나는 좋다, 앞으로 네 성장이 기대된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기억을 이젠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배우로서 내 재산이구나.

-장률 감독님과 하는 <이리>는 어떤 영화인가요.
=1979년에 이리(현 익산)에서 기차 폭발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때 우리 어머니가 저를 임신한 채로 그 열차 안에 계셨거든요.

-1983년생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리> 속의 제가요. 그 뒤로 삶이 흑백으로 변해요. 제가 오빠가 하나 있는데, 오빠랑 저는 장사를 하고 우리집 위층에는 중국어학원이 있어서 그 학원에서 들리는 중국어를 혼자 따라하고 그래요.

-윤종빈 감독의 <비스티 보이즈>에도 출연하는데 어떤 영화인가요.
=제가 안마시술소에 다니고요, 가끔씩 호스트바 가서 스트레스 풀고 노는데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돼요. 그런데 그 남자의 친구가 돈이 필요한데, 바로 그 돈 때문에 모든 게 얽혀요. 돈이 무섭죠. 돈이 싫어져요.

-첫 영화 <올드보이>의 짧은 출연 이후로 한동안 굉장히 많은 주목을 받았잖아요. 그 뒤 4년이 지났는데, 그때 사람들이 본인에게 가졌던 기대는 어떤 종류였던 것 같고 본인은 지난 4년간 그 기대에 얼마나 부응했다고 자평하나요.
=그때는 사람들이 제가 가졌던 것보다 더 넘치게 많이 좋게 평가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신비한 이미지를 저에게 원하셨던 것 같고, 저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진 거예요. 제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걸 저한테 기대하셨기 때문에 그만큼 채우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아요. 그 모습을 좋아해주시기도 했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을 거고, 저도 그게 뭔지 알 것 같거든요. 그래서 더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해왔던 것 같아요. (잠시 생각하다가) 지금이면 그 기대를 만족시켜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웃음) 그땐 제가 너무 어렸어요.

스타일리스트 김성일@COMA·의상협찬 케이수 By 김연주, 크리스 크리스티, 질 스튜어트·소품협찬 더슈, 엔틱가게, 이·카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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