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3편 모두 계약해야 했다면, 안 했을 것이다
맷 데이먼 인터뷰
지난 7월23일 이루어진 감독과 배우 라운드테이블 인터뷰에는 감독인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 줄리아 스타일스, 조앤 앨런이 참석했다. 인터뷰는 2시간 내내 그 수많은 죽음의 위협에서도 보란 듯이 살아남았던 제이슨 본과는 달리 상당히 초췌한 얼굴에 감기에 걸렸는지 코까지 훌쩍이는 맷 데이먼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니, 천하무적 제이슨 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본의 딸이 어젯밤 내내 잠들지 않았다. (웃음) 안 그래도 촬영 중 감독이 그러더라. 몰골이 그게 뭐냐고. 우리 딸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자서 그렇다고 했더니, 캐릭터에 딱 맞아떨어져서 좋다고 하더라.
-본이 이때까지 맡은 임무 중에서 가장 힘든 모양이다.
=맞다. 아이 기저귀 갈아주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아버지가 되니 정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이전에는 뭐랄까 모든 것이 단순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일이 끝나면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다음날 준비하고,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딸을 보러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 몸이 망가진 감이 없잖아 있었는데, 촬영 막바지에 이르자 폴이 내 배 근육을 마구 찍어대더라. (웃음)
-아버지로서 해야 하는 일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두 다. 정확히 딱 꼬집어서 설명하기는 힘들다. 뭐랄까, 기타코드 같은 것이라고 할까? 기타코드처럼 내가 정확하게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일들의 연속이니까.
-요즘은 블록버스터 속편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영화 출연을 결정하는 기준이 달라진 것인가.
=지금 나보고 창녀가 다 되었다고 말하는 건가? (웃음) 그냥 흐름에 따라 가다보니 속편에 계속 참여하게 된 것이다. 생각해보라. <오션스 일레븐>은 리메이크다. 리메이크 속편이 이렇게 계속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본 시리즈도 만약 처음부터 3편 모두를 계약해야 했다면, 분명히 안 했을 것이다. <본 아이덴티티>를 만들 때에는 <본 슈프리머시>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본 얼티메이텀> 역시 전혀 예상한 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나.
=순전히 감독 때문이었다. 사실 시나리오도 안 본 상태에서 폴이 다시 감독을 한다기에 계약했다.
-본인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제이슨 본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떨 것 같은가.
=사실 좋지 않을까?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니, 갖가지 외국어를 술술 하고, 싸움 잘하지, 머리 좋지, 여자들이 줄줄 따르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뭐, 죄의식을 늘 지닌 채 살아가야 하지만, 그쯤이야. (웃음)
본은 도덕성 앞에서 고민하는 현대적 인간
감독 폴 그린그래스 인터뷰
맷 데이먼의 인터뷰가 끝나고 자리에 들어선 사람은 감독 폴 그린그래스. <플라이트 93>으로 다시 한번 자신의 연출력을 증명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목요일 밤 9시에 완성된 최종본 때문에 올해부터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고 한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감독의 윗입술은 심하게 부르터 있었다.
-이 영화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내게 모든 영화는 하나의 여정이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여정을 떠나듯, 영화를 만드는 것도 내게는 하나의 여정이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이 막상 영화를 만들면서 그 속에서 약간씩 변해가기도 하고 새로 무엇인가를 발견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가 여정이라면, 그 시작점은 어디인가.
=이번 작품의 경우 무엇이 제이슨 본의 새로운 장(chapter)이 될 것인가란 생각이 시작이었다.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그의 정체성을 찾아나선 이야기이다. 그런데, 정체성은 단순히 그의 이름만을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도덕적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그는 살인자인가? 아니면 살인을 하도록 의도된 존재인가? <본 얼티메이텀>은 제이슨 본의 도덕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바로 이런 질문이 본 시리즈를 단순한 액션첩보물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제이슨 본은 그 수많은 위험 속에서도 결국 멀쩡하게 살아남는다. 비현실적이지 않나.
=육체적으로 다치지 않았을 뿐이지 그는 끊임없이 내면적으로 갈등하고 도덕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그에게는 제임스 본드 같은 스타일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도덕성 앞에서 고민하는 현대적 인간이다. 그가 뛰어다니는 공간은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고 그의 고뇌는 우리 모두가 겪는 현대적인 고민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이라는 점에서 흥분된다
조앤 앨런 인터뷰
마지막으로 인터뷰에 임한 조앤 앨런은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십대 딸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인터뷰 내내 드러낸 천생 엄마인 여배우였다. 하얀색 원피스에 ‘Blessed’라고 새겨진 목걸이를 한 그녀의 조용하지만 깊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감독과 배우의 관계는 정말 특별하다. 감독이 배우에게 신뢰를 보여준다면 그것만큼 힘이 되는 것은 없다. 폴은 배우로서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감독이다. 그는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사랑을 배우들에게 보여준다.
-<본 슈프리머시>에 이어 파멜라를 다시 맡게 되었는데, 전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글쎄, 이번 작품은 전편 대부분의 스탭이 참여해서 모든 것이 편안했다. 같은 촬영감독에 같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에 모든 것이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전편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첩보기관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는 베테랑 요원과 은퇴한 요원 두 사람과 인터뷰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이다. 같은 조직에 몸담았으면서도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베테랑 요원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묘한 갈등을 순간순간 겪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회색 세계를 살아 가고 있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선하고자 매 순간 애쓴다고나 할까. 그러나 결코 100% 만족스러울 수는 없어서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는 사람. 반면에, 은퇴한 요원은 모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열정이 넘치고, 애국심이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두 사람을 통해 파멜라의 시각이 좀더 구체화되었다.
-이번 작품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질 것이라는 점에서 무척 흥분된다. 이전까지는 뭐랄까 스테레오 타입을 많이 연기했다. 그 역할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스 스톰> <닉슨> <플레전트 빌> 등등 내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다만, 언제나 조용하지만 강한, 그러나 지친 아내 역에 한정되었다. 그러고보니 이번 역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도덕성을 지키려는 존재, 파멜라 역시 타협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