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좌담을 시작하기 전에 참석자들의 ‘성분’을 살펴본다.
김봉석 | 영화평론가·전 <ME> 편집장. 기본적으로 괴수물의 열렬한 팬이다. 그런 점에서 <디 워>의 제작을 반겼다. <우뢰매>를 포함, 이제는 명맥이 끊겼다 할 수 있는 심형래 감독의 코미디영화를 오늘에 되살려 다시 보고 싶어한다.
김종철 | 익스트림무비(extmovie.com) 편집장. 심형래 감독의 오랜 팬. 연출, 출연작 가리지 않고 그의 모든 영화를 본 것 같다. <용가리> 개봉 당시 심형래 감독과 7시간 이상 긴 인터뷰를 진행한 경험도 있고, 참고를 권하며 그에게 <평성가메라> DVD를 건네기도 했다.
달시 파켓 | <버라이어티> 한국 통신원. 1997년 한국에 왔기에 코미디언으로서의 심형래를 전혀 알지 못한다. 제일 처음 본 심형래 감독의 영화가 <용가리>고 <디 워>는 그 두 번째다. 그리하여 그의 옛 영화들을 볼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이야기 vs 이무기
아마도 <디 워>에 관한 가장 흔한 평가는 ‘특수효과는 화려한데 이야기는 허술하다’는 지적일 것이다. 한국영화로서 가장 진일보한 CG 기술을 보여준다는 사실과 한국의 전설이 현재 LA를 무대로 펼쳐진다고 하는 다소 황당한 설정 사이에서, 현재 인터넷상에서는 이른바 ‘심빠’와 비(非)심빠 사이에서 영화 속 LA만큼이나 거대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달시 파켓 | 개인적으로 큰 기대는 없이 봤다. 다만 예고편을 통해 시각효과에 대한 이미지는 먼저 본 상태였기에 나름대로는 다른 생각 안 하고 즐겁게 보고 싶었다. 그런데 솔직히 즐기면서 봤다고 말하기 힘들다. 캐릭터의 변화나 깊이가 없었고 미국 배우들의 대사도 굉장히 어색했다. (웃음) 연기자들이 열심히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마 그런 대사를 가지고 연기를 잘하기도 힘들었을 것 같다.
김종철 | <디 워>를 블록버스터가 아닌 거대 괴수물 영화로 봤다. 이야기가 단순하고 구성이 없는 건 사실 이전의 심형래 감독이 만든 영화들도 거의 그랬다. 내가 괴수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괴수 그 자체다. 레이 해리하우젠의 영화를 봐도 드라마와 괴수의 완벽한 조화는 없다. 대신에 괴수가 주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그래서 <디 워>를 통해 이무기에 대한 이야기나 평가가 많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대부분 배우들의 연기나 스토리의 허술함에 대한 지적만 있어 아쉬웠다. 일본의 <고지라>나 <가메라> 시리즈를 얘기할 때도 몬스터에 대한 얘기가 많지, 이야기에 대한 지적은 별로 없다. <디 워> 역시도 이무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봉석 | <디 워>를 어디에 놓고 봐야 하는지 고민할 때 나 역시 <디 워>를 그냥 괴수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심형래 감독과 영화사쪽에서 <디 워>를 계속 할리우드와 경쟁하는 블록버스터로 포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간극 때문에 지금 인터넷이 난리인 것 같다. (웃음) <디 워>를 B급 괴수물 속에 놓고 봤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가령 괴수가 LA 시가지를 때려부수는 모습을 언제 보겠나. (웃음) 괴수물 팬들이 고지라가 도쿄 청사를 부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와 경쟁할 만한 블록버스터라고 한다는 건 분명 다른 문제다.
달시 파켓 | 이무기가 움직이는 장면은 놀라웠다. 진짜 뱀의 움직임을 구현해낸 것 같다. 나도 그런 건 별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디 워>와 <트랜스포머>를 비교할 때 난감해진다. <디 워>는 예고편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를 다 봤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트랜스포머>가 <디 워>보다 일단 훨씬 비싼 영화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봉석 | 나 역시 인터넷상에서 수많은 이른바 ‘심빠’들이 <디 워>의 스토리가 <트랜스포머>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할 때, 권선징악이라는 사실 말고는 뭐가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문제는 그런 주제를 어떻게 풀고, 캐릭터를 구축하면서 어떤 고민을 했느냐다. 내가 볼 때 미국 개봉을 염두에 두고 있는 영화가,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어느 날 환생하고 그 남자가 느닷없이 한 여자에게 너의 호위무사라고 하면서 별다른 승강이없이 도망다니는 이야기라면, 관객이 쉽게 몰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령 <고지라> 시리즈에서는 중심인물들의 캐릭터가 잘 살아 있고, 관객이 충분히 그 안에서 괴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 워>는 그 점이 부족하다. 괴수물 팬으로서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지만 <디 워>가 과연 대규모 개봉에, 엄청난 흥행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로 기대하는 관객에게 어떻게 어필할지는 고민이다. CG 역시 분명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여주긴 했지만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와 ‘경쟁’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결국 <디 워>는 심각한 포지셔닝의 문제를 안고 있다. 북미시장에서 스크린을 2천개 가까이 확보했다고 하는데 계속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김종철 | <디 워> 이야기에 빈틈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이 극장에서 영화보다가 화장실 갔다 와도 충분히 쫓아갈 수 있는 수준은 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무기가 펼치는 액션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일본에서도 300억원이나 들인 괴수영화는 없다. 내가 본 극점의 괴수물은 <고지라> 원년판이나 <고지라 모스라 킹기도라 대괴수총공격> <평성가메라> 3부작 정도다. 무엇보다 <디 워>의 CG는 <평성가메라>를 압도한다. 아무래도 8년 정도의 시간차가 있고, 제작비도 훨씬 많다는 이점도 있지만 심형래 감독이 거대 괴수물에 대한 기존의 노하우없이 이 정도로 만드는 건 대단한 일이다. 물론 돈으로 일궈낸 결과라 말할 수도 있지만 <영구와 공룡쭈쭈> <드래곤 투카> <영구와 우주괴물 불괴리> <용가리>로부터 이어지는 기술적 발전이 눈에 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괴수영화들과 비교해도 중간은 갈 것이다.
<괴물> vs <디 워>
‘괴물’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디 워>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비교되기도 한다. 물론 그 크기도 습성도 활동무대도 다르지만 한국영화가 잉태한 두개의 서로 다른 괴물이라는 점에서 그 비교는 흥미롭다. 더구나 북미시장 개봉과 더불어 괴수물의 본고장인 일본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어쨌건 공통점이 있다.
김종철 | <괴물>과 <디 워>를 비교하는 얘기도 많은데 일단 <괴물>은 괴수영화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거대 괴수물 팬들은 <괴물>이 잘 만든 영화라고 하더라도 괴수영화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괴수영화는 괴수가 중심이지 인간이 중심이 아니다. 나는 <괴물>을 보고 예전부터 그런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에 신선하게 생각했던 편이다. 아무래도 <괴물>과 <디 워>의 가장 큰 차이는 연출력일 것이다. <괴물>이나 <디 워> 모두 괴수가 뜬금없이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등장에 따른 연출은 너무 다르다. <괴물>은 첫 등장부터 호기심으로 압도당하는 반면 <디 워>는 그런 게 없다.
달시 파켓 | 나 역시 <괴물>을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봤다. 또 그만큼의 평가도 받았다고 생각하고. 내가 볼 때 <괴물>과 <디 워>는 미국시장에서의 타깃이 다르다. 같은 괴수영화라고 해도 <괴물>은 A급시장, <디 워>는 B급시장이 타깃이다. 미국에서 대규모로 개봉한다는 <디 워>의 흥행 결과가 궁금한 것은, 미국에서 개봉하는 B급시장 타깃의 외국영화가 이렇게 대규모로 개봉하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봉석 | <괴물>은 일본 괴수물 팬들도 재미없다고 했다. 나 역시 괴수물 팬의 입장에서 보자면 괴물이 나오는 분량도 적고 괴물의 크기도 너무 작았다. (웃음) 그리고 괴수물 본연의 재미 외에도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텍스트였다. <괴물>은 괴수를 통해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디 워>는 괴물과 인간이 싸우는 이야기다. 둘은 아예 목표와 시작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하기 힘들 것 같다.
김종철 | <괴물>이 잘 만든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괴수물 팬들에게는 실망을 줬다. 팬들은 괴수가 나와서 마구 부숴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괴물>보다는 <디 워>를 더 좋아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괴물>이 개봉할 때 괴수물의 본고장에 와서 괴수물 팬들을 타깃으로 마케팅을 펼친 것을 건방지다고 봤다. 감히 누가 <괴물>을 괴수물이라고 불렀나, 하는 식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디 워>가 미국보다 일본에서 더 환영받을지도 모른다.
김봉석 | 괴수물 팬의 입장에서는 <괴물>이든 <디 워>든 일단 이런 영화들을 만들어주는 것 자체가 고맙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예산이 들어가서 그 제작기간이 길어서, <용가리>와 <디 워> 같은 주기로 만들어진다면 좀 곤란하지 싶다. 더구나 나 역시도 <디 워>에서 이무기의 첫 등장장면이 많이 아쉬웠다.
김종철 | 괴수의 첫 등장은 신비스럽게 포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 만든 괴수영화들은 일단 등장이 멋있다. 레이 해리하우젠이 만든 영화들을 보면 괴수가 등장할 때 감동이 있지 않나. 그런데 <용가리>는 물론이고 <디 워>에도 그런 게 없다. <평성가메라> 3편 같은 영화는 당시 일본 기술력을 집대성한 작품인데, 비가 내리는 와중에 괴수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때 갑자기 무지개가 펼쳐지면서 캐릭터로 관객을 압도한다. 그런 연출은 돈들인 블록버스터들과 비교해도 앞선다는 느낌이다. 잘 만든 괴수영화들은 캐릭터에 개성이 있어서 가메라나 고지라, 모스라 등 저마다 팬들이 있는데 <디 워>의 이무기에는 그런 요소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평성가메라> 시리즈도 시간이 지나면서 높은 퀄리티를 가지게 된 경우인데, 심형래의 이무기 역시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제작기간이 너무 길어서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김봉석 | 심형래 감독의 연출력을 놓고 보자면 <용가리> 이전의 영화들에서 보인 연출은 대부분이 퍼포먼스였다. 개그맨 후배들을 데리고 와서 개인기를 하게 하고, 그것을 편집해서 재밌게 만드는 거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연출방식이었다. 또 관객은 거기서 즐거움을 느꼈다. 하지만 심형래가 직접 출연하지 않은 <용가리>나 <디 워>는 다르다. 특수효과의 비중이 크다보니 그런 식의 연출이나 편집으로는 끌고 갈 수 없는 영화인 거다. 정통적인 연출력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이전 심형래식의 연출이 주는 재미가 있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디 워>가 괴물을 다루는 방식이 아쉬웠고, 그런 점에서 <괴물>과 비교해볼 수 있었다.
한국적 vs 세계화
<디 워>에는 한국적인 것을 드러내려는 고집과 세계화하고 싶다는 야망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용가리>에서 ‘용가리’를 그대로 발음했던 것처럼 <디 워>의 외국 배우들 역시 이무기와 여의주를 있는 그대로 발음한다. 또한 라스트를 장식하는 음악은 우리 귀에 익숙한 <아리랑>이다. 심형래의 이러한 한국적 전략은 세계화라는 그의 원대한 꿈과 어떻게 맞물릴 수 있을까.
달시 파켓 | <디 워>가 처음부터 미국 영화사와 합작하는 방법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소중한 경험도 쌓이고 진짜 북미시장 공략을 생각한다면 그 학습효과도 컸을 것이다. 물론 그러면 지금처럼 심형래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살릴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대신 지금처럼 긴 제작기간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영화사나 한국 언론들이 지나치게 대규모 개봉에 따른 미국 개봉시의 극장 개봉 수익에만 집중하고 있다. 내가 볼 때 <디 워> 같은 장르의 영화들은 극장 개봉보다 DVD 수익이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러한 ‘올인’은 약간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이 있다. 미국에서는 <디 워>가 9월에 개봉한다고 하는데, 여름과 비교해 훨씬 조용한 시즌이라 그때는 흥행 넘버원을 차지하는 영화라도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김봉석 | 중요한 지적이다. <용가리>도 당시 미국에서 극장 개봉은 못했고 비디오로 출시됐는데, 극장 미개봉작 중에서는 1위를 했었다. 그만큼 공포, 액션, 에로처럼 전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확실한 관객층이 존재하는 장르다. 지금껏 북미시장에서 흥행했던 타 국가 장르 영화들을 보면, <제5원소> 같은 건 아예 브루스 윌리스 같은 톱스타를 캐스팅해 미국영화처럼 만들어 박스오피스 1위를 했고, <철마류>나 <홍번구> 같은 홍콩 액션영화들은 70년대부터 미국 내에 고정된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흥행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거기에 비하면 미국에서 괴수물은 여전히 마이너 장르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할리우드도 한때는 자기네들의 자본과 인력으로 <고질라> 같은 영화를 만들었지만 특별히 재미를 보지 못한 경험도 있다. 괴물이 등장해서 멋진 CG로 도시를 파괴한다고 해도 북미시장에서 괴수물이 주류장르가 되기는 힘들다. 분명 심형래 감독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있을 것 같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지나치게 극장 개봉에 올인하는 블록버스터로 포장하는 게 염려스러운 거다.
김종철 | 그런 점에서 괴수의 브랜드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평성가메라>나 <고지라>는 지속적으로 더 많은 팬층을 흡수하지 않았나. <고지라> 2편은 일본 내에서만 1천만명이 본 영화다. <고지라> 파이널 시리즈에는 미국판 고지라를 등장시켰는데, 일본 고지라가 아예 그 고지라를 제압하고는 미국판 <고질라>를 비꼬듯 “참치 같은 거나 먹으니까 힘을 못 쓰지” 그런 얘기까지 한다. (웃음) 그만큼 오랜 팬들을 거느리고 있고,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경험이 축적돼 있다는 거다. 심형래 감독도 자신을 제임스 카메론이나 피터 잭슨과 동급으로 두려하지 말고, 지금보다 좀더 적은 예산이라도 자주 만들면서 자신의 괴물들을 브랜드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더구나 이런 영화는 캐릭터 상품도 중요한데, 그 분야로도 수요를 창출하려면 일단 그 괴물들에 대한 애정을 갖게끔 해야 할 것이다. 폭넓은 대중적 흥행도 중요하지만 장르 팬들의 인지도도 단단하게 쌓아올렸으면 한다.
김봉석 | 심형래는 한국 영화계에서 굉장히 가치있고 중요한 감독이다. 누구도 걷지 않는 길을 걸은 사람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비즈니스를 잘했으면 좋겠다. <디 워>를 한편 만드는 제작비로 <우뢰매> 같은 영화를 7편 만들었으면 좋겠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50억원 예산으로도 그가 의도하는 영화를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블록버스터와 일대일로 경쟁하겠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 한국 축구가 한번 월드컵 4강에 들었다고 세계 일류인 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전에 자주 만들었던 심형래 주연의 가족영화나 아동영화도 다시 보고 싶다.
달시 파켓 | 올해 칸영화제 마켓에서 <디 워> 예고편을 본 미국 스튜디오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한국에서 이런 정도의 장면을 만들 줄 몰랐다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에서 촬영은 했으되 합작을 하지 않은 영화라 더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비슷한 프로젝트를 합작으로 진행한다면 더 나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무기나 여의주를 한국 발음 그대로 영화에 쓴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배우 스스로가 그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으니까 배우마다 그 발음이 다 달랐고, 나 역시 그랬지만 미국 관객 입장에서도 이해가 힘들 수 있다.
김봉석 | 한때는 그런 전략들을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하지만 <디 워>를 보면 여의주나 이무기라는 한국 전설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악당 무리들은 <반지의 제왕>의 복장을 입고 있다. <반지의 제왕>처럼 그 엄청난 군대가 옛 한국으로 몰려오는 장면에서 과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굉장히 난감했다. (웃음)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식으로 밀어붙이든지 아니면 아예 판타지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달시 파켓 | 심형래 감독이 북미시장 공략이라는 꿈을 갖고 있다면, 이무기가 US뱅크타워를 휘감고 있는 장면은 흥미로운 시도였다. 9·11 테러 이후 그런 거대한 건물을 두고 액션을 벌이는 것이 최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중요한 트렌드인 것 같다. 그리고 흑인 카메라 기자 역시 코믹 캐릭터로 볼 때 <용가리>와 다른 시도였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점들을 흥미롭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디 워>를 전체 관람가라고 볼 때 흑인 캐릭터는 약간은 성인 관객에 어울릴 만한 캐릭터였고,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던 후반부로 인해 과연 어떤 반응을 얻을지도 미지수다.
심형래 vs 심형래
한국 영화계에서 독립된 섬처럼 보이지만 심형래 감독이 가진 가치를 폄하하긴 힘들 것 같다. 특수효과와 특수분장, 전문 무술팀의 기용이라는 측면에서 영구아트의 영화는 한국영화의 숨겨진 1인치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더불어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묵묵히 걸어온 개척자이기 때문도 할 것이다. 심형래 감독을 향한 애정과 부정 모두 어쩌면 하나의 뿌리에서 자랐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국내 개봉시에만 덧붙여질 것이라는, 영화의 마지막 심형래 감독의 영상편지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바야흐로 그는 현재 한국 영화계의 가장 거대한 문제적 감독이다.
김봉석 | <디 워> 마지막에 나오는 심형래 감독 개인의 영상편지는 미국 개봉은 물론, 국내 개봉 때도 안 넣었으면 좋겠다. 게다가 마지막에 할리우드 사인을 배경으로 찍은 개인 사진은 이미 많이 보여진 오래된 사진이다. 최근에 찍은 사진도 아니고. (웃음)
김종철 | 나 역시 심형래 감독의 오랜 골수팬이지만 그건 정말 아니었다. 장르영화의 마지막에 갑자기 다큐멘터리가 나오는 모습은 정말….
달시 파켓 | 나는 그걸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 (일동 웃음) 영화 본편이 좋았어도 그 마지막 때문에 영화가 싫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김봉석 | 최근 심형래 감독을 둘러싼 논란이 많다. 허위 학력 얘기도 있는데 어쨌건 그건 <디 워> 자체와는 무관하다고 본다. 자신의 능력으로 작품을 가지고 얘기하는 거지 그 논란 자체로 <디 워>의 공과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 영상편지는 심했다. 그런 얘기는 언론과의 인터뷰나 방송을 통해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김종철 | 지금 한국 영화계에 원로영화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배우나 감독으로서 심형래 감독만큼 많은 작품을 한 사람도 없다. 대부분 학생들 방학 기간에 맞춰 급조된 영화라고는 해도 100여편의 영화에서 주연과 감독을 맡았고, 물론 어린이들이나 마니아가 주로 느끼는 것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재밌는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영구와 땡칠이>가 45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거나, <티라노의 발톱>이 당시 한국영화 최고 제작비를 경신했다는 사실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특수효과나 특수분장, 액션 면에서 그의 영화들은 꽤 앞서나간 영화였다. 적어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욕먹으면서도 쭉 갔던 것에 대해서는 인정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껏 국내에서는 ‘코미디언 출신 감독’이 주류로 가기에는 두꺼운 벽이 됐던 것 같다. <디 워> 논란과 별개로 심형래와 영구아트가 한국영화에 끼친 영향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영화의 특수효과나 분장, 무술감독들은 모두 영구아트에 어느 정도 빚이 있다고 본다. 영구아트의 기술력과 지금 주류의 한국영화가 소통할 수 있다면 그 결과물은 엄청날 것이다.
달시 파켓 | 나 역시 심형래 감독의 이전 영화들을 보고 싶고 만나 보고 싶기도 하지만 외따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 마지막 영상편지를 본 느낌도 그랬다. 최근 심형래 감독이 방송 외에 언론과의 인터뷰를 일체 고사하고 있다는데, 그런 마지막 영상편지 같은 게 더 자신을 고립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김봉석 | 심형래 감독이 꾸준한 노력을 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개인적으로는 특수효과나 무술뿐만 아니라 코미디 장르에서도 인정을 해줘야 한다. 그의 영화들은 당대 다른 어떤 코미디영화보다 더 웃겼다. 현재 한국영화는 주류와 아트영화, 그리고 독립영화로만 구분돼 있고 마이너 장르층은 딱히 없다. 언론에서도 뭔가 있어 보이는 것만 다루려고 하고. 심형래 역시 <용가리>부터 완전히 다른 감독이 된 것 같은데, 거기에는 그렇게 인정을 못 받은 것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을 것 같다. <디 워>를 보면서 안타까웠던 건 블록버스터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다. 시도는 반갑지만 걱정스러웠다. 심형래 감독의 가치는 과거부터 했던 걸, 계속 새로운 양분으로 삼아 꾸준히 이어갈 때 빛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