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당신의 영혼과 사랑을 위한 파스타
2007-08-14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캐서린 제타 존스 주연, 스콧 힉스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사랑의 레시피> 뉴욕 시사기

성격 깐깐하고 완벽주의자인 일급 뉴욕 레스토랑 여성 요리사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가 오페라를 부르며 주방 스탭과 농담 따먹기하는 신임 부요리사 닉(아론 에크하트)을 적대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 분야에서 결혼도, 사랑도 마다하고 오로지 요리에 목숨을 걸어온 케이트에게 “당신과 함께 일하며 배우고 싶어서” 들어왔다는 이 느물거리는 남자는 분명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장애물이다. 하지만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은 케이트의 조카 조이(애비게일 브레슬린)가 꽁꽁 닫혔던 마음을 열게 된 것은 이 속없어 보이던 닉이 장난처럼 넘겨준 그릇에 담긴 스파게티를 먹으면서부터다. 사고 뒤 식음을 전폐했던 조이가 다시 먹는 모습을 보면서, 닉에 대한 케이트의 경계는 차츰 사라져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고? 그렇다. 영화 <사랑의 레시피>는 지난 2001년 독일 작품 <벨라 마사> (또는 <모스틀리 마사>)를 리메이크한 것. 이 영화는 <뉴욕타임스>의 평처럼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라는 직인이 찍힌 작품이긴 하지만 케이트와 닉, 조이가 가까워지는 과정이 근래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에서는 보기 드물게 사실적이고, 강요되지 않은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돼 눈길을 끈다.

<샤인>(1996)으로 잘 알려진 스콧 힉스 감독은 원작의 배경이 되었던 독일을 세계 음식을 접할 수 있는 뉴욕 다운타운의 트렌디한 레스토랑으로 바꾸어놓았다. 원작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던 그는 원작의 팬이었던 케이트 역의 캐서린 제타 존스와 닉 역의 아론 에크하트 등과 함께 원작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실제로 호주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하는 힉스 감독은 이번 작품의 배경이 되는 뉴욕 레스토랑가를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프로덕션디자이너 바버라 링과 함께 인근 60여개의 레스토랑을 리서치한 뒤 실제 사용 가능한 레스토랑과 부엌을 제작했다. 이외에도 뉴욕 수산시장, 레스토랑, 케이트의 아파트가 위치한 다운타운도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일급 요리사를 연기하기 위해 제타 존스와 에크하트는 뉴욕에 있는 저명한 요리학원에 보내졌다고 한다. 과거 레스토랑 음식에 큰 신경을 쓴 적이 없었던 제타 존스는 직접 학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요리사들의 음식에 대한 정열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이들의 도움으로 “촬영 몇주 전에 화상을 입거나, 손가락이 잘리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잘 마칠 수 있었다고.

“유니폼 상의를 단정히 입은 요리사가 과연 하의는 무엇을 입을까 하는 토론을 많이 했다”는 에크하트는 자신만의 코믹 터치를 가미하기 위해 원색 무늬가 현란한 바지에 구멍이 뚫려 있는 크록스 신발을 신고 출연한다. <남성 주식회사> <스와핑> <흡연, 감사합니다!> 등 냉소적인 역할로 많이 알려졌던 에크하트는 “지금은 드라마보다 코미디를 더 하고 싶다”며 “매일 일하러 가는 것도 기대되고, 사람들을 웃긴다는 데 큰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배우라면 말을 탈 줄 알고, 총도 쏘고, 오페라도 부를 수 있는 게 당연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에크하트는 부엌에서 오페라를 부르며 요리하는 닉을 연기하기 위해 오페라도 배웠다고. “원래 오페라는 잘 몰랐는데, 스콧이 많이 도와줘서 배우면서 재미가 붙었다.”

케이트와 닉의 캐릭터를 연결해주는 다리는 지난해 <미스 리틀 선샤인>으로 알려진 애비게일 브레슬린의 캐릭터 조이다. 촬영장에서 10살 생일을 맞아 파티도 열었던 브레슬린은 극중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맛있어서 연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피자”라고 부끄러운 듯 말하는 브레슬린은 특히 우는 장면이 많았던 이번 영화에서 “엄마가 죽은 걸 상상하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늘 주변 사람들을 밀어내는 케이트, 그녀를 한 발짝 떨어져서 기다리는 닉. 이들 사이에 엄마를 잃은 뒤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가정을 필요로 하는 조이가 나타나면서, 이들의 인생은 조금씩 변해간다. 커리어만을 생각했던 케이트는 커리어와 함께 주변 사람들을 믿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요리에 대한 열정은 케이트 못지않지만, 야망이 없었던 닉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들이 변해가는 과정은 극중 등장하는 다양한 요리와 어우러져 때로는 섬세하고, 때로는 솔직하고 담백하게 표현된다.

케이트 역의 제타 존스는 극중 스턴트를 직접 했다. 앞치마에 불이 붙는 장면이 있었는데, 힉스 감독이 제타 존스가 직접 연기하길 원했던 것. 처음엔 “잠깐만, 뭐라고요?”라고 놀랐던 그녀도 결국 스턴트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녀 옆에 소화기를 들고 서 있는 스탭에게 “얼굴에 뿌리지만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기자회견 중 제타 존스가 직접 스턴트를 했다는 말에, 브레슬린은 “진짜로 몸에 불 붙였어요? 난 몰랐는데?”라며 놀라,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경우없는 고객 때문에 화가 난 케이트가 식탁보를 빼내는 장면 역시 제타 존스가 직접 했다고. 힉스 감독은 “캐서린을 위해 연습용 테이블을 항상 세트장 옆에 준비해뒀다”고 한다. 두 번째 테이크 만에 식탁보 장면을 성공했다는 제타 존스는 “덕분에 파티 때마다 식탁보를 빼내는 것이 내 장기자랑이 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27일 개봉된 <사랑의 레시피>는 평론가들에게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평론 종합 인터넷 사이트 로튼토마토스닷컴에서는 평균 43% 신선도라는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8월6일 현재 <사랑의 레시피>는 2415만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은 평론가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원작을 리메이크한 것에 대한 반감과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들이 가득한 여름 시즌에 개봉된 시기적인 문제도 큰 것으로 보인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