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그러니까 8년 전 이규만 감독은 시카고에서 실험영화를 공부하고 온 이현진 감독을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서 만났다. 4년 뒤, 둘은 함께 실험영화를 찍고 있었고, 몇편의 장편을 개발 중이었다. 산에 오르면서 이현진 감독이 전날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소름끼치는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했다. ‘수술 중 각성’ 피해자들의 증언이었다. 안구 적출 수술을 받던 누군가는 시신경이 까뒤집히고 절단되는 고통을 실시간으로 겪었다. 신경 마취가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으나 근육 마취로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현상이다. 메스의 칼끝이 몸을 헤집고 다니지만 수술이 끝날 때까지 멈추게 할 방법은 없었다. 수술 전 행하는 두 가지 마취 중 한 가지가 알 수 없는 실수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이현진 감독은 이 다큐를 끝까지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위급한 상황이 자신에게 닥쳤을 때 수술을 주저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섬뜩했기 때문이었다. 이규만 감독은 산을 내려오면서 두 가지 의문에 휩싸였다. 무서운 이야기, 그러나 실재하는 사건이 한국이라고 예외일까라는 점과 다큐에 등장하는 미국의 피해자 모임처럼 긍정적으로 자신의 상처를 내놓고 캠페인을 벌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리턴>의 시작이었다.
‘수술 중 각성‘을 다룬 다큐에서 착안
“67살 남자 환자는 수술 중 오랫동안 기계 소리를 들었다. 이때 환자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아서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했으나, 손발이 움직여지지 않았고 무기력했다… 전신 마취 중 각성 경험이 있는 26명의 환자들의 기억 내용을 분석해본 결과 청각 인지와 마비감 이외에도 통증 39%, 기관 내 삽관이나 수술 중 튜브가 입 안이나 목에 있는 것 같은 느낌 23%, 시각인지 27%, 통증없이 수술 부위 느낌 19%였다.”(1996년 <대한마취과학회지> 중에서)
‘수술 중 각성’은 마취과 의사의 실수로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 없이도 가능한, 마취의학의 맹점 같은 것이었다. 이규만 감독이 매혹을 느낀 대목은, 트라우마가 아주 크면 복수를 결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누구의 멱살을 잡을 수 있겠나, 하는 책임의 부재였다. 명백한 건 상처의 실존뿐이다. “그렇다고 운명의 멱살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잖나?” 자신의 운명을 상대로 복수할 수 없으니 피해가 피해를 물고 들어가는 운명의 악순환은 상상 가능했다. <리턴>의 10살 소년 나상우가 가슴을 절개하고 내장을 헤집는 수술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은 끝에 만나는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이렇게 탄생했다. 수술 중 겪은 고통과 후유증이 일종의 환상이라고 무시당하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엔 상우의 나이가 너무 어렸고, 그게 아니더라도 규명이 어려운 사안이었다.
소년의 억압된 상흔은 미래의 귀환을 예고한다. 공포물의 오래된 관습 같은 명제이지만 억압된 것을 귀환시키는 이 스릴러의 출발은 두 가지 점에서 새롭다. 픽션이되 공허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또 가해의 크기만큼 피해의 무게가 생겨나는 욕망의 허망한 게임도 아니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건 인간의 불완전성 그 자체다. 감독의 용어로 바꾸자면, 제6의 주인공 운명을 상상으로 엮는 개연성 너머에서 낚아올린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운명의 악순환을 빚다
소년 상우의 상처는 어렵게 봉인되고, 시간은 도약한다. 시간을 건너뛴 5명의 주인공이 차례로 등장해 자신의 캐릭터로 미스터리의 기운을 구축한다. 외과의 재우(김명민)와 아내 희진(김유미). 이들은 재우의 어떤 실수로 위협에 시달리는 중이다. 짐작건대 수술이 잘못돼 누군가가 죽었고, 피해자 가족이 재우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미국에서 돌연 귀국한 욱환(유준상)은 재우의 오랜 친구라고 자처한다. 한눈에 그의 극심한 불안이 잡힌다. 쫓기듯 귀국했고, 모종의 물건을 입수했다. 그의 직업도, 과거도 알 수 없으니 아내 희진은 불안하다. 상우의 귀환은 재우를 통해서인지 욱환인지 알 수 없다. 그 사이 상우에게 수술을 해주었던 병원의 과거 관계자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한다.
제4, 제5의 주인공은 재우처럼 의사다. 정신과의 치훈(김태우)은 조용하지만 불길하다. 최면치료에 능한 그의 입술 뒤로 이상한 음영이 엿보인다. 이런 치훈을 의심하고 공격하는 자는 마취전문의 석호(정유석)다. <하얀거탑>의 삼각꼴을 이루는 세명의 의사와 정체불명의 욱환이 모두 상우 용의자다.
<리턴>에는 많은 사람이 죽지만, 피가 튀는 살인은 없다시피하다. 연쇄살인 대부분은 간략한 기사 몽타주로 대체된다. 으스스한 공사장에서 상우로 짐작되는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르는 대목조차 그저 손끝으로 살짝 힘주어 미는 정도다. 피로 낭자한 건 참혹한 수술대 위다. 투명한 고글을 쓰고 디지털 수치로 계측되는 의료기기에 둘러싸여 메스를 움직이는 김명민의 자세는 <하얀거탑>의 딱 그것이다(이규만 감독은 수술 장면만큼은 작심하고 제대로 찍었다지만 선수를 놓쳤다. <하얀거탑>보다 약간 앞선 지난해 하반기에 촬영을 마쳤지만 노출은 드라마가 한참 빨랐다). ‘수술 중 각성’에서 출발한 영화니 수술은 <리턴>의 알파요 오메가다. 상우의 수술이 첫 번째라면, 두 번째는 재우가 제 손으로 벌일 수밖에 없는 아내 희진의 수술이고, 세 번째는 재우가 중도에 멈출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개복 수술이다. 수술이 미스터리의 상승 곡선에서 중요한 건 의사인 상우 용의자들이 뒤틀리며 얽혀들 수밖에 없는 사건 현장이기 때문이다.
수술, 사건 현장이자 미스터리의 공간
이규만 감독은 답부터 던져두고 풀이법을 찾는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외과의 재우의 수술에 최면 전문가 치훈이 함께 달라붙어야 한다, 가 주어진 답이자 문제였다. <나는 외과의사다>를 쓴 강구정 박사를 인터뷰하다 해법을 찾았다. 악성고열 환자의 사례다. 일종의 마취 부적응으로 수술 중에 체온이 급상승하는 경우로, 심하면 죽고 덜해야 장기 손상이다. 재우는 이런 악성고열 환자를 만나 수술을 중간에 포기한다. 특정 부위를 절개해버리면 살 수 있는 환자가 그냥 죽어나갈 판이다. 감독은 악성고열 사례를 놓고 최면을 통한 개복 수술이 가능한지 전문의와 상의했다. 가능하다는 지침을 얻고 풀이를 완성했다. 이 시퀀스는 재우의 캐릭터와 다른 두 의사, 즉 최면과 마취의 사이의 이상한 관계를 복선으로 제시한다.
아내 희진의 수술은 더욱 복잡미묘하다. 누군가의 해코지로 희진이 사경을 헤매게 되고 재우가 직접 메스를 들어야 한다, 가 주어진 답이자 문제였다. 캡슐 같은 것을 희진이 먹게 되고 원격 리모트 컨트롤로 장치를 가동시키고 희진은 끙끙 앓기 시작한다….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007 같고 유치하다.’ 병원을 배회하던 감독이 한 차트를 보다가 번쩍했다. 척추가 내려앉았을 때 튜브로 세우고 그 안을 채워 짧은 시간에 굳게 하는 골시멘트(PMMA)가 아이디어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신체로의 유입경로를 찾을 수 없는 희귀한 물질로 가능해 보였다. 자문을 구했더니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겠다고 했고, 감독은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만류했다. 재우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리턴> 최고의 극적인 사건이 마련됐다.
영화가 시작하면, 재우가 권총으로 자기 다리를 쏘고, 머리를 겨냥하는 장면이 나왔다 사라진다. 꿈일까, 현실일까. 위기로 치닫는 징검다리에 이 장면이 다시 나온다. 재우는 결국 자기 머리에 총을 쏘고 마는 걸까. 근래, 자기 학대의 최고봉은 <올드보이>에서 오대수가 자기 혀를 직접 잘라내는 장면이다. 오대수의 이 행위는 꼼짝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끔찍한 자기 처벌이었다. 이에 비해 재우의 자기 처벌은 오대수의 그것에 이르지 못한다. 현실의 재료, 그것도 의학 아이템으로 쌓아올렸지만, 상상으로 엮어간 오대수 이야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리턴>이 갖는 공력의 한계일 것이다.
네명의 상우 용의자가 캐릭터로 밀어붙이는 초반의 미스터리도 의욕적이지만 반전이 고개를 드는 후반의 힘이 아니었다면 장르의 관습화된 약점 혹은 치명적인 긴 도입부로 지목당할 뻔했다. 예컨대 김명민의 재우 캐릭터는 <하얀거탑>을 닮았으나 실상은 이선균이 했던 역에 가깝다. 너무 선해서 가짜 같다. 김태우가 스스로 17kg을 찌우고 성인영화 배우들과 벌인 고강도 섹스신이 편집에서 통째로 잘려나간 건 매우 아까운 노릇이다. 문제는 그의 캐릭터 구축에 모자람을 만들지만, 이를 극장에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유준상의 욱환 역시 마찬가지 경우다(석호 역의 정유석이 유난히 돋보이는 게 이런 상대적 결점 때문이라고 하면 이건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스릴러는, 아니 장르물은 이렇게 약간의 허점만 보여도 그대로 뚫려버릴 수 있는 고위험 투자상품이다.
영리하게도 <리턴>은 좋은 금융상품의 설계처럼 이 위험을 보전할 장치 역시 갖고 있다. 사소한 것들이다. 어린 상우가 트라우마를 제3자에게 쏘아대는 장면들이 있다. 그 해코지 대상 중에 병아리가 있다. 예컨대 병아리 장면은 그냥 무참한 병아리로 끝내도 됐지만 고양이가 엑스트라처럼 등장한다. 또 상우는 홀린 듯 살아 있는 벌과 죽은 벌을 모은다. 벌은 상우 손에 침을 놓고 죽어간다. 이 벌은 희진이 음모에 빠지는 장면에서 효과적으로 재활용된다. “남에게 치명적인 어떤 행위를 하고 자기는 죽는, 상우가 자신을 반영하는 소품”이라는 감독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런 사소한 장치들은 인상적이다. 사건과 인물에 대한 클로즈업만으로도 드라마는 가능하지만 그 바깥에 엑스트라를 배치하고 시선을 주는 여유가 인상을 심어준다.
벌이나 고양이처럼 의도된 사소함 중에 가장 큰 임무를 수행하는 건 상우의 봉인이 풀어지는 계기다. 술먹고 장난치며 놀다가 벌이는 게임이다. 봉인을 푸는 제의치고는 너무 미약한 게 아닐까. “영화의 출발처럼 하찮은 운명적 실수다. 있을 수 있는 어떤 실수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치명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푸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무겁게 풀면 균형감이 더욱 안 맞을 것 같았다.”
농담처럼 하나 더. 변소 살인은 재래식 변소에 대한 무언의 두려움을 단 한컷의 이미지에 효과적으로 담는다. 상황은 중요하고 필요해 보이지만 설정이 꼭 변소일 필요는 없다. 굳이 변소를 끌어들여 무서운 장면을 독특하게 만들어낸 감독의 기억이 재밌다. “초등학교 변소에 아는 사람이 빠졌다가 나온 적이 있다. 또 키우던 강아지가 거름을 주려고 만든 밭의 커다란 똥 수렁에 빠진 적이 있다. 뽀글뽀글 들어가기에 정신없이 ‘해피야’하고 울부짖는데 반대쪽으로 기어나오더라. 그리고는 반갑다고 쫓아오기에 시장을 가로질러 도망가는데 똥물을 사방에 털면서 달려오는 바람에 시장 사람들이….”
공력의 한계에 불구, 독특한 설정과 장치들 뛰어나
<리턴>은 부산 경성대 출신인 이규만 감독의 첫 장편이다. 그는 영상원 시험에 낙방한 적이 있다. 어떤 사진을 주고 시나리오를 쓰라고 했는데 아무리 노려봐도 떠오르는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시를 적고 나왔더랬다. <리턴>이 초고로 나온 2004년 1월의 제목은 <천개의 혀>였다. 리처드 3세 희곡 중의 대사에도 같은 말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원래는 어떤 심상을 다룬 자신의 글 중에서 따왔다. 돌아온 상우가 천개의 혀로 거짓말을 만들고 그것이 치명적인 운명을 만들어낸다는 뜻이었다. <천개의 혀>는 2004년 봄 부산영화제 NDIF 프로젝트에 공모했고, 한 투자사와 구두계약을 마치고 캐스팅도 대략 확정을 지어갔다. 최종 단계에서 투자사가 틀었다. 그 뒤 시나리오를 전격적으로 바꾸는 데 2년이 걸렸다. 한번 돌았던 시나리오가 잊혀지는 데 2년은 걸린다고 봤고, 그 사이 모니터링을 요청한 극소수 말고는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2006년 여름 ‘리턴’으로 이름을 바꿔 촬영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 재우 역의 배우가 전격적으로 손을 뗐다. 그 다음다음날, 2년 전 출연을 고사했던 김명민이 달라진 시나리오를 보고 재우 역을 선뜻 맡았다. 처음 <천개의 혀>를 쓸 때는 비관적 운명론자였으나, 지금은 낙관적 운명론자로 바뀌었다고 했다. 신의 손길이 미치고 영향주는 바를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여전하다지만. 그는 스릴러적 구성과 판타지적이고 누아르적 요소가 섞인, 한국에 없었던 복합장르를 다음 작품으로 구상해놓고 있다. 인식의 반전이 일어나는 영화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