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독특한 이력의 월북 군인의 삶 <푸른눈의 평양시민>
2007-08-22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월북 미군, 그 존재하지 않았던 자들의 연대기.

대니얼 고든의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들은 정치적 고려없이 연출되었지만, 교묘한 거리감각을 보여준다. 축구광 대니얼 고든은 1966년 영국월드컵 8강 신화를 보여주었던 북한 축구팀에 대한 애정어린 헌사인 <천리마 축구단>(2002)을 통해 서방인 최초로 북한에서 영화를 찍었고, 이어 북한의 매스게임을 소재로 한 <어떤 나라>(2004)를 연출했다. 월북 미군의 삶을 추적한 <푸른눈의 평양시민>(2006)은 대니얼 고든의 세 번째 북한 관련 작품이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영리하게 노린 바는 명확했다. 이념적, 정치적으로 무고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수많은 경계들을 허물 수 있다는 것. 미치도록 흐뭇한 영화인 <천리마 축구단>과 집단적, 이념적 색채가 강렬한 매스게임을 그 소재로 한 <어떤 나라>에 등장한 북한은 지구상에 최후로 남아 있는 전체주의의 낯선 이미지들을 지닌 외계(外界)이자 이질적인 타자성의 국가였다. 그러나 너무도 빈번한 그들의 정치색은 그것의 노출 빈도가 잦아질수록 놀랍게도 별 게 아니게 되고, 관객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체제가 아닌 인간에 집중하게 되는 신비한 전이를 경험하게 된다.

<푸른눈의 평양시민>에서는 다소 색채와 시각의 변화가 느껴진다. 전작들이 북한이 지닌 완강한 타자성을 스포츠와 스펙터클의 화려한 이미지를 통해 매력적인 명랑함으로 전도시킨 영화라면, <푸른눈의 평양시민>은 독특한 이력의 월북 군인의 삶에 좀더 진지하게 다가간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 재현된 무채색의 평양 시가지는 차갑고 견고해 보인다. 1960년대에 체계를 배반하고 공산주의 국가로 걸어들어간 네명의 주한미군들이 있었다. 남한과 미국 당국은 그들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그러나 북한에서 그들은 영웅 취급을 받았고, 인민배우가 되었고, 평양시민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쪽저쪽 어느 쪽에서도 그들 ‘자신’의 실제 삶은 없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경계들이 존재한다. 가난, 고독, 계층성, 로맨스와 그 파탄, 회의와 권태. 경계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모든 월경(越境)이 혁명적인 건 아니다. 원제(Crossing the Line)처럼 그들은 경계를 넘었지만, 이 월경에 확고한 이념이 매개된 건 아니었다. <푸른눈의 평양시민>은 <파리의 아메리카인>이 아니며, 모든 월경인의 삶이 고달픈 영웅적 낭만성 위에 있진 않다. 그들은 그저 사소한 삶의 경계 위에서 살아간 조선어를 말하는 평양시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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