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김지선)는 미국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 소녀다. 그녀는 이혼한 엄마와 단둘이 외롭고 단조로운 일상을 버티며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트란(강태구)과 어울린다. 서툰 영어와 낯선 환경 탓에 또래 문화 안으로 쉽게 들어서지 못하는 둘은 언저리에서 소극적으로 자신들의 시간을 지켜간다. 그 시간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우정은 점차 사랑으로 변해가는데, 이 둘은 그 사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타지에서 이제 막 시작된 불안정한 삶, 그 속에서 맞이한 정서적 요동, 이제 막 사랑에 눈떠 어찌할 바 모르는 서투른 슬픔이 두 청춘의 주변을 감싼다.
감독 자신의 십대 시절을 반영한 듯한 <방황의 날들>은 줄곧 하얗게 눈이 쌓인 푸르스름한 길 위에 존재한다. 에이미와 트란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카메라는 이들의 쓸쓸한 뒷모습과 막막한 앞모습에 갑갑할 정도로 밀착해서 함께 흔들리며 따라간다. 한인타운에서 감독이 직접 캐스팅한 비전문배우들은 마치 자신의 경험을 쏟아내듯 즉흥적이지만, 사실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백조들 속의 미운 오리새끼처럼, 주변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자신의 단단한 외피를 쉽사리 깨지 못하는 에이미의 흔들리는 눈빛은 가슴 아프다. 소년과 소녀 사이에는 최소한의 대화가 있을 뿐이지만, 둘의 손끝 하나, 표정의 떨림, 눈동자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관계의 밀도와 절박함이 묻어난다. 직설적인 대화들, 앞이 뻔히 내다보이는 혹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인물들의 행동과 말이 어색하고 유치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는 세상 끝에 내던져져 자신의 불행을 곱씹는 청춘의 전유물이 아닌가. 정서적으로 기댈 곳 없는 에이미는 다만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를 긴 터널의 시간을 홀로 견디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방황의 날들>의 숏은 비교적 빠르게 전환되고 감각적으로 배열되나, 그 안의 청춘들의 시간은 곪아가는 상처처럼 고인 물처럼 천천히 제자리를 맴도는 듯이 느껴진다. 이 소외의 시간을 언제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넘어서 스스로를 ‘성장’했다고 다독일 수 있을까. 에이미가 몽롱한 음성으로 가족을 떠난 아빠에게 그리움을 토해내는 내레이션을 할 때나 다른 여자와 어울리는 트란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 영화는 그 시절에만 가능한 알 수 없는 상실감으로 차오른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독립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