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영화읽기] 불륜영화? 아니, 노동영화!
2007-09-13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감정노동과 성희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내 생의 최악의 남자>

이 두 영화는 유사점이 많다. 첫째, 결혼한 남녀의 맞바람을 소재로 했으며, 둘째, 비밀을 아는 친구모임이 존재하고, 셋째, 심각한 노동문제를 매설하고 있다. 기실 ‘친구집단도 다 아는 맞바람’은 TV드라마에도 곧잘 나오는 소재로 특별히 잘 다루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언급할 만한 게 없다. 오히려 흥미로운 지점은 세 번째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서비스노동자의 감정노동을,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성희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도, 이에 대한 고찰은 담고 있지 못하다. 서비스산업이 전면화되고 비정규직화가 가속되면서, 착취는 장시간노동의 방식이 아니라 전인격적 차원으로 행해진다. 감정노동과 성희롱은 전인격적 착취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시급히 해결을 요하는 노동 현안이다.

지금 맨 정신으로 노동하고 있습니까?

‘패션 컨설턴트’인 그녀(<지금 사랑하는…>의 엄정화)는 옷을 파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파는 사람이다. 영준은 그녀가 양복을 팔러 온 줄 알고, 그녀는 “우리 업계 사람들 아니면, 발가벗고……” 운운했지만, 그녀는 의류업(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영준은 “고객이 원하면 같이 밥도 먹어줍니까?” 물었지만, 첫 만남도 그녀의 의도로 이루어진 것이다(오프닝 시퀀스의 대사 “나 거기 꼭 가야 되거든”). 그녀는 고객이 아무리 ‘밥맛’이라도 친한 척해야 하고,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친분을 쌓아야 한다. 부유한 고객들을 대하다보니 자괴감이 커진다. 그녀는 ‘샘플’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비가 오면 오히려 벗어야 하고, 자신과 남편의 몸에 밴 친절함이 싫어서 거만한 자를 선망한다. 영어를 섞어 쓰는 그녀의 어투는 일종의 자기 방어다. 주눅 들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남의 언어를 말함으로써, 이미 내가 아닌 남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마치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그녀는 자신이 그들과 같은 위치에 놓일 수 없으며, 이는 능력차가 아닌 분화된 계급(“부모 잘 만나서…”)에 기인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공적 공간인 사무실에서 무시당했을 땐 차 안에서 혼잣말로 분을 삭일 수 있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방어의 표식인 ‘영어’를 공격당하자 급기야 폭발해버린다. 영준과의 관계는 분열증 직전에서 이루어진 객기의 산물이다.

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는 노동자의 전인격적 노동에서 나온다. 회사는 그녀가 감정을 억누르고 미소지음으로써 이윤을 얻지만, 더이상 감정을 누를 수 없을 만큼 황폐해지면 불친절을 이유로 해고할 것이다. 그러나 영준은 감정노동을 해본 적이 없다. 고객을 응대할 필요도 없고, 집안에서든 사교모임에서든 무뚝뚝하게 내뱉으면 그만이다. 그는 사회화가 덜된 어린아이와 같다. “10살 때 옆집 누나”를 언급할 정도로. 그가 그녀의 ‘힘든 삶’을 눈치채고, 그녀는 그가 ‘혼자 밥먹는 외로운 사람’임을 알아주면서 로맨스가 형성되는 것 같지만, 둘의 로맨스에는 여전히 계급차가 존재한다. 마지막 두대의 차가 원을 그릴 때, 영준의 차는 여전히 기사가 운전 중이다(<귀여운 여인>의 리처드 기어는 고소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창문에 올랐지만, 영준은 운전하지 않는다). 둘의 로맨스가 이루어진다 해도, 그는 사람을 감동시킬 줄 모르므로, 감정노동은 그녀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내 생애 최악의 상사?

출판사에 다니는 그(<내 생애…>의 탁재훈)는 ‘엽기적인 그녀’ 10년 뒤 모습 같은 아내를 사랑해 결혼하지만, 사장의 노골적인 ‘들이댐’에 어쩔 줄 모른다. 사장은 “내 눈엔 명품” 운운했지만, 결코 사랑이 아니다. 직원들 앞에 거짓 고백을 시키고 해고할 만큼 악질적인 성희롱이다. 그런데 영화는 사장이 당하는 성희롱은 불쾌하게 잡으면서도 그녀가 하는 성희롱은 연애인 양 다룬다. <접속> <올드미스 다이어리_극장판> <연애의 목적> 등 남자상사의 성희롱을 다룬 영화는 많아도 여자상사의 성희롱을 다룬 영화는 <폭로>(Disclosure)가 유일한 탓에 헷갈릴 수 있지만, 성희롱의 본질은 남녀관계가 아니라 권력관계이며, 남녀를 불문하고 성희롱이 성립된다.

생각해보면 <지금 사랑하는…>의 엄정화와 <내 생애…>의 탁재훈은 끝까지 배우자를 사랑하며 먼저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악랄한 감정노동과 성희롱의 희생자들로, 인격은 물론 가정까지 침탈당한다.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가정파괴를 다룬 사회극이듯, 끔찍한 ‘비정규직 서비스노동의 시대’에 두 영화는 전인격적 노동착취에 의한 가정파괴를 다룬 노동영화로 기록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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