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토크]
[메신저토크]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넘쳐버린 아쉬움이 있어요”
2007-10-17
글 : 이동진 (영화평론가)
글 : 김혜리

스포일러 있음

죽음은 말이 없다(이동진 ifeisntcool@naver.com)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시체는 말이 많다(김혜리 vermeer@cine21.com)님이 입장하셨습니다.

김혜리 “<궁녀>는 연기 앙상블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혔는데 이야기의 핵심이 불분명해요.”
이동진 “이야기 전달력에서 커다란 약점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상력은 참 좋다고 봤어요.”

시체는 말이 많다님의 말(이하 많다): 부산국제영화제 이브군요. 다음주는 저희도 부산에서 메신저에 접속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죽음은 말이 없다님의 말(이하 없다): 혹시 두 컴맹이 객지에서 헤매다 결국 인터넷 카페에 마주 앉아서 하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되네요. --;

많다: 출장 관계로 오늘은 1주 뒤 개봉할 <궁녀>를 당겨서 이야기하고 <브레이브 원> <비커밍 제인> 그리고 이미 개봉한 <행복>도 덧붙이기로 하겠습니다. 강한 여자 특집이군요. 어제 언론 시사를 가진 <궁녀>는 트렌드에 예민한 안테나를 가진 하이브리드영화예요. 법의학 드라마,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주체로 삼은 시대극 등 영화 바깥 장르에서 이미 주목받은 유행을 종합적으로 반영했습니다.

없다: 저는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가 높았어요. 뭔가 대단히 재미있고 신선할 것 같잖아요. 개봉 전에 그런 기대를 갖게 하는 대중영화를 만나는 것도 오랜만인 듯. 여자들만 나오는 여자영화인데 장르적으로는 스릴러라는 점에서도 신선했고요. 이런 영화는 성공하면 충무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아이템이죠.

많다: 사극호러인 점은 <전설의 고향>과 마찬가지지만 <궁녀>는 보고나니 귀신이 등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더군요. 궁녀들의 생활사와 시대적 부조리가 그들에게 부과하는 공포스런 삶의 조건이 소재니까요.

없다: 저도 정확히 그런 생각을 했어요. <궁녀>에선 스릴러가 호러로 넘어가는 부분이 있는데 저는 그냥 스릴러로만 밀고 갔으면 훨씬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을 거라고 봐요. 이미 이야기, 소재, 세팅 자체가 호러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드라마틱하고 할 이야기도, 보여줄 것도 많은 상황이니까요.

많다: 물론 스릴러와 호러의 융합은 보편적이긴 하죠. 다만 <궁녀>는 주인공 내의녀 천령(박진희)이 사건 초반 등장해 합리주의와 ‘과학수사’를 강하게 주장하잖아요? 그러다가는 후반에 대뜸 귀신이 나오니 이게 웬말이냐 하는 느낌은 있었어요. -_-#

없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보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척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의 단계들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면서 관객으로선 대체 이 영화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당황한다는 거죠.

많다: 곰곰이 살펴보면 결정적으로 큰 논리적 구멍은 없어요. 그러나 “저건 좀…” 싶게 개연성이 약하거나 모호한 세부가 자주 눈에 띄다보니,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리듬과 흥이 깨진달까. 예컨대 다들 알고 있었을 법한 사실이 결정적 비밀로 설정돼 있다거나, 우연을 중첩시켜 인물과 스토리가 억지로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거나.

없다: 인물이나 스토리가 너무 많이 담겨 있어서 서로를 밀어냄으로써 오히려 영화 자체의 힘이나 응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봤어요. 스토리의 필요에 따라서 인물을 도구로 쓴다는 느낌이지, 인물이 생생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해요. 불필요하게 잔혹한 묘사들에 대해서도 아쉬운 점이 있고요. 대비의 조카(김남진)가 월령의 죽음 미스터리와 얽히는 방식도 무리로 보였어요. 첫 장면에서 묘사되는 천령의 과거 트라우마가 현재 사건의 화자 노릇을 하는 천령의 현재와 얽히는 방식도 구조적으로는 납득이 가지만 영화적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져요. 그래서 대단원에서 그녀가 취하는 태도가 생뚱맞게 보이는 부분이 있죠. 닫히는 궁궐 문이 상징하듯, 영화가 하고자 하는 최후의 말에 천령의 행동을 끼워맞춘 느낌도 있고요.

많다: 아이를 출산한 몸으로 죽은 월령의 살해범을 밝히려는 천령의 집착은 그녀의 과거와 연결되어 “마치 제가 죽어 누워 있는 것만 같습니다” 같은 좋은 대사로 설명되죠. 박진희씨의 연기는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치고 상당히 씩씩합니다. 꼭 타임머신을 타고 18세기에 착륙한 현대의 탐정 같죠. ^^ 남자로 변장하는 대목에선 차라리 궁궐에서 암약하는 의녀 탐정 시리즈물의 주인공으로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MBC에서 방영했던 <별순검> 같은 시리즈 말이에요.

없다: 거의 중성적이죠. 감독 데뷔작은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넘쳐버리고 마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띄는데, 김미정 감독의 <궁녀>도 그런 아쉬움이 있었어요.

많다: <궁녀>는 전적인 희생자나 전적인 가해자가 없는 앙상블영화예요. 그런데 앙상블영화라고 주제나 이야기의 핵심이 자연히 불분명해지는 건 아니겠죠. <궁녀>는 연기 앙상블은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혔는데 이야기의 핵심이 불분명해요. 궁은 어차피 나쁜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없다: 일부 연기자들의 경우, 대사가 입에 붙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박진희와 김남진의 추격전 같은 경우 숏들이 서로 잘 붙지 않아서 아주 어색한 느낌도 있었고요.

많다: 그 대목에서 희빈 처소와 궁녀 집회 사이의 동선을 따라가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전 <궁녀>를 보면서 <여고괴담> 시리즈의 구조를 떠올렸습니다. 죽은 여자와 산 여자 사이에 이미 일어난 일을, 관찰자인 제3의 여자가 짧은 기간 안에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귀신의 힘에 휘말리게 되는 점이 같아요. 목소리를 잃는다거나 자매적 애정이 깨진다거나 과욕이 화를 부른다는 교훈도 <여고괴담> 시리즈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고요.

없다: 흠… 그러네요. ^^

많다: <궁녀>에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서영희씨가 분한 월령이 아니었을까요? 욕심없던 그녀의 정념이 눈뜨고 욕망이 복잡해지는 과정을 관객이 더 자세히 보거나 짐작할 수 있었다면 훨씬 심리적으로 호소하는 영화가 됐을 듯합니다.

없다: 플래시백으로만 존재하는 인물이니만큼 그의 숨겨진 진실과 인물에 대한 해석이 더욱 흥미로워질 수 있죠. 저는 이 영화가 이야기 전달력에서 커다란 약점을 갖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상력은 참 좋다고 봤어요. 인상적이고 참신한 묘사들이 많았거든요. 종아리를 맞는 희빈을 월령이 감싸다가 뺨을 맞는 장면, 왕이 교합하는 장면을 훔쳐보며 궁녀가 천천히 몸을 흔드는 장면, 취조를 받다가 벌레를 손톱으로 눌러 죽이는 장면. ‘쥐부리글려’ 장면도 상당히 시각적이었고요.

많다: 지밀 나인의 성적인 환상이 나중에 광기로 번지는 설정은 좋았습니다. 그 밖에도 가마가 협소한 폐쇄공간으로서 아주 무서울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한 장면, 치마폭이 공중에서 떨어지며 카메라의 시야를 덮어버리는 컷도 신선했어요. 이 영화는 의도하지 않은 유머도 꽤 있죠? ^.~ 아기 왕자의 순박한 외모라든가 아궁이 앞에서 졸다 머리가 타죽었다는 해괴한 사건 개요나….

없다: 그거 사실 무척 마음 아픈 장면인데…. -.- 어릴 적에 몰래 뭐 해먹다가 머리카락이랑 국자랑 함께 태워먹은 적 많아요.

많다: 저런! ‘커프’의 은찬이처럼 불어넘기셨어야죠. 궁녀들이 다들 자기 직분과 약간씩 어긋나게 배치된 것도 은근히 재미있었어요. 비밀 엄수가 책무인 지밀 나인의 입이 제일 가볍고, 수방 궁녀 옥진은 제 허벅지에 수를 놓고 내의녀는 아기를 질식사시키고, 감찰상궁은 일을 캐기보다 덮는 게 주업무고. +_+

없다: 연기적으로는 희빈을 모시는 노상궁 역 김미경씨와 감찰상궁 역 김성령씨가 인상적이었어요.

이동진 “<브레이브 원>은 사적인 린치의 승인이라는 점에서 무서운 결단을 내린 영화인데요. 무엇이 시민으로 하여금 자력구제를 감행하게 하는지, 그 심리가 더 설명됐어야 했어요.”
김혜리 “여러모로 사회드라마라기보다 신비적인 심리물이나 도시의 동화로 보여요. 두 사람의 타인이 염화시중 진심을 알아채고 합의하는 정의를 실현한다는 동화죠.”

많다: <궁녀>가 만듦새가 다소 거친 재미있는 영화라면 <브레이브 원>은 잘 만들어진 어리석은 영화라고 할까요?

없다: 공감! 닐 조던은 꽤 괜찮은 감독이지만 편차가 상당한 것 같아요. <푸줏간 소년> 같은 걸작이 있는 반면에 <인 드림스>나 <브레이브 원> 같은 영화도 있으니까요. 아마 스릴러에 약하지 않은가 싶어요. 닐 조던, 늘 좋던 감독은 아니죠. ^.~

많다: 오오, 해냈다, 말장난 유머! *.* <브레이브 원>은 라디오 DJ 에리카(조디 포스터)가 안전하다고 믿어 마지 않던 뉴욕의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무뢰한들의 폭행으로 인생을 파괴당한 뒤 권총을 사 밤의 흑기사가 되는 이야기죠.

없다: 이 영화는 연상되는 작품들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네요.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데스 위시>가 낳은 자식 같은 영화란 생각을 했어요. 70년대 <데스 위시> 시리즈가 여러 편 속편으로 이어지며 흥행한 뒤 이런 설정의 영화들은 거의 3∼5년마다 한편씩 계속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이 포 아이>나 <주어러> 같은 영화들요. 법적 제재의 무력함에 분개한 피해자가 직접 응징에 나서는 영화들이죠.

많다: 자기와 무관한 범죄자도 처단한다는 점에서 복수극이라기보다는 응징극이 맞는 표현 같네요. 케빈 베이컨 주연의 <크리미널 로>도 연상되더군요. <택시 드라이버> 이야기도 안 할 수 없죠. 특히 어린 매춘부를 에리카가 구조하는 장면에선 <택시 드라이버>의 조디 포스터가 생각나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없다: 마틴 스코시즈 영화의 전형 같은 장면이죠. <비상근무>도 생각나고요. <브레이브 원>의 형사 머서(테렌스 하워드)가 “그놈은 법을 지키니까 합법적인 한 체포를 못해요”라고 언급한 악당을 에리카가 응징하잖아요? 그런 대목에 이 영화의 모티브가 있죠.

많다: 사적인 린치의 승인이라는 점에서 무서운 결단을 내린 영화인데요. 무엇이 시민으로 하여금 자력구제를 감행하게 하는지, 예컨대 영화 속 머서처럼 유능하고 바른 경찰이 돕고자 하는데도 굳이 에리카가 제 손으로 범죄자를 처단하길 원하는 심리가 뭔지 더 설명됐어야 했어요.

없다: 기본적으로 너무나 무리가 많은 스토리예요.

많다: 사실 <브레이브 원>은 여러모로 사회드라마라기보다 신비적인 심리물이나 도시의 동화로 보여요. 두 사람의 타인이 염화시중 진심을 알아채고 합의하는 정의를 실현한다는 동화죠.

없다: R등급의 잔혹한 동화죠. 저는 이 영화가 사건을 풀어가는 형사극으로서 너무 조급하다는 인상도 받았어요. 시체가 새로 발견될 때마다 두 형사가 대화를 주고받을 때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정보를 알려주죠.

많다: 뉴욕에 강력계 형사가 머서밖에 없는 듯 주요 사건은 그가 다 맡죠? -..- 존 맥클레인도 휴가 갔는지… 쩝.

없다: 전 좋지 않은 영화에선 좋은 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서 조디 포스터의 연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연기죠. 특히 회복된 뒤 처음 경찰서를 찾아가서 데스크에 앉은 사무적인 경찰과 처음 대화하는 장면 같은 경우 낮게 갈라진 목소리나 지친 표정으로 심리를 그려내는 연기 같은 것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영화 초반에는 또 얼마나 생기발랄하게 나와요.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그 좋은 연기가 좀 넘친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많다: 조디 포스터는 스릴러에 더없는 여배우죠. 말하는 속도가 빠르고 억양은 고조가 없는 말투로 사고가 명쾌한 인간이라는 인상을 줘요. 그나저나 <브레이브 원> 초반에 약혼자와 행복해하는 나긋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거꾸로 투쟁하지 않는 조디 포스터를 보는 일이 이젠 어색하기까지 하더라고요. -.-

없다: 사실 요즘 포스터는 <플라이트 플랜>이나 <패닉 룸>에서처럼 모성본능이 강한 일종의 여전사로 자주 나오는데 할리우드 계보에서 캐서린 헵번이나 조앤 크로포드의 뒤를 잇는 스타일이란 느낌이 있어요. 시고니 위버 같은 배우는 그 자체로 근력 강한 여전사라는 느낌이지만 포스터는 들이닥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호본능을 발휘하는 ‘생계형 전사’의 느낌이죠.

많다: 궁금한 점이 있어요. 불량배들에게 처참히 맞고 응급실에 실려온 조디의 옷을 의료진이 찢어낼 때, 애인과 섹스에 앞서 그의 손이 옷을 벗기는 행복한 추억과 그 끔찍한 장면이 교차편집되잖아요? 어떻게 보셨어요?

없다: 전 그 장면이 좀 걸렸어요. 악취미가 담긴 편집이라는 느낌이었거든요.

많다: 취향에 따라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릴 것 같아요. 전 그녀와 동일시하면서 자기 육체가 가장 처참히 타인에게 짓밟혔을 때 정반대 상황에서 타인의 손길이 와닿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둘 다 아주 감각이 예민한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연출자 입장에서는 어떤 의도였는지, 모르겠어요.

없다: 전 극중 에리카가 죽이는 악당이 에어로스미스의 전직 로드 매니저로 설정된 것이 그렇게 웃기더라고요. 너무나 그 인물이 잘 이해되잖아요. ^^ 비리비리한 백인 청년이 듣던 음악이 라디오헤드였다는는 점도 우습고 딕시칙스와 유투와 라디오헤드만 있는 아이포드가 흑인 청년 것일 리는 없다는 형사의 추리도 재미있었어요. 영화에서 에리카와 일종의 연정을 나누는 두 남자배우가 한명은 흑인이고 한 명은 인도계라는 점도 눈길이 갔어요.

김혜리 “<행복>은 다른 멜로드라마와 차별성을 부여하는 그 환멸과 내리막의 시간이 다소 짧고 상투적으로 처리됐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이동진: “하지만 그런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결말 때문에 오히려 허진호 영화로선 처음으로 종교적 기운 같은 게 생기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많다: 뉴욕의 인종 분포를 반영한 선택이겠죠. ^^ 내일 개봉하는 <행복>은 사실 <회한>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듯도 하지만, 그러면 제목이 스포일러겠죠?

있다 : 허진호 감독의 전작 <외출>도 그랬지만 사실 <행복>이란 제목은 별로였어요. <봄날은 간다>를 제외하면, 허진호 감독은 작품 작명에 구체적인 뭔가를 잘 안 담으려 하죠. 주인공들 이름도 영수, 인수처럼 아예 거의 느낌이 없는 이름을 쓰고 있고요. 강렬하고 특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을 타이틀이나 인물에 부여했을 경우 거기에 영화 자체가 속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는 뭔가를 환기시키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어떤 제목을 붙여도 다 어느 정도 어울렸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역설적으로 <너는 내 운명>이라고 해도 또 그럭저럭 어울렸을 거예요.^_^

많다: 하하. 하지만 그건 허진호 감독의 사랑관과는 잘 맞지 않는 듯. <너는 내 운명일까?> 정도는 어때요? ^^

없다: <너는 내 운명이더란 말이냐!> 뭐 이렇게 아예 진짜 통속적으로다가….^.~ <운명>도 괜찮겠네요. 동음이의어에 죽음, 낭만 등등의 뜻을 담아서요. 근데, 우리 지금 뭐합니까. 이미 개봉된 영화 제목 가지고 ….-..-

많다: 또 구름에 달 가듯, 산으로 가고 있네요. -_- 속박에 대한 허진호 감독의 꺼림과 관련해서… 허 감독은 플래시백을 거의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쓰지 않죠. 암전 같은 극히 단순한 기교 앞에서도 망설임이 많아요. 인물에게 카메라를 더 접근시키는 한 가지만 해도 매번 결심을 표명하지만 결국은 뒷걸음질치거나 편집에서 선택을 안 하거든요.

없다: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자막조차 쓰지 않잖아요. 슬로모션이나 디졸브도 안 쓰고. 일종의 기교적인 결벽증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영화에 기묘한 향취와 품격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해요. <행복>처럼 통속적인 이야기조차.

많다: 그렇죠. 저 역시 이런 조심스러움과 기교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가 요즘 영화에서 큰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냉정하게 말하면 이 미덕은 뭘 한 것보다 뭘 하지 않은 것에서 나오는 미덕이라고 말할 수도 있죠. 즉, 인물이나 상황을 좀더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데에 좀더 치열해질 여지가 있다고나 할까.

없다: 결국 얼마나 새롭고 많은 디테일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또 하나의 관건이 되겠지요.

많다: <외출>에서 잠시 숨죽였던 생동하는 대사들이 <행복>에선 많이 되살아났죠. 저는 <행복>이 사랑을 일종의 병과 같은 것으로 놓고 바라보는 관점이 재미있었어요. 사랑은 유기체로서 균형을 잃어버린 상태이기도 하니까요.

없다: 병과 담배와 술에 대한 일상적인 대사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멋지게 하는 대사작법이 참 좋았어요. <외출>에도 그런 모티브가 있었죠. 두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겪고 똑같은 약국에서 똑같은 수면제를 처방받죠.

많다: 구토나 코피, 출혈 등은 전작에도 종종 등장하죠. 먼저 나은 사람이 퇴원을 하듯, 사랑을 먼저 멈추면 연인들의 세계에서 발을 빼고 전혀 다른 관계가 되어버리죠.

없다: <행복>에선 “몸엔 좋은데 재미가 없어”가 정말 명대사였어요.

많다: ^.~ 흠, 이 모 감독님이 담배 끊느라 애쓸 무렵 나온 대사라는 설이 있습니다.

없다: 허 참, 모든 게 생활의 발견이야…. ^^

많다: 저는 <행복>이 특히 결말로 인해 “여자는 운명적 사랑을 알아보고 남자는 몰라봐서 발생한 안타까운 비극”으로 이해되는 것이 조금은 아쉬워요. 둘 다 사랑했으나 다만 다른 방식으로 사랑했다는 미묘한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없다: 기본적으로는 그 남자 영수의 내면을 비추는 데 주력한 영화죠.

많다: 저는, 은희에게 영수가 꼭 운명적 사랑이라고 생각진 않아요. 그녀처럼 평생 아파온 사람은 무엇이건 장기적 목표를 세우고 성취해가는 일이 힘들었을 테고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나서 시도한 것이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자기 삶의 의미를 그 사랑으로 증명하고 싶었으리라 생각해요. 영수의 경우는, 은희가 자기가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리듯 사랑한 것이고.

없다: 둘의 사랑은 결함투성이의 사랑과 완전한 사랑이 만난 거죠.그런데 그 둘이 만났을 경우 상처를 입는 것은 완전한 사랑 쪽일 거예요.

많다: 은희에겐 달리 갈 곳도, 기다리는 사람도, 이룰 목표도 없죠.

많다, 없다(동시에) : 그래서 역설적으로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거죠.

많다: ^_^ 즉, 그녀가 천사여서는 아닌 거죠. 구할 수 있는 자가 구한 거죠. 완전한 사랑을.

없다: <행복>은 결국 습관에 대한 영화라는 생각도 했어요. 삶에서 사랑이 참 강렬한 영향을 끼치는 경험이지만 사랑보다는 습관이 훨씬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거죠. 이 이야기는 잠시 사랑의 힘에 사로잡혔던 남자를 습관이 서서히 돌려세우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많다 : 습관이란 삶의 온갖 물질적 토대를 직접 반영하는 것인데 요양원에 간 영수는 거기서 단절되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랑에 동참할 수 있었겠죠?

없다: 습관이라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정체성 자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그런 습관을 잊을 수 있었던 건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공간이 주는 힘 때문에 잠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잔인한 진실이죠.

많다: 허진호 감독은 이번에도 한 여배우의 아름다움이 지닌 정서적 호소력을 극대화하는 감각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없다: 전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연기가 정말 좋았어요. 배우들의 기여도가 가장 높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라고 할까요. 황정민씨는 <해변의 여인>에서 고현정씨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세계에 해놓은 것 같은 일을 허진호 감독의 영화세계에 해놓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수정씨는 매우 피상적이고 전형적인 인물을 놀랄 만큼 생생한 입체감으로 살려냄으로써 영화 전체의 통속적이고 전형적인 이야기 자체를 새롭게 느껴지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고요.

많다: “이런 여자가 어딨어?” 하다가 “이런 여자가 있긴 있겠구나” 하게 된다는 말씀? ^.~

없다: 있긴 있어요. ^^

많다: 저는 허진호 감독의 사랑영화 네편을 보면서, 특히 네 번째 <행복>을 보고나니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이나 김훈의 <화장> 같은 데에 드러난 연애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을 떠올리게 돼요.

없다: 맞아요. 영향까진 아니더라도 확실히 나루세 미키오나 미조구치 겐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많다: <부운>에선 좋았던 사랑의 봄은 도입부에만 슬쩍 보여주고 기나긴 사랑의 환멸을 그리는 데에 거의 영화 전체를 바쳤죠. 그에 비해 <행복>은 다른 멜로드라마와 차별성을 부여하는 그 환멸과 내리막의 시간이 다소 짧고 상투적으로 처리됐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역시 인물을 가혹하게 다루고 싶어하지 않는 연출 성향과 관련이 있겠지만요.

없다: 하지만 전 그런 전형적이고 통속적인 결말 때문에 오히려 허진호 영화로선 처음으로 종교적 기운 같은 게 생기기도 했다고 생각해요. 영수가 요양원으로 걸어들어가는 마지막 부감장면 같은 것을 보면서, 저는 <나쁜 남자>의 엔딩을 떠올리기도 했거든요. 사실 통속성과 종교성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많다: 저는 실은 <초원의 빛>과 같은 결말을 상상했답니다. 훗날 재회한 은희가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여인이 돼 있는 결말요. -_-

없다: 다음 영화는 <비커밍 제인>인가요? 저는 못 본 영화네요.

많다: 예, 오늘의 마지막 강한 여인은 제인입니다. ^.~ 이 영화는 제인 오스틴이 남긴 아주 미미한 단서를 꼭지점으로 삼아, 오스틴 소설의 틀거리에 맞춰 등단 전 오스틴의 생애를 상상한 전기영화입니다.

없다: 기본적으로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많다: 제인 오스틴 작품 중 특히 <오만과 편견>과 특정 장면과 인물 설정이 많이 유사합니다. 무도회에서 춤추며 언쟁하는 장면이라든가, 오스틴 부모의 성격은 베넷 부부의 그것과 비슷하고요. 만약 이 영화가 사실이라면 <오만과 편견>은 별로 작자의 상상력이 개입되지 않은 소설이라는 결론이 날걸요.

없다: 그렇다면 화법이 <셰익스피어 인 러브>와도 좀 비슷한?

많다: 딱 그렇습니다! 허구성도 그 정도로 고려해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허풍의 규모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크지만요.]

없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세계가 제인 오스틴의 세계보다 훨씬 더 규모가 거창하니깐요.^^

많다: 제인 오스틴뿐 아니라 작가란 실제 생활의 경험에서 소재를 취하고 축소하거나 과장하고 못 이룬 소망도 대리 충족시키고, 아는 인물들을 부풀리거나 섞어 캐릭터를 만드는 게 당연하잖아요? <비커밍 제인>은 그런 과정을 역산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보면 맞을 것 같습니다.

없다: 결론적으로 성과는? ^^

많다: 제인 오스틴 본인의 연애와 가정사를 통해, 그녀가 트레이드 마크인 위트와 아이러니, 사회구조를 보는 통찰력을 어떻게 얻었나 설명하고 있죠. 제인 오스틴의 엄격한 팬이 아니라면 즐겁게 볼 수 있을 영화입니다. 특히 딸이 있다면 딸애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없다: 엄격한 팬이 실망할 부분은 어떤 거죠?

많다: 글쎄요. 일단 저는 오스틴의 연애가 극중에 묘사된 것처럼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극적인 건 아니었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해요. 도리어 제인 오스틴이 평생 함께 독신으로 살아간 언니 카산드라와 가족, 이웃과의 관계를 더 보고 싶어지는 거죠. 또 영화로만 오스틴을 접한 관객이라면 <오만과 편견>과 너무 비슷하다고 투덜댈 수 있겠어요.

없다: 말씀하신 대로 작가들의 삶은 작품 속 연애의 격랑에 비해 실상 밋밋한 경향이 있죠. 배우들은 어땠어요?

많다: 제인 오스틴 역의 앤 해서웨이는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지만, 제인 오스틴은 해서웨이보다는 아무래도 좀더 체격이 작고 섬세한 인상이었을 것 같다는 이미지를 떨치기 어렵더군요. -.- 아아, 전 왜 해서웨이의 눈을 보면 물고기 부레가 생각나는 걸까요? 혹자는 미니마우스 눈이라고도 하지만. 오해 마세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녀의 연기를 좋아해요. 어르신 역할의 조연들로는 매기 스미스 여사가 늘 하시는 까다로운 설교자 역, 제임스 크롬웰과 줄리 월터스가 선량하고 따뜻한 오스틴 부부로 분하는데 워낙 익숙한 유형의 연기라 무슨 쿠키 하나 집어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에필로그는 세월이 흐른 뒤 제인 오스틴이 옛사랑과 재회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오스틴의 팬이라는 딸을 데려왔는데 아이의 이름이 제인이죠.

없다: 거의 <쉘부르의 우산>이네요.-..-

많다: 선배는 어린 시절 첫사랑이 첫아이 이름을 ‘동진’이라고 지었다면 어떤 기분이겠어요? ^.~

없다: 뭐 흔하디 흔한 이름이라서리…. 혜리씨는 어떨 것 같아요?

많다: 저라면, 글쎄요. 좋게 헤어진 사이라면 훈장 하나 받은 것 같지 않을까요?

없다: 너무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많다: 그래도 산책로에서 만났는데 끌고 오던 개한테 “혜리야, 앉아!” 하는 것보다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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