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뉴스]
<왕과 나>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데보라 카, 86세로 별세
2007-10-19
글 : 안현진 (LA 통신원)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 장면의 주인공,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데보라 카가 향년 86살로 세상을 떠났다. 데보라 카는 파킨슨병으로 앓다가 10월16일 동부 잉글랜드 서포크에서 첫 남편 앤서니 찰스 바틀리 사이에서 태어난 두 딸과 손자들, 극작가인 두번째 남편 피터 비에텔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AP> <가디언> 등 해외 외신들이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안타까움을 표했으며, <BBC>는 “성공적인 영국의 수출품” 데보라 카의 사망을 전하며 “영국의 장미”가 졌다고 애도했다.

데보라 카가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는 전형적인 영국의 귀부인이지만, 그녀는 1921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5살에 가족을 따라 잉글랜드 동부 지방으로 이주한 그녀는 브리스톨에서 발레를 시작했고 17세에 첫 무대에 올랐으나, 곧 연기로 진로를 변경했다. 극작에도 재능을 드러냈으며, 2차대전 발발로 극장이 문을 닫기 전까지 리젠트 파크의 ‘오픈 에어 시어터’에서 단역 배우로 생활했다. 그 후 영화 제작자의 눈에 띈 그녀는 20살이 될 때까지 버나드 쇼 원작의 <메이저 바바라> <러브 온 더 돌> 등의 영화에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했다. 데보라 카는 전쟁 영화 <블림프 대령의 삶과 죽음>에서 10년에 걸친 세월 동안 다양하게 변하는 여성을 연기해 주목받기 시작했고, <어드벤처리스>의 아일랜드 스파이 역할, <검은 수선화>에서의 감성적인 수녀 역할을 발판 삼아 할리우드로 도약했다. MGM은 데보라 카를 틴셀타운으로 초대했고, 주급 750달러의 계약으로 그녀의 미국 생활이 시작됐다.

살인자에서부터 수녀까지 상상한 모든 역할이 가능했던 영국과 달리 “할리우드에서 내가 했던 건, 고상하고, 기품있고, 정숙한 모습으로 꾸미는 것 뿐”이라는 카의 말처럼, 할리우드 초기의 그녀는 정형화된 역할을 답습했다. 클라크 게이블, 율 브린너, 케리 그랜드 등의 당대의 배우들과 스크린을 찾았으나 이름만 다를 뿐 역할을 비슷했다. 하지만 존 휴스턴, 오토 프레민저, 엘리아 카잔 등의 감독들과 스튜디오가 발견해 내지 못했던 그녀의 다른 모습은 1953년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만나며 스크린에서 만개했다. 정욕에 타올라 외도하는 알콜중독자 역할은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이 다채롭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편, 해변에서의 키스 장면을 비롯해 상대역 버트 랭카스터와의 연기 호흡은 극장과 거리를 떠들썩하게 했다.

<왕과 나>
데보라 카가 <나의 아들, 에드워드>에 출연한 후에야 아카데미는 그녀를 할리우드 축제의 후보로 초대하기 시작했는데, <지상에서 영원으로> <왕과 나> <미스터 앨리슨> <세퍼레이트 테이블> <더 선다우너즈>등 모두 6번에 걸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됐으나 수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미국영화협회는 1994년 “흠 잡을 데 없는 우아함과 아름다움, 완벽한 연기로 영화에 기여한” 여배우에게 오스카 공로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그녀에 대한 마음의 빚을 덜었다.

50편에 달하는 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카는 위에 열거한 영화 외에도 <사랑의 흔적> <사랑의 종말> <집시 나방> <열망> <이노센츠>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열망>에서 데보라 카와 연기한 커크 더글러스는 “그녀는 좋은 배우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숙녀였다”고 고별사를 남겼다. <열망> 이후, 제의되던 역할들이 “나이에 비해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은 캐릭터 였기 때문에” 스크린을 잠시 떠났던 그녀는 1985년 <아삼 가든> <홀드 더 드림> <페어보로의 재결합>을 통해 스크린을 다시 찾았다. 은퇴를 발표하며 “좋은 의도이든 아니든 감독이나 상대 배우와 다툰 적이 없다. 현명한 사람은 언제나 우회로를 알게 마련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카는 동료들 사이에서 “조화를 아는 배우”의 명성을 누렸다. 이제 그녀는 없지만, 그녀의 전성기가 지난 후에도 그랬듯이 TV는 고전영화를 계속해서 방영할 것이고,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녀를 스크린으로 만날 기회가 없었던 새로운 세대들도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데보라 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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