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 3년을 대충 때운 뒤 쫓겨나다시피 졸업할 무렵 마음은 얼마나 스산한가. 게다가 자신을 불러줄 대학도 없는 청춘이라면 이 겨울은 하염없는 추위로 가득한 것일 게다. 겨울날을 배경으로 하는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가 보는 이를 유난히 춥게 만드는 까닭 또한 스크린 속 살풍경보다는 주인공들의 심상에 고드름처럼 끼어 있는 서늘한 기운 때문이리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 제휘(임지규)의 마음속 한기는 어둠과 함께한다. 그는 방의 창을 모두 가려놓은 채 어둠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곤 가끔 아파트 단지를 쏘다니는 것과 익명의 존재들로 가득한 인터넷뿐이다. 순간이동 마술에 심취해 있는 그는 자신을 향해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타.파.피.카.” 그 겨울 어느 날, 제휘는 우연히 장희(윤소시)라는 소녀를 알게 된다. 어딘가 엉뚱하지만 허물없이 그를 대하는 장희 덕에 제휘는 세상 바깥을 향해 한발을 내딛기 시작하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그를 폭력으로 괴롭혔던 표(표상우)를 만나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다시 그늘이 지기 시작한다. 그는 인터넷에 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누군가로부터 “제가 심판해드릴까요?”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는 스무살의 성장통이라는 소재를 낭만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의 병철(조성하)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아픔은 잠시 뒤면 잊혀질 만한 사소한 게 아니라 치명적인 무언가로 바뀌기 시작한다. 제휘의 사연에 분노한 병철은 표를 납치해 린치를 가할 뿐 아니라 표를 ‘처단’하는 데 소극적인 제휘마저 납치하기에 이른다. 현대도시의 단절된 소통 속에서 이제 그들의 선택은 “잘 생각해보세요, 이게 되돌릴 수 있는 일인지”라는 병철의 대사처럼 돌이키기 불가능한 상황으로 계속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소통과 관계맺기의 미로 언저리를 헤매고 있는 청춘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이 영화가 잃지 않는 점은 낙관성이다. 그들이 처한 불행이 어느 날 갑자기 행복으로 바뀔 리는 없지만, 영화는 주인공들에게 가늘고 푸른빛을 던져주기를 잊지 않는다. 결국 <실종자들> <친애하는 로제타> 등 단편을 만든 양해훈 감독의 첫 장편영화는 살얼음 낀 저수지를 건너길 포기했거나, 아직도 다리를 부들거리며 얼음판을 헤매고 있는 ‘치타’들을 향한 뜨거운 연대의 노래다. 그는 마치 ‘영화를 본 뒤 “타.파.피.카”라고 주문을 외우면 “너도 좋아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