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취재까진 아니더라도 촬영현장에 남아서 더 지켜봐야 했다. 1시간 정도의 현장공개와 30분 남짓의 간담회만으로 새 파트너를 맞아들인 안성기와 조한선의 마음을 읽을 수 없어서였다. 6시간 넘게 차를 타고 와서인지 대부분의 취재진은 일정이 끝나자 곧바로 숙소로 돌아간 터. 두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에 딱이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데, <마이 뉴 파트너> 마케팅팀이 비보를 알려온다. “안 선생님은 촬영이 없으시대요.” 경남 남해의 한 고급 리조트에 이른바 ‘떡볶이’라 불리는 스페이스 조명을 걸어두고 70% 촬영을 진행 중인 <마이 뉴 파트너>는 아버지 민호(안성기)의 부정(不正)을 참지 못해 8년 동안 의절했던 아들 영준(조한선)이 우연히 아버지와 한팀을 이뤄 마약거래 용의자를 뒤쫓는다는 줄거리의 경찰영화. “아버지와 화해한다기보다 아버지를 이해하는 영화”라는 김종현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한 핏줄’임을 서둘러 확인하고픈 통상적인 가족영화와도 궤를 달리한다고 하니, 짝을 이룬 두 배우가 어떤 감정을 주고받는지 눈으로 지켜보고 싶었는데 그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또래 배우들과 함께 데뷔작 <늑대의 유혹>을 찍을 때만 해도 “<씨네21>은 제가 화장실에서 즐겨 읽는 잡지예요”라며 생글거렸는데 <열혈남아> 때는 설경구의 눈치를 보며 혼자서 공만 차던 조한선이 대선배 안성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던 터라 아쉬움은 더했다.
하는 수 없이 외곽 취재 돌입. 조한선은 아버지 민호의 팀과 함께한 파티장에 잠입했으나 결국 용의자를 놓치는 영준의 장면을 밤새 찍어야 하니 대화가 불가능할 테고. 촬영장을 도는데 모두들 강씨 부자(父子)에 대한 증언이 다르다. “배우들이 대기하면 스탭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눈치가 보이는데 우리 현장은 두분이 낚시 가시니까 분위기 좋죠”(유재형 프로듀서), “한선이 오빠는 약간 불편한 것 같은데 난 여자여서 그런가 선생님의 썰렁한 농담도 좋고”(금수 역의 이은지), “리허설을 한달 넘게 해서 데면데면한 건 많이 없는데 그래도 두 배우가 아직은…”(방추성 제작이사), “집에 있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데요. 현장 가서 안 선생님한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 안달이에요”(조한선 매니저 이동훈 팀장). 감 못 잡고 소품용 의자에 잠시 앉아 멍하니 있는데 촬영 중간 짬이 난 조한선이 미행 정보를 입수했는지 먼저 다가와 입을 연다.
“선생님이 마음을 먼저 열어주셨는데 아직 그 안에 편하게 들어가진 못해요. 아직 개봉 안 한 <특별시 사람들>까지 세 작품을 선배님들하고 했잖아요. (설)경구 선배님은 앞에서 담배는 피울 수 있는데 연기할 때 조심스러웠고. <특별시…>의 김갑수 선생님은 연기 경력이나 연배를 생각하면 마음가짐부터 바로잡아야 하고.” 조한선은 안성기를 대할 때 앞선 두 선배의 어려움이 한꺼번에 밀려든단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막판에 아버지랑 아들이 확 풀어지는 건 영화가 아니거든요. 거리감이 있어야 하는데 감정 잡기가 외려 수월하죠. 영준이라는 인물은 극중에서 아버지의 외도와 부정에 대한 기억을 쭉 갖고 있어야 하는데 사실 하루 촬영이 없어도 감정이 옅어지는데 선생님 얼굴 보면 긴장이 되니까 더 좋은 점도 있어요.” <늑대의 유혹> <연리지>를 끝내고 난 뒤 한동안 시나리오도 들어오지 않고 자신감도 바닥을 치던 때에 촬영장에서 선배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떡밥 만들고 지렁이 끼우는 법도 몰랐을 것이라는 조한선, 월척은 아니더라도 준척 한 마리 건지고 싶은 그의 마음이 조금 보인다. 순간, 표정 굳는 조한선의 외마디. “선생님 오셨다!” 돌아보니,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온다”는 바로 그 안성기다.
요즘 어때요?
“아무래도 지난해 같은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고 예산을 대폭 줄일 수도 없다. 스탭들의 임금 또한 마찬가지다. 프로듀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일정을 빡빡하게 짤 수밖에 없었다. 김종현 감독과 같이 했던 <슈퍼스타 감사용> 팀이랑 나랑 같이 했던 <미녀는 괴로워> 팀이 대거 합류한 터라 이러한 스케줄을 다들 받아들여주지만 마음이 아주 편치만은 않다. 미술팀의 경우 남해 촬영이 끝나면 뒷정리까지 끝낸 뒤에 곧바로 부산으로 이동해서 다음 세팅을 준비해야 하는데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애쓰는 스탭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도 왔으면 좋겠다.” -유재형 프로듀서
배우 안성기 인터뷰
“후배도 파트너잖아, 허물 벗고 거리 좁히면 플러스 알파가 나와”
-숙소에 들어갔다가 잠깐 현장에 나오신 걸 맨 먼저 본 조한선이 ‘선생님 나오셨다’고 하더라.
=긴장했구먼. (이)준기 같은 경우는 <화려한 휴가> 때 괜찮다고 했더니 어느샌가 담배 물고 ‘근데 말이죠?’ 해서 나도 좀 편했는데. 한선이는 아직도 담배 피우다가도 나 보면 돌아서서 끈다고. (웃음)-짬나면 두 배우가 낚시하러 간다던데. 캐릭터나 연기에 대한 대화도 나누나.
=아니, 아니. ‘야, 잡은 물고기 좀 봐라. 크잖니?’ 그러지. 한선이도 낚시를 좋아해서. 잡생각이 안 나고, 또 갖고 있던 생각을 비울 수 있어서 좋아. 종일 작품 생각하면 외려 해가 돼. 지저분한 종이에 글자 쓰면 잘 안 보이잖아. 깨끗이 비워야 새 글자 썼을 때 잘 보여.-후배들에 대한 배려 때문에 본인의 것을 많이 못 챙긴다는 생각은 한 적 없나.
=배려보다 서로의 호흡 때문이지. 허물 벗고 거리 좁히면 정말 플러스 알파가 나와. 어떤 관계였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이 달라지니까.-개성이 다른 후배들이니만큼 접근 방식도 좀 다르겠다.
=나야 시종일관 비슷해. 저놈이 센놈이니까 터프하게 남성답게 ‘야, 임마! 술 해! 자자자!’ 그렇게 하지 않아. 먼저 내가 편해야지. 내가 자연스러워야 상대방도 자연스럽다고.-다양한 취미가 후배들과의 관계에서도 도움이 되나.
=내가 잡기가 많아. 카드, 화투도 있고. 구기운동은 다 좋아하고. 야구는 저 타자가 어떤 공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거든. 우리 현장에서는 정석용(일권 역)씨가 나랑 바둑 수가 비슷해. 나보다 조금 잘 둬. 오늘은 대기하면서 두판 정도 둘 것 같네. 승부에는 또 집착하는 편이라 두면서 ‘양보가 없네 이 놈이’ 그러지.-화투, 카드는 좀 의외다.
=내가 5, 6살 때부터 화투장을 잡았다니까. 밤샘 촬영이 많은데 어리니까 잔다고. 그러면 제작부장이 깨워서 돈을 줘. 어른들하고 화투치라고. 그러면서 ‘도리짓고땡’부터 ‘육백’까지. 한번은 기자들이 촌지받은 걸로 영화사에 모여서 고스톱 치는데 억지로 꼈다가 다 땄지. 딴 돈으로 저녁 사고. 근데 <썬데이 서울>에 났어. 얌전한 안성기, 알고 보니 진짜 노름꾼이라고. 세상에 있는 놀이는 다 좋아하는데 후배들하고 지낼 때 도움이 돼.-촬영현장에서 후배들과 돈독하게 지내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나는 쭉 선배가 없었잖아. 현장에서 볼 수 있는 선배들이 없었으니까. 있었다면 (후배) 너희들이랑 안 놀아 그랬을지도 모른다니까. 아주 가끔은 솔직히 현장에서 1/n이 되고 싶을 때가 있긴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