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하나의 살인사건을 축으로 다섯 여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데드걸>은 죽음이 삶에 불러온 높고 낮은 파장을 섬세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영화다. 피우지 못한 희망과 상실의 먹먹한 파고에 몸을 싣기 전, 여행의 방향을 잡아줄 작은 나침반을 마련했다.
1. ‘미인’ 여배우에서 내실있는 감독으로
카렌 몬크리프. <데드걸>은 한국 관객에게 무척이나 생소한 이름의 여성 감독에 의해 탄생했다. 80~90년대 안방극장에서 사랑받던 TV스타로 미국인들에겐 친숙한 얼굴의 그녀는 본래 ‘미스 일리노이’ 출신의 예쁘장한 여배우였다. 시트콤 <프렌즈>의 ‘조이’가 출연했던 드라마로 우리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TV시리즈 <데이즈 오브 아워 라이브즈>를 포함해 주로 낮시간대의 드라마에 출연해오던 그녀의 인생은 2000년 감독으로의 전업을 결심한 뒤 크게 방향을 틀었다. 늦깎이 학생으로 시나리오와 연출을 공부했고, 2002년 데뷔작 <블루카>로 호평받으며 몬크리프는 마흔살의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열었다. 이후 <식스 핏 언더> <터칭 이블> 등 TV시리즈를 연출하던 그녀는 4년 만에 후속작 <데드걸>을 내놓았고, 직접 각본을 쓴 이 작품으로 2007년 도빌영화제 특별상과 샌디에이고 비평가협회 각본상을 수상했다.
2.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5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데드걸>의 구심점이자 흩어진 여인들의 삶을 엮어가는 것은 한 성매매 여성의 죽음이다. 이는 몬크리프 감독이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것. 한 성매매 여성이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된 그녀는 피해자 여성이 “난잡한 인간 혹은 무고한 희생양이 아니라, 모순으로 가득 찬 한명의 복잡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체감했고, 깨달음을 계기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지독한 마약 중독에, 몸을 팔아 하루를 연명하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뿐인 딸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 <데드걸>의 캐릭터는 몬크리프가 목도했던 피해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다. 극중 딸에게 전하는 생일 카드 역시 실제 재판에서 증거품으로 제출되었던 카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3. 두 여인을 주목하라
에피소드마다 한명의 여성을 중심 인물로 내세운 영화에는 “데드걸”인 브리트니 머피를 포함해, 5명의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중 또렷한 대립각을 이루며 돋보이는 호연을 펼친 것은 두 중년 여배우, 메리 베스 허트와 마샤 게이 하든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 <The Wife>에서 남편의 범죄를 은폐하는 아내를 연기한 메리 베스 허트는 배우 윌리엄 허트의 전 부인이다. 본래 브로드웨이를 주 무대로 활동하며 토니상에 3차례나 노미네이트됐던 연극배우로, 78년 우디 앨런의 <인테리어>로 영화에 입문했다. <뉴욕의 가을>에서 위노나 라이더를 담당했던 의사,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의 강단있는 판사 등에서 스쳐 지나갔을 얼굴을 떠올려본다면 좋을 듯. <데드걸>로 인디 스피릿 어워드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데뷔작 <인테리어> 이후 무려 30여년 만에 노미네이트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네 번째 에피소드 <The Mother>에서 죽은 딸의 과거를 좇는 어머니를 연기한 마샤 게이 하든은 <밀러스 크로싱>에서 가브리엘 번의 마음을 사로잡는 ‘보스’의 여인으로 등장해 이름을 알린 배우다. 상복이 없었던 허트와 달리 <폴락>에서 여류 화가이자 잭슨 폴록 평생의 동반자였던 리 크레이즈너로 분해 2001년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미스틱 리버>에서 팀 로빈스의 아내를 연기해 2003년 다시 한번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4. You Are My Sunshine
<The Mother>에서 울고 있는 손녀를 달래기 위해 마샤 게이 하든이 불러주는 노래이자,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멜로디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곡 <You Are My Sunshine>이다. 1940년 컨트리 가수 지미 데이비스가 앨범을 통해 발표한 뒤 곧장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이 노래는 몇년 뒤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입후보한 데이비스의 캠페인 송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선샤인”이라고 이름 붙인 말을 타고 다니며 선거 운동을 펼쳤던 데이비스가 노래의 힘(?)으로 두 차례나 주지사에 당선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이후 <You Are My Sunshine>은 30여개 언어로 번역됐고, 빙 크로스비, 밥 딜런, 자니 캐시, 레이 찰스 등을 포함해 숱한 뮤지션들에 의해 수백 차례나 리메이크됐다. 2005년 한국영화 <너는 내 운명>의 주제곡 격으로 사용돼(영화의 영문제목 또한 <You Are My Sunshine>이다), 황정민과 전도연이 번안된 곡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